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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격조했지요?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재미나게 얘기해드리려고 했는데 몸이 고장나는 바람에 책상에 앉을 수 없었답니다. 걱정하실까봐 내일 길 떠나기 전에 잠시 인사만 드려요.

저는 요즘 아우구스부르그 대성당 연구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고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혹할 만한 건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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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테인드글래스 성화 시리즈가 존재하는 문화유산이라는 사실 이외에도 실무자들에게 특별히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로마네스크 석회암 사이에 로마시대의 벽돌이 끼어 있고, 그 자리를 고딕시대의 벽돌이 잇대거나 막고 있으며,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이어근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증축되고 복원된 건물이어요. 지금 벽에 균열이 생겨 귀중한 스테인드글래스가 파괴될 위험이 있어서근본적인 조사를 통해 원인을 규명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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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재미있는데 노동강도가 좀 셉니다. 제가 사다리는 좀 타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좀 무서워요. 하나님께 너무 가까이 가서 일하는 건 앞으론 좀 피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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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초반기에 호된 독감에 걸렸지 뭐여요? 의사는 그 몸으론 어림도 없다고 병가를 끊으라지만 프리랜서가 병가가 뭡니까?더군다나 건물을 보수하는 건설 노동자들이 제 뒤를 바짝 쫓아오며 공사하기 때문에 저는 그 전에 일을 끝내야 하거든요. 밤에는끙끙 앓다가 새벽에 부시시 일어나서 기침이 터질까봐 숨을 살살 쉬면서 기차 타고 일터로 갑니다. 막상 일터에 도착하면 아픈 것도다 잊어버리지요. 사다리 타는데 지장이 있을까봐 무서워서 감기약도 안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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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저를 불쌍히 여기기는 커녕 아주 미워해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요. 더구나 자기네 회사 같으면 엄청난 안정장치를해야할 일터에서 맨몸으로 사다리를 타고 지붕을 타는 문화재 실측기사들을 어리석다고 엄청 매도합니다. (우리나라 남편들이 이사갈때 부인이 버리고 갈까봐 잽싸게 트럭 조수석에 앉아 있는다는 얘기를 해줘야겠습니다.)

가만 생각하니까 제가 약간 미친 것도 같습니다. 가미가제가 생각나더군요.

누워서 앓는 김에 책이라도 보자고 집어든 게 운명적으로 “일본의 재구성”이었습니다. (패트릭 스미스 작, 노시내 역, 마티출판) 일본 얘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얘기를 하는 것 같고, 우리가 이상하게 행동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기도합니다. 제가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어리석음의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귀중한 책을 발견해서 유려한 문장으로 번역해준 노시내님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그런데요, 이왕 어리석은 김에 좀 뻗대 볼랍니다. 이 성당이 이차대전 때 어떻게 지켜진 줄 아십니까? 폭격경보가 울리면 노인 신부님과 열두어 살의 아이들이 지붕 밑 다락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성당으로 투하되는 소이탄(폭발은 없고 화재만유발함)을 손으로 잡아서 바깥으로 집어던졌습니다. 열다섯 살 이상의 남자들은 전부 전장에 끌려나가고 노인들과 여자들과 아이들만남아서 이렇게 지켜온 문화재입니다. 이런 식으로 천 년을 버텨온 건물입니다. 어찌 제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진 마세요. 저도 “일본의 재구성”을 읽은 값을 할 거에요. 다시 뵐 때까지 안녕히!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