독일의 카니발은 토속신앙의 봄맞이 축제와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을 준비하는 종교적 전통이 혼합된 풍습이다. 매년 이른 봄에 돌아오는카니발 기간에 독일인들은

대대적인 거리행렬과 즐거운 축제를 벌인다. 거리에는 피에로, 공주, 마녀, 인디안으로 변장하고 학교나직장에 가는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여기저기서 민속음악이 쿵짝거린다.

우리집은 예외이다. 남편이 냉혈동물인데다가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남이 하는 꼴도 못 보는 사람이어서 나는 아이들이라도자연스러운 인간으로 키우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건만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도 남편을 닮아서 카니발이라면 시쿤둥한 것이다. 아,나야 외국인인데 남의 나라 풍습에 열광할 일은 없고…

올 봄에 있었던 일이다. 우리 부부가 다니는 댄스학원에선 카니발 축제의 주제가 “알 카포네”라고 알려줬다. 나는 남편에게 평상복차림으로라도 춤 추러 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아예 축제에 가지 않을 건지 물었다. 남편은 뜻밖에도, 춤 추러 가고는 싶은데명색이 고참인 우리가 평상복을 입고 가면 너무 비협조적이라고 바바라(댄스학원 원장)가 섭섭해하지 않겠느냐는 소리를 했다. 나는남편이 나이 먹으면서 더 고집불통이 되는 분야도 있지만 이렇게 유순해지는 분야도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당신 말이 맞다고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남편은 바쁘다면서 카니발 옷차림 준비를 내게 일임하는 것이었다. 난 “알 카포네”가 뭔지도 모르는데? 남편은 자기도 잘모른다고 했다. TV를 안 봐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남들이 다 아는 일반상식인데도 모르는 것이 많다. 결국 인터넷으로 검색해서”알 카포네”는 1920-30년대에 미국 시카고의 뒷골목을 휘어잡던 조폭의 보스라는 걸 알아냈다. 그 당시에 유행했던 남녀옷차림도 인터넷으로 찾아봤다. 나는 땡땡이 무늬의 치마를 입으면 그럭저럭 해결되겠는데 양복 입고 모자 써야 하는 남자가문제였다. 남편에겐 모자는 커녕 양복이 한 벌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아이디어가 없을까 해서 백화점에 나가봤다. 살다 보니 별 일에 다 시간을 쓴다고 투덜거리며. 백화점의 지하층이 온통카니발 코너였다. 앗, 까만 종이 모자에 “알 카포네”라고 띠를 둘러서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게 아닌가? 아이고, 양복이고 뭐고이거 하나만 쓰면 되겠구만. 명찰까지 달렸겠다, “알 카포네” 분명하네 뭐. 나는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이번엔 여자 코너까지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이, 내 땡땡이 치마에 하르르한 새털 목도리를 걸치면 금상첨화겠네. 어머나, 여기 망사로 얼굴을 가리는모자도 있구나. 이것까지 쓰면 정말 딱이겠다. 그러고 보니 난 그간 참 각박하게 살았어. 이런 게 사는 재미 아니겠어?

축제에 임박해서 나는 남편을 끌고 백화점으로 갔다. 남편은 종이 모자를 써보더니 좋아라며 빨리 계산하고 집에 가자고 서두른다.계산대로 가는 길에 하얀 색의 “알 카포네” 모자를 발견했다. 남편은 까만 것보다 1유로나 싸다면서 얼른 흰 놈으로 바꿔들었다.옆에서 이렇게 동전을 세며 쪼잔하게 구니까 나도 하르르한 새털 목도리를 감히 집어들지 못하고, 그 대신 뻣뻣한 닭털을 엮어 시뻘겋게 물들인 조악한 목도리를 하나 샀다. 망사로 얼굴가리는 모자를 써보이며 남편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번에 별로라고 고개를 젓는다. 분명히 돈이 아까운 게야, 구두쇠 영감쟁이.

나는 빨리 나가자고 서두르는 남편을 잡아 끌고 장난감 권총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곳으로 갔다. “알 카포네 씨, 총 하나 차면 진짜 같을 걸?” 하며 나는 남편의 반응을 기다렸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아이들이 장난감 무기를 가지고 노는 것이 교육상 나쁘다는 생각이 사회 전체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아이들이 그런장난감을 가지고다니다가는 길 가는 사람들에게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거나 심지어는 한 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부모가교육수준이 낮거나 생각이 모자라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는다.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생각일 뿐이고 아이들은 왜 또 그렇게 쏘고 찌르는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동독과의 대치가 가장 극심했던냉전시절에 악착같이 항소하여 대체복무를 할 만큼 전쟁을 반대하는 남편마저도 어린 아이들의 전쟁놀이는 인간의 진화론에 입각한본능적인 유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아이들은 장난감 무기에 집착했다.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도 대부분 TV가 없는가정에서 자랐는데도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봤는지 전쟁놀이를 하고 놀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이런 놀이 본능을 인정하는 것과장난감 무기를 인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사회에 살상무기의 모조품이 당연하게 돌아다니게 되면 어느덧 사회 전체가 폭력에둔감해지고 인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키우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공동의 인식을 이룩한 사회는 위대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카니발 기간만은 예외다. 유치원에서도 이 기간에는 카우보이, 경찰, 기사 복장으로 권총과 칼 장난감을 가지고 오는 걸허용한다. 그래서 카니발을 핑계로 아이들 기르는 집에는 플라스틱 권총이나 나무 칼이 굴러다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그간 무시했던카니발의 의미를 처음으로 떠올렸다. 문명인으로 가는 길이 하도 팍팍해서 가끔씩 쉬어가는 휴게소가 바로 카니발이 아닐까?약육강식의 본능을 극복하고 상생의 길로 진화하는 과정인 문명인들이 가끔씩 변장을 하고 억압된 본능을 해소하는 기간은 아닌지?

장난감 총 앞에서 마누라는 이렇게 심오한 사상을 꽃피우고 있는데 남편은 유치한 소리를 툭 뱉었다. “난 모자 사느라고 9유로 쓴 것만 해도 아까워 죽겠어. 카니발을 위해서 한 푼도 더 쓰지 않을 거야.”

그날 저녁에 나는 땡땡이 치마를 입고 빨간 닭털 목도리를 허리에 둘렀다.
“그거 원래 목에 두르는 거 아니야?”
“그래, 근데 뻣뻣한 닭털에 목에 닿는 게 불쾌하고 더워서 허리에다 묶었어.”
“그러니까 꼬리 같다.”
정말 그러고 보니 소복한 꼬리가 뒤로 떨어지는 것이 백년 묵은 여우 생각이 났다. 나는 여우처럼 아양을 떨었다.
“당신은 그렇게 흰 복장으로 쫙 뽑으니까 되게 이지적으로 보인다. 풍채도 당당한 게 꼭 마피아 참모 같애. 아니 보스처럼 위엄이 뚝뚝 흘러. 권총도 살 걸 그랬다.”
“아, 됐어.”

댄스학원에 도착하니 알 카포네들이 득실득실했다. 그 중에서 우리 학원에서 덩치가 가장 큰 마틴이 으뜸이었다. 그 덩치에 새까만양복으로 조끼까지 쫙 빼입고 고급 모자까지 딱 쓰니 영락없는 마피아 보스였다. 그 옆에서 하얀 종이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촐랑거리는 내 남편은 덩치로 보나 입성으로 보나 천상 졸개 양아치로구나.

내가 자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남편은 신이 나서 스텝을 밟았다. 그런데 깡패 모자를 썼다고 그런지 레이디를 다루는 행태가 영 거칠었다. 나를 지 맘대로 마구 끌고 밀었다. 나는 춤 추면서 빽 소리질렀다.

“아, 왜 사람을 밀고 그래?”
“좀 절도 있게 추란 말야. 당신은 지금 집중이 전혀 안 되고 있어.”

얼렐레, 완장 찼다고 그러나? 춤 추고 노는 데 집중은 무슨 집중? 째려보려고 쳐다봤더니 도리어 웃음만 나왔다. 남편은 종이모자를 쓰고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절도 있게 휙휙 돌리며 열심히 춤을 추고 있었다. 그래서 여우도 꼬리를 휘날리며 열심히맞춰줬다. 그런데도 또 야단이다.

“딴 데 보지 마. 나만 쳐다보란 말야.”
양아치가 눈을 부라리며 딱딱거리니까 깔치도 조신하게 내숭을 떨어 구색을 맞춘다.
“나 다른 남자 절대로 안 쳐다봐. 당신만 본단 말야.”
“거짓말하지 마!” (엇쭈리!)

이때 남편이 내 손을 잡는다는게 동작이 거칠다보니 실수로 내 꼬리를 확 잡아 뜯었다. 닭털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피빛닭털은 춤추는 발길에 채여 휘야휘야 날아다녔다. 야, 너 모자 썼다고 그러니? 총까지 사줬으면 큰일날 뻔 했구나야. 아주 날쳤겠구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