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만 열세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비혼모인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딸의 친구가 매년 여름이면 이태리의 밀라노로 생부를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아무리 피를 나눈 아버지라지만 양육비만 보내줄 뿐 친해질 기회가 없다 보니 그 애는머리가 커질 수록 아버지에게 가지 않으려고 꾀를 부리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꾀를 내서 친구라도 따라붙여 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친구 덕에 밀라노에서 여름 한철을 보내고 온 우리 딸은 못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고 이태리 유행에 경도되어 용돈을 탈탈털어 야한 옷을 잔뜩 사왔다. 생전 처음 부모 품을 떠나 친구와 단둘이 외국에 다녀오는 딸을 데리러 공항에 간 우리 부부는 짙은화장에 야한 차림으로 세련되게 엉덩이를 흔들며 걸어나오는 후리후리한 처자를 보고 기절초풍을 했다.

그날 사단은 우리가 막 전철역을 벗어나려는데 일어났다. 술이 잔뜩 취한 남자가 딸애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남편은 벽력같이소리를 지르며 그 남자의 가슴을 확 떠밀었다. 평소에 얌전한 남자도 딸을 위해서는 이렇게 변하는구나 감동하는데 내 귀에 들려온것은 더욱 뜻밖의 소리였다.

“이봐, 당신은 내 부인을 건드렸어.”

아니, 딸이 컸다고 자기 부인이랑 구별도 못하다니?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남편은 취객이 나를 목표한걸로 오해했던 것이다. 자기 딸이 남의 눈에 여자로 보일 만큼 컸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기 마누라가 남의 눈에 여자로 보이지않을 만큼 늙었다는 사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다.

취객과 남편은 마주서서 당장 서로 칠 듯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풍채당당한 남편이 내가 건물 실측할 때 들고 다니는 삼발이보다가벼워 보이는 취객을 때릴까봐 걱정이 됐다. 나는 여자니까 차라리 내가 치는 게 더 도덕적일 것 같았다. 내가 막아서며 외쳤다.

“여보, 내가 상대할 테니까 당신은 애 데리고 먼저 가! 어서!”

남편은 나에게 너나 애 데리고 먼저 가라고 소리를 질렀고, 취객은 취객대로 우리가 자기에게 뭐라 그러는 줄 알고 고래고래 고함을질러댔다. 딸이 너무 놀라서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서야 우리는 부부 합동으로 너무나 엉뚱한 쇼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멋적게 발걸음을 돌렸다.

자기 손으로 기저귀 갈아주며 키운 딸이 여성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딸이 자기는 착한 남자보다마초같은 남자에게 본능적으로 더 끌린다는 소리를 조잘거리면 남편의 눈은 어느덧 세모가 된다. 딸이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화장하느라고 거울 앞에 오래 붙어 있으면 쟤는 남자나 꼬시는 인생을 살려는 건 아니냐고 의혹의 눈초리를 날린다.

그날 아침에도 딸이 배꼽티를 입고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식탁에 앉았다. 코를 씰룩거리던 남편이 공연히 내게 시비를 걸었다.
“나 당신한테 무슨 말 하나 해도 돼?”
그의 표정이 난데없이 비장하길래 나는 버터를 바르던 나이프로 남편의 가슴을 겨누며 음성을 착 깔았다.
“말해 봐.”
남편은 침을 꿀꺽 삼키더니 단숨에 말했다.
“우리 딸이 당신 닮았다는 생각 들지 않아? 쟤도 시시한 남자들 꽤나 쫓아다닐 것 같지 않아?”
“으흐흐, 맞아. 나도 그 시시한 남자들에게 정열 바친 거 생각하면 얼마나 억울한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화낸다니까?”

이 말은 진심이다. 나 하고 싶은 대로 원도 없이 살았으니 후회할 일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별볼일 없는 관계에 목숨을 걸었던것도 사실이다. 그에 비해서 남편은 소위 건전하게 사는 일에 바빠서 여자에겐 관심도 없다가 어쩌다 자기 눈에 들어온 유일한여자를 물귀신 작전으로 꽉 잡아서 끝장을 봤다. 결혼식에 내 과거의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새신랑에게 “너 이제 큰일났다”라는말로 축하해주었다. 인생에서 사랑만큼 파격적이고 창조적인 사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사랑은 종족보존을 위한 호르몬의 작용일뿐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만나서 아직도 지지고 볶는데도 밖에서는 남의 속도 모르고 깨를 볶는 줄 안다.

딸이 깔깔 웃으며 제 아빠를 놀렸다.
“아빠는 자기 첫 여자랑 결혼한 게 또 무슨 자랑이라고? 인생 경험도 없이.”
“그런 소리 말아라. 니 엄마가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룩한 일을 나는 단번에 딱 이뤘으니 누가 더 똑똑하고 경제적인 거냐?”
“아유, 아빠같은 남자는 심심해서 매력 없어.”
“어머, 내 남편이 어디가 어때서 그러니? 이런 남자가 진짜 매력 있다, 너? 마초들을 트럭으로 하나 가득 실어와 봐라. 내가 니 아빠 하나랑 바꾸는가?”
내 말에 아이들은 동시에 코를 쥐고 “구린내!” 하고 소리질렀다. 자화자찬은 구린내가 난다는 독일 속담에 따른 동작이다.

혼전순결라는 개념이 우습게 들릴 정도로 독일은 성에 개방적이고 순결을 덕목으로 쳐주지도 않는다.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의 성교도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의 안전섹스에 신경을 쓸 뿐이다. 이혼율이 50%나 되는 나라이니 젊은이들의 연애상대가 자주 바뀌는 일이야 흉잡힐 일도 않다. 사랑 없이 단지 즐기기 위한 섹스에 대해서는 취향이 갈리지만 이 또한 도덕성의문제는 아닌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겐 아직 애인이 없다. 도무지 말수가 적은 아들은 사랑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역시 연애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결혼생활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은 자기 닮은 아들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되도록이면 여성들과의자연스러운 접촉이 가능한 취미생활을 하라고 아들에게 충고한다. 심지어 자기는 나를 놓치면 평생 독신으로 살까봐 무조건 꼭잡았다는 소리까지 태연하게 하면서 그게 부인에게 모욕적인 소리인 줄은 꿈에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해 봤자 입만 아픈 욕일랑생략하고 샐샐 웃고 만다. 딸은 부모 눈에는 황송한, 건전한 소년들의 프로포즈는 “좋은 친구로 남겨두고 싶어서” 거절하고 그저”눈이 확 머는 사랑”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사랑에 확 눈이 머는 그날이 오면 그 남자가 아무리 마초라도 몸과 마음을바쳐 올인한다는 게 딸의 연애관이다. 나는 괜히 안달하는 남편을 위로한다. “걱정 마. 나같은 여자도, 당신같은남자도 결국엔 좋은 사람 만나서 얼마나 잘 살게? “



(레몬트리에 송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