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유럽이라도 프랑스와 독일의 식생활 문화는 참 다르다. 프랑스인들은 비싼 재료로 정성껏 요리해서 몇 시간에 걸쳐 식사를즐기는 반면, 보통 독일사람들은 값싸고 양 많은 음식을 후딱 먹어치운다.

국민소득이 높은 독일국민이 식생활을 위해 쓰는 비용은프랑스나 이태리보다 훨씬 적다.

그런데 건축사를 연구하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된다. 옛날부터 프랑스의 주택에는 복도의 자투리 공간에다 식탁을 놓았는데,전통적으로 독일의 주택에는 식사만 하는 방이 따로 있어 제 2의 거실로 애용됐다. 그런 것을 보면 프랑스 사람들은 맛과 품질로서음식을 즐기고 독일 사람들은 분위기로서 음식을 즐기나보다.

우리 집도 그런 면에서는 꽤나 독일식이다. 별것 아닌 음식을 차려놓고 둘러앉아서 입이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얘기하느라고 더 바쁘다. 테마는 학교 선생님 흉보기와 친구들과의 갈등, 사회, 정치, 환경 등 무궁무진하다.

하루는 독일의 통일에 대해서 얘기하다가 테마가 휴전선을 지키던 군용 세퍼트들의 운명으로 흘렀다. 동독과 서독 사이의 철조망을지키도록 훈련받은 수많은 세퍼트들의 용도가 통일과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에 신문에 나기를, 한국 정부에서 그 세퍼트들을사고 싶어했지만 독일에서 저절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한국에서 그 개들을 잡아먹을까봐 독일 정부에서 안 팔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그때 우리나라에서 잡아먹으려고 개를 사간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니까.”
“에이, 무슨? 한국에는 아직 휴전선이 있으니까 그런 훈련견이 필요했겠지.”

아이들과 남편은 내 나라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두고 깔깔 웃었다. 뒤이어 우리는 브리짓 바르도가 한국에서 개고기 먹는 것을 야만스럽다고 성토한 사실에 대해 대화했다.

“개고기 먹으면 야만이야? 야만이라 단정지을 수 있는 잣대가 있을까?”
“자고로 음식문화는 민중들이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형성되었겠지? 생선이 많이 나는 곳에선 생선을 먹었고, 농토가 비옥한 곳에선 채식을 많이 했고, 알라스카같은 동토에선 육식에 의존해서 생존했을 거야.”
“그래, 그래서 호주에선 캥거루를, 남미에선 기니피그를 먹었어. 소나 돼지 길러서 잡아먹듯이 개를 길러서 잡아먹는 나라도 있는 것이지.”
“맞아, 어느 동물을 먹으면 야만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거야. 야만스러운 음식문화는 따로 있어. 정력에 좋다고 까마귀의 씨를말리고 코뿔소를 도륙하는 일. 아, 그리고 또 있다! 먹을 것이 풍부한 일본인들이 굳이 멸종에 처한 고래를 먹겠다고 떼쓰는 일.”
“그렇다면 달리 먹을 것이 있는데도 남들이 자식처럼 사랑하는 애완동물을 취미삼아 먹는 것도 변태에 들지 않을까?”
“그렇겠네. 하지만 나는 개한테 유산 물려주는 사람들이 더 이상하더라.”
“독일에서 비둘기도 먹는 거 한국사람들이 보면 변태라고 그럴 걸?”
“비둘기 먹는 게 왜 변태야? 토끼는 괜찮고?”

이때 아들이 후식으로 나온 딸기를 입으로 가져가다 말고 내게 물었다.
“엄마, 지금 4월인데 왜 벌써 딸기를 샀어? 이거 원산지가 어디야?”
“몰라…오마, 설마 아프리카나 남미는 아니겠지? 이렇게 싱싱한데 500 그램에 1유로밖에 안 해서 확인도 안 하고 샀네.”

먼 곳에서 재배하고 운송해온 부도덕한 과일을 싱싱한 붉음과 싼 값에 홀려 덥석 산 죄에 나는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했다. 꼭 이럴 때 눈치 없이 나를 배신하는 남편.

“옛날에 우리 엄마도 크리스마스때 아스파라가스를 요리해서 나한테 말 들은 적 있지.”

아니, 내가 늘 그러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가 한번 철 이른 과일을 샀다기로서니 나를 시어머니와 비교하다니? 나중에 우리 아들이천하에 불효막심한 자기처럼 나한테 막되게 굴면 좋겠는가? 얄미워서 반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남편은 마침 기회라는 듯이 접시에남은 고등어 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야, 앞으로 고등어나 참치는 먹지 말자. 독일에서 바다생선까지 먹는 것은 변태야, 변태.”
“어라? 고등어 먹는 게 왜 변태야? 개고기는 괜찮고 고등어는 변태야? 자기는 독일사람이니까 생선 별로 안 좋아하지. 나는 한국사람이라서 고등어 먹고 자랐다구.”
“그럼 앞으로는 당신만 먹어. 다른 사람들까지 먹을 필요는 없잖아. 전통적으로 바다생선을 안 먹고도 잘 살아온 사람들까지 맛들여엄청나게 먹어대니 씨가 안 마르겠어?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사람들은 먹이를 빼앗긴 셈이 되고 말야. 그건 변태야.”
“으이그, 그럼 나도 먹지 말라는 소리지, 그냥 안 먹고 말지, 어떻게 나 혼자 먹으려고 고등어를 굽겠어? 근데 당신 말이 맞네. 알았어.”
“불쌍한 우리 엄마. 북해에서 잡은 새우도 안 먹는데 그럼 엄마는 먹을 게 점점 없어지잖아?”
“어이구, 그래도 내 딸이 최고네. 괜찮아. 그깟 새우나 고등어 안 먹어도 먹을 것 많잖아.”

독일 연안인 북해에서 잡은 새우는 지구를 빙 돌아 인건비가 싼 아프리카에서 껍질을 까서 다시 독일로 반송된다. 운송에 막대한에너지를 들여도 그게 독일에서 까는 것보다 비용이 더 싼 것이다. 다른 대륙에서 재배해서 운송한 딸기가 독일산 제철과일보다 더싼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자니 별 해괴한 일이 다 일어난다. 사람에게 나라에 따라 각기 다른 값을 매겨놓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의 세상은 분명히 비합리하고 비인간적이다. 변태가 따로 없다.

이런 변태를 이용해서 돈 버는 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이야? 절대로 앞으로는 한두 푼에 눈이 멀어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말아야지.푼돈을 만지며 일상을 꾸리는 아줌마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아닐까? 값싼 식품을 선호하는 독일아줌마들의 구두쇠 기질이 문제가 아니라, 값싸고 질 좋다는 함정에 빠져 변태적 사업에 일조하는 아줌마 근성이 문제인 것이다.

독일에는 아직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시장에 다니는 사람, 알아도 돈이 없어 이것저것 따질 여유가 없는 사람, 나처럼 이론으론훤해도 한두 푼에 깜빡 눈이 머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내가 시장의 주인인데 앞으로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절대로 변태 딸기를 사지말아야지. 인간의 품위를 지키리라. 빠드득.



(레몬트리에 송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