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현재의 로마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독일의 추기경으로 재직했던 마리엔 대성당일 것이다. 그러나뭐니뭐니 해도 뮌헨 시민들에게서 가장 사랑 받는 교회당 건물은 단연코 페터 성당이다.

그러나 이 페터 성당이 바로 뮌헨이란 도시가 생기기도 전에존재했던 수도원의 후신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2세기에 이 지방의 영주가 이웃에 있는 다리를 불태우고 무역로 통행권을 빼앗음으로써 뮌헨이란도시가 형성되었는데, 뮌헨이란 이름도 수도사란 뜻의 옛말 “무니헨”에서 따온 만큼 이성당은 뮌헨에서 가장 역사 깊은 유적이라 할 수 있다. (“딸아이 미행기” 뒷부분에 “오늘의 역사공부” 참조 )

뮌헨 시민들은 이 성당의 탑을 알터 페터(늙은 페터, 페터 할아버지)라고 사랑스럽게 부르며 주제가도 만들어줬다. 이 멜로디는티비 방송국에서 막간을 알리는 표시로 사용되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페터 성당의 복구를 위하여 성금을 모금할 적에는 티비에서이 멜로디의 마지막 톤을 빼먹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아직 덜 끝낸 숙제가 하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영화의 도시 뮌헨에는수많은 영화사와 방송국이 있으므로 이런 일이 가능했다.

히틀러의 집권지였던 뮌헨의 도심은 이차대전 때의 융단폭격(총 66번의 공습)으로 2.5%의 건물만 남기곤 다 파괴되었고 그때 페터 성당도 파괴되었다. 문화재청을 비롯한 정부에선 페터 성당을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문화재를 대하는 시각에도 시대에 따라유행이 있어서 전쟁 직후 독일에선 순수한 원형보존 아니면 철거라는 의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다이나마이트를 꽂을 구멍까지 만들어 폭파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도 주임 신부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항거해서 결국 철거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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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직후. 공습으로 폐허가 된 페터 성당


시민의 성금에 의한 복구작업은 꾸준히 계속되어 불과 8년 전인 2000년에야 천장에 그린 벽화가 완성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화가찜머만이 그린 천장 벽화가 재현된 사연역시 눈물겹다. 전후에 복구를 하려고 보니 천장 벽화에 대한 기록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희망을 잃은 상황에서 한아마추어 사진작가의 흑백사진들이극적으로 발견되었다. 그 사진작가는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페터 성당의 천장 벽화를 한 구석도 빠짐 없이 매우 꼼꼼하게, 많은 양의 사진으로남겨놓았던 것이다. 이 흑백사진들을 바탕으로 미술사 전문가들은 화가 찜머만이 다른 지방에 남긴 교회의 벽화를 순례해서 그가 애용한색감을유추해냈다. (프레스코라고 불리는 벽화는 두 사람이 작업한다. 한 사람이 벽이나 천장에 바탕작업을 해놓으면 화가는 그 자리가마르기 전에 속히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한번 붓을 대면 절대로 수정할 수 없는 고난도 작업이라고 한다.)

건물의 형태는 로마시대의 공회당 건물에서 파생한 “바질리카”로서 중앙이 높고 양쪽에서 낮은 천장이 받드는 형국이다. 양쪽 지붕 위로 높이 솟은 중앙벽에 창문을 낼 수 있어서 내부가 골고루 밝은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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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시대의 바질리카. 학자들이 추정하는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의 전신.


양쪽의 중앙벽을 받치느라고 내부에 두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기둥에 열두 제자의 조각상을 달아놓은 탓에, 페터 성당에서 중앙제단을 향해 걸어가는 통로는 마치 로마의 승전로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페터 성당의 중앙 제단 역시 바티칸의베드로 성당의 제단을 본땄으며, 제일 높은 곳에는 카톨릭 최초의 교황인 베드로 조각상이 앉아있다. 이는 뮌헨이 수도로 있는 바이에른 왕국이 종교적으로 교황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표시였다. 베드로가 머리에쓰고 있는 교황관은 바티칸에서 교황이 서거하면 내려졌다가 새 교황이 취임하면 다시 씌어진다. (우리가 베드로라고 부르는 이름은라틴어로 페트루스, 이태리어로 피에트로, 독어로 페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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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을 향하는 중앙 통로와 천장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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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의 상부. 교황관을 쓴 베드로 조각상


페터 성당에는 그 외에도 여러 시대를 풍미하는 귀중한 문화재가 많이 있다. 17세기에 로마에서 도끼날에 의해 순교한 여성의해골이 옷 입고 누워있는 유리관은 중앙제단 왼편에, 기도의 영험이 있다는 뮌헨 3대 마돈나의 하나인 마리아 그림은 중앙제단오른편에 있다. 로코코 시대의 유명한 조각가 이그나츠 귄터의 조각상을 보면 여자 천사들이 전부 눈을 반쯤 감고 있는 모습인데,장님인 자기 부인을 모델로 해서 그렇다고 전해진다. 이런 문화재들은 전쟁 때 폭격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장소로 옮겨져서보관되거나 그 앞에다 벽을 쌓아 막음으로써 가까스로 지켜졌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면 동그랗게 테를 두른 유리를 발견할 것이다. 이는 중세 시대의 인간이 유리로 창문을 만드는 최초의 공법이다. (독일박물관에 가면 유리의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또 잘 보면 벌집처럼 육각형으로 테를 두른 유리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원형 다음 단계의 공법으로서 유리를 육각으로 자르면 자투리가 덜나오는 것에 착안한 결과다. 페터 성당같이 오랜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문화재 안에는 이렇게 건축자재의 역사까지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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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유리창 기술. 세계 과학박물관의 원조인 독일박물관 3층 유리 전시관.


유럽에서 교회의 내벽이나 외벽을 보면 난데 없이 묘지의 비석들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옛날에는 항상 교회 마당에공동묘지가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되도록이면 교회 가까이 묻히고 싶어했기 때문에 왕족들은 교회 밑에 안치되기도 했다.사람이 밀집해서 살며 우물물을 길어 먹는 도심 안에 공동묘지가 있는 것은 (특히 전염병이 도는 시절에) 주민의 보건에 해롭다는인식이 싹트면서 공동묘지는 성문 밖으로 물러나게 되었고, 이때 권세 있는 가문에서는 비석이라도 교회 벽에 붙여두고자 한 것이다.

페터 성당의 탑은 뮌헨 시내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곳이다(입장료 1.50유로). 306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하지만 항상보람이 있다. 온 시내가 굽어 보이며, 날이 맑을 때는 100km 전방의 알프스의 만년설까지 또렷하게 보인다. 주위에 운집한최고의 문화재 건물들이 사진 찍기 가장 좋은 각도로 코앞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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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서 가장 유명한 앵글. 왼쪽이 마리엔 대성당, 오른쪽이 신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