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겨레신문에 글을 기고하지만 내가 보수인지 진보인지 모른다. 뭘 기준으로 우파와 좌파의 정의를 내리는 건지 알고 싶지도않다.

사람을 그런 식으로 나누는 게 이상할 뿐이다. 어떤 사안에는 보수적이고 어떤 사안에는 진보적이겠지, 사람이 어떻게 항상일률적일까? 사안에 따라 생각이 왔다갔다 하니 나는 가끔 회색분자라고 욕을 먹는다. 하지만 그게 하나도 억울하지 않다. 누가 나못생겼다고 그러면 “그래, 내가 좀 못생기기는 했지.“하고 웃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회색 뿐이겠니?무지개색이지.”

총천연색으로 자유롭게 사상하는 건 좋지만, 그걸 글로 나타내는 일에는 나는 이제 별로 자유스럽지 못하다. 언제부터인가 내 글을찾아서 읽는 사람들이 소수 생기면서부터 글이 주는 영향력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 글이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나는 자유와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한다. 예를 들면, 내가 누구 손톱이 길다고 지적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행여 그 손톱이 붙은 손목 전체를 잘라버리는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일에 내 글이 빌미가 되지는 않을까 미리 고민한다.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면서 자유롭게 글 쓰는 즐거움마저 박탈당한다고 투덜거릴 일은 아니다. 나 혼자만 보는 일기가 아닌 이상자판 두드리기 전에 누구나 다 고민해야 하는, 문명인의 덕목이라 여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발전이 있다고 생각되는글이라면 내가 욕을 바가지로 먹더라도 기꺼이 쓸 수 있지만, 행여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보인다면 암만 좋은의도라 해도 자중하는 것이 남과 더불어 사는 인간의 한계이자 도리가 아니겠는가?

구구절절 변명이 길어졌다. 그 이유는 내가 좀 부끄럽기 때문이다.

난 그간 MBC의 피디수첩 광우병 방송에 불만이 있었지만 침묵했다. (나는 TV를 전혀 안 보는 사람이지만 나중에 언론탄압에대한 위기감에서 인터넷으로 찾아서 봤다.) 방송의 내용이 틀려서 불만이 있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감성에 호소해서 결정을 대신내려주는 방식을 내가 개인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이 편안하게 정보를 접하려는 다수를 위한 언론매체의 본성이긴하겠지만 그래도 광우병 피디수첩은 주장에 비해서 정보성이 빈약했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고 공정한 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남이내놓은 의혹, 즉 “카더라”를 주로 소개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수준에는 좀 떨어지는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법치국가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나는 이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법은 코에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로서 권력을 가진 자의 도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인정할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가 도끼를 휘두르고있는 마당에서 누구 손톱 길다고 지적하는 것은 고지식을 넘어 어리석다고 나는 판단했다. 또한 광우병을 축소 왜곡하려는 권력에반하는 목소리를 내려면 중립성을 가지고는 택도 없을 거라는 방송국의 고충을 이해했기 때문에 나는 속으로는 찜찜했지만 침묵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침묵을 깬 이유는 누군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서다. 자칭 타칭 보수로 통하는 이상돈 교수는 “MBC에대한 검찰 수사는 법적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격”이라는 법학자의 소견을 피력했다. 그간 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서 불안하던 나는우선 안심했다. 법이 존재하고 그를 공정하게 해석할 수 있는 학자가 존재하는 한, 진실이 실현되지는 못하더라도 아주 가려지지는않는다는 사실은 나를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했다. 무력감에 의한 자기방어와 폐쇄를 풀어 사람과 사회에 대한 믿음을 되살려주었다.

우리 사회에 대한 믿음에 힘입어, 좋은 일을 최초로 시작하는 재목은 못 되더라도 최소한 동조하여 계승하는 축에라도 끼고 싶어서,또는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생각에서, 나도 밀린 숙제를 하나 하기로 한다. MBC가 피디수첩 광우병 방송을 제작한의도와 용기를 높이 사면서도 수준면에서 아쉬운 점이 남는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MBC는 어떤 점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상돈 교수의 지적을 감사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리고 국민의 특별한 응원을 받고 있는공영방송은 이럴 때일 수록 더욱 엄정한 정확성와 공정성을 지켜줄 것을 당부한다.

글을 쓴 이상돈 교수가 소위 공인된 보수라는 사실은 그간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할 말이 있어도 이런저런 계산에서 침묵했고그는 담담하게 표현했으니, 누가 진정한 자유인인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난 그간 자유로운 사고를 위하여 보수와 진보, 좌파와우파라는 단어를 거부해왔다. 자유로운 양심은 사회를 반목에서 화합으로 이끌 수 있다는 희망을 접하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위해서 나는 오늘 처음으로 나의 금기를 깨는 글을 쓴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먹겠어요.“란 우리나라의 농담이 있다. 주인이 겸손하게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드세요”하는소리를 손님이 똑같이 말하면 저렇게 얌체로 들리는 것이다. 도무지 내가 할 말과 남이 할 말을 구별하지못해서 손해를 잘 보는 독일사람들에게 이 농담을 말해주면 모두들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지만, 남다른역사를 통해 쌓인 우리 민족 특유의 현명함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간 “차린 게 많은데 왜 맛있게 안 먹느냐”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밥상을 엎어? 말어?” 하던 차에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드세요”하는 덕담을 들은 느낌에 머쓱함이 밀려온다. 소박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서로 남의 숫갈에 맛난 반찬을 올려줌으로써, 차린게 많아서가 아니라 억울한 마음이 없어서 배부른 밥상을 꿈꾸는 사람이 어찌 나 하나 뿐이겠는가?






[MBC 사태 (이상돈)
이상돈 교수 홈페이지 http://www.leesangdon.com [](http://www.leesangdon.com/)

광우병을 다룬 MBC의 ‘PD 수첩’이 이번 촛불 시위를 촉발시킨 ‘원흉’으로 몰매를 맞고 있다. 나는 이 프로를 보지는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KBS TV와 MBC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방송이 편파적이니 어떠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연속극이나 쇼 같은 것은 원래 안보고, 뉴스는 하도 보기 싫은 인간들이 많이 나와서 거의 보지 않는다. 대신 이따금 YTN을보는 편이다.)

프로를 보지 않았어도 나는 MBC 프로가 감정에 호소하는, 과장된 측면이 많을 것임은 짐작하고 있었다. 원래 보건 환경 문제를다룬 보도에는 과장이 많다. 노태우 정권 때 영광 원자력 발전소 부근지역에서 태어난 무뇌아 사건도 그러했다. 쓰레기 소각장에서나오는 다이옥신이 위험하다는 보도도 그랬다.

보건 환경에 대한 방송의 보도

보건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어느 정도 과장된 보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을 과장한보도는 과도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쓰레기 소각장 건설이 지연되었고, 완공된 소각장도 가동이 어려웠다. 영광 무뇌아 사건은한국의 원자력 정책에 큰 피해를 주었다. 노태우 정권 때 발생한 농약 알라 사건(한 시민단체가 미국산 자몽이 맹독성 농약 알라에오염되었다고 주장한 사건)으로 인해 자몽을 수입했던 업체와 판매상이 큰 피해를 입었고, 그 다음해 미국은 우리나라가 수출하던배에 무역 보복을 가해서 엉뚱한 배 농장이 피해를 입었다. 비교적 최근 사건인 만두속 사건도 그로 인해 모든 만두업체가 타격을입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신문 방송에 법적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보건 환경 문제는 수학공식처럼 O, X가 분명하지 않아서 웬만큼 과장해서내보내도 틀린 보도라는 말은 듣지 않는다. 또 이런 보도가 경각심을 일으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나쁘다고 말 할 수도없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다면 웬만큼 과장 보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믿을 만큼만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사람에게 보도,특히 방송은 큰 영향을 미친다. 신문과 달리 인간의 시청각에 동시 호소하는 방송의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그래서 미국의 방송사는보건 환경상의 위험을 보도할 때에는 그 보도가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충분히 분석해야 한다는, ‘위해성 보도 준칙(RiskCommunication Guideline)’을 두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런 난리가 여러 차례 일어났었다, 오래 전에 어느 학자가 크랜베리 주스가 암을 일으킨다고 밝혀냈다고 보도하자 난리가일어났었다. 나중에 그것은 위험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임이 밝혀졌다. 1989년 2월에 CBS 방송이 사과에서 알라 농약 성분이검출되었다고 보도하자 미국 전역에서 큰 소동이 벌어졌다. 사과주스를 내다 버리고, 학교 급식에서 사과를 빼는 등 난리가 생겼다.결국 정부 기관과 책임있는 학자들이 그 위험은 너무 사소해서 위험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해서 진정됐다. 하지만 그로 인해사과농장과 주스 등 사과관련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거의 4억 달러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피해를 본 사과농장주들이 CBS방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하고 말았다.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품비방금지법과 오프라 윈프리

알라 사과 사건을 계기로 농장주들은 식품을 확실한 근거없이 비난하는 것을 처벌하는 입법을 추진했다. 그래서 현재 미국의 13개주에 ‘식품비방금지법’(Food Disparagement Law)이 있다. 식품을 비방한 경우에는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경감시켜서 알라 사과 같은 사건의 재발을 억제하고자 한 것이다.

이 ‘식품비방법금지법’이 발동된 가장 유명한 사건이 광우병과 관련이 있다. 1996년에 오프라 윈프리는 자기의 쇼에 농장을하다가 채식주의자로 전환한 하워드 리먼과 축산업계 대표를 초청했다. 그 때 리먼은 미국에서도 소에게 육골분 사료를 먹이고 있기때문에 광우병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윈프리는 자기는 앞으로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보통 사건이아니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인 오프라 윈프리가 방송 중에 광우병을 걱정해서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니말이다.

소를 사육하는 텍사스 농장주들이 윈프리와 리먼을 텍사스의 식품비방금지법에 근거해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1998년에기각되었지만 윈프리는 이 소송 때문에 많은 고초를 겪었고, 그 후로는 식품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한편 이 사건을 계기로미국의 햄버거 업계는 고기 원료를 고급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광우병이 발생할 것이라는 리먼의 예측은 영국과 캐나다에선들어맞았으나 미국에선 그다지 적중하지 않았다.

MBC를 둘러 싼 논쟁

여러 가지 보도를 종합해 볼 때 MBC의 보도는 우선 성급하게 제작되지 않았나 한다. 광우병 문제의 유래인 쿠루병도 다루어야했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광우병에 대해선 과장된 부분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과연 MBC의 보도가 ‘완전한날조’라고 할 수 있나는 별개 문제다. 지난 4월에 사망한 미국 버지니아의 젊은 여인 이래사 빈센트의 경우는 지방신문이 그녀의사인이 인간광우병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나중에 연방정부(CDC)가 부검을 거쳐 인간광우병이 아닌 CJD로 판정한 것이다. 인간광우병, 즉 vCJD는 주로 젊은 층에서 발병하고, 산발성 CJD는 주로 50세 이후에서 발병하기 때문에 버지니아의 병원은인간광우병으로 일단 진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선 5월 22일자 시사칼럼 48번 ‘광우병에 대한 나의 생각’에 지적되어있고, 폭스 뉴스에 나온 버지니아 지방신문의 기사 원문이 첨부되어 있다.)

여하튼 이 버지니아 여인은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어 정부기관의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이를 확정적으로광우병으로 보도한 점, 그리고 다우너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도 이를 광우병 소로 단정적으로 보도한 점은 분명히 잘못이다.더 큰 문제는 이것이 촛불시위를 확산시키기 위함이었고, 프로 제작 자체가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MBC의 보도가촛불시위를 촉발시켰다고 보는 입장에선 그 같은 보도는 만원 영화관에서 거짓말로 불이 났다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할 것이다.시위를 확산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보도를 했다면 그것은 물론 중대한 문제다.

현재 검찰은 MBC의 광우병 보도를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 소식에 대해서 나는 갸우뚱할 뿐이다. 도무지 그런 보도가 무슨범죄를 구성하는지가 아리송하기 때문이다. MBC의 보도 때문에 부당하게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그렇다면 미국의 축산업자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뿐이다. 국내에는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집단을 상정하기가 어렵다.

MBC의 보도가 시위를 격화시켰다고 하지만, 그 점도 법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동기가다양하고, 보도에 대해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MBC를 기소할 수 있는 근거란 내란선동 혐의 뿐인데, 그것이가능하다고 보는 법률가는 없을 것이다. 결국 MBC에 대한 검찰 수사는 법적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격이다. 사실 이런 사건에서방송국에 대해 물을 수 있는 책임은 인사조치와 시청자에 대한 사과 정도다. 언론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법적으로 담보하는 데는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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