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가 쓴 “독일운하 이야기”가 한겨레에 올랐는지 확인하려고 컴퓨터를 켠 김에 뉴스를 읽다가 기겁을 했다.

국토해양부 장관 후보가 경부운하는 반드시 한다는 전제하에 환경 경제 기술적 타당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침 식탁에 앉아서 나는 마주 앉은 남편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반드시 한다는 전제하에 타당성을 검토한다니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이야? 화성에서 온 논리야?”

마누라가 아침부터 흥분해서 따따부따 쏘아부치니까 남편이 버럭 역정을 냈다.

“당신은 앞으로 맨날 이렇게 남의 일로 흥분할 거야?”
“꽥! 그게 왜 남의 일이야? 내 친정 일이지. 교육수준 세계 일류인 국민을 뭘로 보고 공인들이 이렇게 앞뒤가 안 맞는 소리를 해?”
“당신이야말로 사람이 좀 겸손해야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약으로 걸고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면 당신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거야.”
“독일에서 뒤늦게 원상복귀하느라고 고생하는 애물단지를 한국에서 모델이라고 선전하며 뒤따르는 꼴을 가만 앉아서 보고만 있으란 말이야? (내 가슴을 콕콕 찌르며) 내가? 여기서? (삿대질하며) 딴 데도 아니고 독일에서?”
“사람이 몰라서 망치는 일이 세상에 어딨어? 다 알면서도 어어 하는 사이에 밀려서 다 망하는 거지.”
“으이구, 내가 그간 운하 칼럼 쓰느라고 바친 시간이 아깝다.”
“그러게? 난 그게 통 이해가 안 갔어. 당신이 독일에 앉아서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그렇게 정열을 바치냐?”
“꽥! 그럼 어떡해?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건 바로잡아야지.”
“잘못 알면 어때? 한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에서 자기 돈 들여서 하겠다는데 왜 당신이 여기서 참견하는 거야? 세상에 잘못 돌아가는 일이 한두 가지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일일이 다 참견해? 그것도 오만이고 노탐이야.”

이때 딸아이가 아침 먹으러 들어오며 웃었다.
“엄마 또 대운하 때문에 흥분했어? 후후, 우리 엄마 귀여워.”

남편은 딸을 보니 살았구나 싶은지 고자질을 했다.
“앞으로 5년이나 남았는데 니 엄마 맨날 저러면 어떡하냐? 차라리 독일로 귀화하라 그러자.”

이렇게 가족들의 눈총을 받으며 나는 꿋꿋이 운하 공부에 매달렸다. 독일 운하에 대한 왜곡된 정보만 바로잡겠다는 나의 소박한 의도가 남편에게조차도 오만과 노탐으로 비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더욱 분발하게 만들었다. 정보를 올바르고 공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해서 정확히 알아야 했고, 또 그렇게 글을 하나 쓰고 나면 내 글 어딘가에 숨어 있을 나의 오만과 노탐을 찾아서 지우는 일에 양심을 걸었다. 운하 전문가도 아닌 나를 믿고 글을 실어주는 한겨레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내용과 신빙성에 최대의 정성을 바쳤다.

하지만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독일 운하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것으로 나의 임무는 끝나는 것이고 그것을 수용하고 말고는 한국 국민들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내가 할 일의 선을 확실히 그어놓는 것만이 나의 오만과 노탐을 방지하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국의 TV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다. 내 칼럼을 바탕으로 독일 운하에 대한 방송을 제작하고 싶다며 현지 취재의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나는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으로 할 일을 다했으니 내가 그어놓은 선을 넘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한국과 독일을 연결하고 조절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인 동시에 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다. 한국인과 독일인은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 중간에 낀 사람은 양쪽으로 민망스럽고 거북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현지에서 별볼일 없는 교포들이 한국의 주변에서 서성거린다는 소리도 듣기 싫었고, 혹시 재수 없으면 질이 나쁜 남자들과 함께 일하게 될 일도 끔찍했다. 또한 그간 운하에 매달리느라고 다른 일들이 줄줄이 밀려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였다.

아침을 먹으며 나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가 방송국의 청을 거절하겠다는 대목에서 남편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왜?”
“왜라니? 지금 바빠 죽겠는데 그런 일까지 내가 어떻게 다 해? 독일 운하에 대해 글을 쓰는 것으로 나는 할 만큼 하고 있잖아?”
“그까짓 글 써서 무슨 효과가 있다고?”
“꽥! 그까짓 글이라니? 내가 얼마나 힘들게 쓰고 있는데 그까짓 글이래?”
“당신이 쓰는 글을 몇 명이나 읽을까? 하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방송을 타면 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어.”
“내가 그런 일 하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당신은 알잖아? 그리고 내 스타일대로 취재를 준비하려면 일이 얼마나 많은지도 당신 알잖아? 난 내 숙제 다 했어. 나 아니라도 이 일 할 사람 많다구.”
“당신만큼 이 일을 잘 할 사람은 없어.”
“올랄라? 당신이야 말로 오만하네. 당신은 내가 한국 정치에 참견하는 것이 오만이고 노탐이라고 싫어하잖아? 마음이 변했어?”
“아니, 아직도 싫어. 그냥 당신이 여태까지 들인 노력이 아까워서 그래. 당신에게 대운하가 중요한 사안이야? 아니야?”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남편의 칭찬을 기대했던 나는 그의 뜻밖의 반응에 놀랐다.

그날 이후로 내 생활은 비상사태로 변했다. 방송국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최선으로 희망하는 시나리오를 써보내 주었고, 난 그것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누구인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를 위해 나는 며칠 동안이나 인터넷에 매달리며 하루종일 전화기를 끼고 살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나는 그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서신을 쓰는 일에 할애했다. 각 인사별로 그간 쌓은 업적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나는 막대한 분량의 글을 먼저 읽어야 했다. 그리고 나서도 부탁 메일을 쓰는 일에 한 사람 앞에 적어도 하루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서 신중을 기했다. 남편은 독일어 문장 뿐만 아니라 글 전체의 뉴앙스와 진정성의 전달을 검토해줬다. 우리 둘의 사고방식과 성격이 다른 점이 이럴 때에는 큰 이익이 됐다. 메일을 보낸 후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부탁하는 일은 필수였고, 이 인사들의 비서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도 중요했다. 나는 내가 점찍은 인사들을 100% 섭외하는 데 성공했다.

방송국과 협의하여 인터뷰 질문서를 일찌감치 작성했다. 적어도 인터뷰 열흘 전에는 질문서를 발송했다.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인터뷰 상대가 가장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가장 절실하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개별적으로 파악하는 일이다. 이런 맞춤형 질문서를 미리 받아본 인사들은 마치 그들 자신의 프로젝트처럼 준비를 철저히 하여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

(그간 살면서 나는 공인이나 단체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할 일을 많이 겪었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를 맞아 다른 집단과 소통하는 기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언젠가 시간을 내서 내가 그간 습득한 섭외의 노하우를 상세하게 정리해서 독자들과 공유할 계획이다.)

이번 일을 하면서 나는 특별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하긴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사람을 물색했으니 다른 건 몰라도 해당 분야에서는 특별한 사람인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프라이부르그 대학의 라이프 교수는 첫 답신에 “당신의 참여의식에 감사를 보낸다”며 되려 내게 고마워했고 “지금 너무 바빠서 언제 시간이 날지는 모르지만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며 무조건 승낙부터 해줬다. 그의 논문을 읽고 연락했다는 내가 운하 전문가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는 인터뷰하기 전날 밤에 우리가 묵은 호텔에 찾아왔다. 라인강변숲의 생태에 대한 사전 지식을 미리 알려주고는 어떤 장소를 보여주는 것이 방송에 가장 효과가 있을지 취재진과 함께 의논했다. 이튿날인 일요일 아침부터 장장 네 시간동안 라인강변을 누비며 많은 것을 보여준 라이브 교수는 점심식사도 건너뛰고 다음 일정을 향해 역으로 황망히 떠났다.

“엠디 운하는 바벨탑 이후로 최고의 무식한 사업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전 교통부장관인 하우프 박사는 나의 인터뷰 요청에 유일하게 거절했던 사람이다. 한국의 사정에 밝지 못한 자신이 한국의 운하을 거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나는 당신이 한국의 운하에 대해 언급하기를 바라지 않고 단지 당시 독일의 엠디 운하를 반대했던 이유를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썼다.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은 한반도 대운하의 반대에 있는 게 아니라 독일 운하가 성공케이스로 둔갑하는 상황을 바로잡는 데 있고, 한국 국민들이 독일 운하의 실상을 제대로 안 후에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면 그때는 나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에게서 단 한 줄의 답신이 왔다. “인터뷰는 언제?” 뜻밖에도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국민을 향해 말했다. “운하 사업이 불안하다면 신념을 가지고 대항하라. 그때 내가 엠디 운하에 대해 투쟁한 이유는 내가 승리하리란 확신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 분트의 대표 바이거 교수는 아마 이 방송으로 한국에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일 것이다. 방송이 전파를 탄 직후에 짧은 동영상 하나가 인터넷에 수없이 떠올랐는데, 독일의 엠디 운하가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연설에 독일 사람들이 와르르 웃는 장면이다. 우리 취재진 앞에서 이 연설을 한 사람이 바로 바이거 교수다. 도나우 강 수로 확장공사를 반대하는 데모에서 만난 바이거 교수는 카리스마가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날 우리 말고도 많은 독일 언론팀들이 바이거 교수와 인터뷰와 사진촬영을 하려고 줄을 섰다. 그 와중에도 바이거 교수는 우리와의 인터뷰에 아주 긴 시간을 할애했고, 도나우 강변의 벤치에서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조금도 서두르거나 조급한 기색이 없이 끝까지 성심을 다했다.

쾰른 일간지에 근무하는 슈톨쩬베르그 기자는 우리 인터뷰 일정에 맞춰주기 위해 그날 하루 휴직을 낼 정도로 열성을 보여주었다. 평범한 국민으로서 깨끗한 강을 열망한다는 소박한 희망에 비해 그는 엄청나게 박학다식했고, 소장하고 있는 보기 드문 자료들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유럽의회 의원인 크라머씨와 독일연방 국회의원인 이르버씨의 조리있는 언변은 당파가 아니라 정확한 지식에 근거했기에 공정하고 설득력이 컸다. 그 외에도 이 방송을 위해 많은 독일 사람들이 애써주었다. 장시간 인터뷰를 했으나 시간 관계로 방송에 나오지 못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내게 그들은 대답했다. 환경보호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기후변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지구라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라고. 그때 나는 알았다. 내가 섭외를 잘해서 이들이 인터뷰에 응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할 숙제라 여겨서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을. 그들의 이런 확고한 신념은 실력에서 나온 것이다. 운하의 피해를 연구하는 학자의 실력, 장관으로서 나라살림을 책임지는 행정력, 시민운동가로서 정경유착의 속성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정치인으로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추구하는 직관력,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참여하는 국민의 건전한 상식, 이런 실력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한반도 대운하가 불안하고 부조리하게 비친 것이다.

그들은 내게 앞으로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소식을 정기적으로 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제 나는 이들에게 편지를 쓸 것이다. 열흘 동안 휴일도 없이 독일 전역을 누비는 강행군 속에서 취재한 이영현, 신동곤 기자의 열정으로 격조 높은 방송이 완성되어 6월 17일에 전파를 탔다고 알릴 것이다. 독일에서 취재한 내용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한국의 상황이 마치 짜맞춘 듯이 엮어져서, 수준이 높되 어렵지 않고, 공감을 일으키되 감성적으로 흐르지 않는 쿨한 방송으로 태어났다고 자랑할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에 충실하기 위해 국내의 상황이 좀 더 포함된 탓에 당신들의 몇 시간 인터뷰가 방송에선 각각 몇 초씩으로 함축되었지만, 당신들의 입에서 나온 단 몇 마디는 당신들 각자가 들어주는 촛불로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촛불시위에 힘을 보탰다고 전할 것이다.

방송이 나간지 이틀만에 정부에선 한반도 대운하의 포기를 선포했다. 나라 안팎에서 타오르는 촛불의 의지를 읽어낸,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 취재한 분량 중에서 아주 작은 일부분만 이번 방송에 쓰였다. 내륙수로의 역사가 깊은 독일의 쟁쟁한 운하전문가들이 인터뷰를 통해 아낌없이 전달해준 정보가 영상과 음성으로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자연의 물길을 훼손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몇십 시간 분량의 방대한 인터뷰 내용이 앞으로 활용될 일이 없기를 나는 간절히 기원한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던 독일 운하전문가들의 호의가 그냥 고마운 추억으로 묻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국민의 시간 낭비는 국력의 낭비이므로.

운하 칼럼이 이 자리에서 막을 내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간 “임혜지의 독일운하 이야기”를 읽어주신 독자들께도 작별인사를 드린다. 부족한 글을 소중히 다루어주신 한겨레신문에도 감사를 드린다. 덕분에 외국에 있는 나도 민의를 알리는 촛불을 하나 켜들 수 있었다.

“여보, 정부에서 한반도 대운하 포기한대.”
“축하해. 다행이군. 이젠 당신이 매일 흥분할 필요가 없어졌네.”
“응. 그런데…”
“그런데 뭐?” (한쪽 눈썹이 불손하게 올라감)
“학생들 건드리면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걔네들이 우리 시대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야.”
“가만 두지 않는다니, 당신이 어떻게 할 건데?”
“그러지 말라고 글을 쓸 거야. “

불효막심한 우리집 학생들이 깔깔 웃었다.

“엄마가 글 쓴다고 꽤나 효과 있겠다.”
“두고 봐. 꽥! 너희는 같은 학생들끼리 연대감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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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링크: KBS 시사기획 쌈 - 한반도 대운하 “국민과 통하라” 2008.6.17
동영상 링크: 바이거 교수 연설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