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비 오는 밤의 넋두리
밤비가 내린다. 이제 가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한국에도 비가 왔다고 한다. 시청도 비를 맞았겠지. 헐려나간 부분을 덮어주지 않아서 속까지 젖었겠구나. 이제 태평홀은 가만 둬도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허물어질 것인가?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고 상처 입은 시청을 빗속에 방치한 문화재청이 몹시 섭섭하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어? 다른사람들도 아니고 문화재를 돌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남의 일이라 생각할 수 있어? 어떻게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 잘 수 있냔말이야?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남의 비닐 하우스라도 뜯어와 우선 덮어주고 볼 일 아니야?
동대문 운동장이 헐려나갈 때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는데… 그래도 세상은 돌아갔는데…
어제 쓴, 시청 철거에 대한 글을 날카로운 그대로 놔둘 걸 그랬나? 그냥 속이라도 시원하게? 내 속 뿐만 아니라 나처럼 안타까운사람들의 속이라도 시원하게? 꼼꼼히 읽으며 독기와 냉소를 품은 단어와 문장을 수두룩하게 쳐내면서도 ‘‘탈레반이 문화 유적을파괴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와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는 문장을 끝까지 지우지 못하고 만지작거렸다. 종교나 이념의 포로가 되어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를 야만이라 부른다면, 돈이나 허세에 눈이 멀어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행위는 뭐라고 달리 부른단 말인가?
하지만 결국엔 그 문장마저 지워버렸다. 자극적인 말로서 본질을 흐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 글을 나와 생각이 같은사람들에게서 박수를 받기 위해서 쓴 게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목적으로 썼기 때문이다. 결정권이 있는정부 인사들이 내 말을 들을 리야 없겠지만, 나같은 보통사람들, 특히 그 중에서도 나와 생각이 달라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그들을 설득하여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과 손잡고 문화재를 귀중히 여기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우리의 선조가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주신 문화재를 귀중히여길 줄 아는 사람들은 내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소유물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자연을 자기 물건인 듯 함부로 취급하지 않을것이며, 자연에게도 이럴진데 타인에게도 함부로 군림하지 않을 사람들일 것이다. (내가 건축사학도가 아닌 수학도나 법학도였다면,나는 숫자를 통해, 또는 법의 철학을 통해 이와 비슷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나의 자유가 절대로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남의 견해에도 관대한 편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당장에는당황스럽거나 답답할 때도 있지만 결국은) 내 숙제를 대신 해주는 사람이라고 고맙게 생각한다. 당연히 편협할 수 밖에 없는 나의밸런스를 맞춰줌으로써 세상이 원만하게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는 고민한다.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들이 독일의 나치 시대에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치에완전히 동조하지 않았지만 그 견해에 너무 관대했다. 교양있게 침묵하고 외면했다. 그 당시 독일 국민들 개인의 견해와 행동을관찰해보면 지금 우리의 눈으로 봐도 인간적으로 이해 안 가는 부분은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역사적인범죄의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었다. 개인적인 행동의 순간 순간에는 하자가 없었지만 그를 모두 합치면 엄청난 죄악이 된다는 사실에나는 아찔함을 느낀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얼마나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할까?
난 정치하는 행위, 즉 정치인이라는 직업에는 매력을 못 느끼지만 일상에서 정치적이려고 노력한다. 사회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내안위에 직접 상관이 없더라도 가능하면 도움되는 방향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모든 면에서 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에는 그러려고 한다. 난 그게 고등학교 이상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꼭 해야할 임무라고 생각한다. 운좋게 태어나서 공장 대신 학업의 기회를 가졌고, 그 여파로 계속해서 남보다 평탄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지성인의 임무를 다하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아닐까? 노동하는 사람들이 지금 무슨 여력으로, 또 이 시점에서 무슨 배짱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염려하는일까지 하겠나?
난 요즘 정치적인 사고를 하는 일에 있어 무척 혼돈스럽다. 남을 인정하고 포용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양심을 저버리지 않으려면어떻게 해야 하나? 우아하게 비겁하지 않으려면? 가시를 뽑는다고 뼈까지 깎는 자가검열을 거쳐 가지고 조근조근 설득하는 글만이항상 능사일까? 차라리 냅다 괴성을 내지르면서 불안한 심연을 드러내보이는 절박한 글, 또는 한 마디로 급소를 찌르는 냉혹한 글이 필요한 시기는 아닐까?
해답은 이도 저도 아닌 중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놈의 중도를 찾기 위해 무척 애를 썼는데 가만 보니 중도라는 길이 아예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쪽으로 좀 치우쳤다 저쪽으로 좀 치우쳤다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중심에서 그저 너무 멀어지지만 않게삐뚤빼뚤 조심하며 걷는 길이 곧 중도가 아닌가 한다. 사회적으로 보자면, 어느 한쪽이 너무 우세하지 않게 이쪽과 저쪽의 균형이적당히 맞는 것, 그러나 되도록이면 중심 부분에 무게가 많이 실리는 게 중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그리로 갈 수 있나?
답을 모를 때는 잠시 생각을 접고 조용히 씨 뿌리는 일이나 할란다. 이웃을 돕는다거나, 친구의 얘기를 성심껏 들어준다거나,가족의 한 끼 밥상을 정성껏 차린다거나, 하다못해 나를 위해 좋은 음악을 고른다거나… 흥분으로 치닫거나 냉소로 침잠하는마음을 다스리며… 자유… 사랑… 평화… 뒷심을 길러 절대로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포기하기엔 빚이 너무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