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 첫눈이 왔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남편도 나를 보며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보러 가는데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잠시 가게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이에 자전거 안장이 하얗게 변했다. 나는 기침이 나왔지만 갈비뼈가 아파서 억지로참았다. 물건을 들 때도 갈비뼈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남편에게 눈치가 보여서 안 그런 척했다.

“첫눈이 오는데도 어째 즐겁지가 않네.”
“이 날씨에 그 몸으로 공사장에서 지붕을 타는데 즐거울 리가 있나?”
남편이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나는 또 남편의 입에서 며칠 쉬라는 말이 나올까봐 얼른 입을 다물고 딴청을 피웠다.

남편은 왜 내가 아프면서도 일을 며칠 쉬겠다는 소리를 못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공사가 계속되기 때문에 내가 쉬면 도면으로 남지 못하고 묻히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그러면 어떠냐는 거다. 그건 이런 식으로 빠듯하게 계획을 짜는 윗사람들이 무능한 탓인데, 윗선의 무능을 생으로 몸을 바쳐 막아내는 아랫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야단이다. 나처럼 묵묵히 희생하는 하부 구조가있는 한 이따위 시스템은 개선될 수 없는 거라고 이젠 나한테까지 화살을 돌린다. 내 한국적 성장배경과 교육까지 의심하는 눈초리다. 안 그래도 “일본의 재구성” (패트릭 스미스 작, 노시내 역, 마티출판)을 읽고 뜨끔하던 차에 영 기분이 나쁘다.

어허, 누가 모르나, 이 사람아! 너는 이 세상 모든 일을 니가 다 고치면서 사니, 엉? (빽 소리 지르면 기침이 터질까봐 속으로만 생각함.)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에 내 계획이 약간 어긋나서 이렇게 된 것이다. 올 여름에 아우그스부르그에 놀러갔을 때 나는 대성당 앞마당에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과 한창 공사중인 대성당 지붕을 번갈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유서 깊은 건물을 한번 조사해보고 싶다”라는막연한 꿈을 가졌다.

그래서 이 대성당을 실측 조사해달라는 문의가 들어왔을 때 나는 앞뒤도 안 재보고 무조건 승낙했다. 다른 공사장에 비해서 조금위험하긴 했지만, 어떤 일이라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해보고 싶었다. 단지 내가 아프게 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이다. 노안이 오고 몸의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내 나이를 잠시 불안하게 돌아보긴 했어도…

운이 나쁘게도 나는 첫날부터 독한 감기에 걸렸다. 하지만 일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는지는 잘 알고 있는 내 입에선 일을시작하자마자 쉬겠다는 소리가 차마 안 나왔다. 나는 약속한 일을 되도록 빨리 끝내주고, 그 후에 푹 쉬려는 계획으로 일단 몸을 혹사했다. 아우그스부르그는 뮌헨에서 왕복 세 시간이 넘는 거리였으므로 나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 찬바람과 먼지가 몰아치는 현장에서 쉬지 않고 일하고 밤 늦게야 돌아왔다.

그런데 내가 일을 너무 빨리 끝낸 모양이다. 예산이 빠듯하다고 하더니 아직 내게 줄 돈이 남았는지 일의 양이 슬금슬금불어났다. 그러나 내 입에선 그만 하겠단 말이 여전히 안 나왔다. 몸 상태도 어느덧 그럭저럭 견딜 만했거니와, 일단 내가 손을 댄일이라 끝까지 잘하고 싶은 오기도 발동했다. 칭찬하면서 일을 계속해달라고 부탁하는 소리를 들으면 얄팍한 허영심이 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왜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전형적인 3D 직종인 이 일을 좋아하는 걸까? 이런 건물은 한 시대만 살고가는 인간인 내가 상상할 수없는 엄청난 역사와 인생사의 증인이라는 경외심 이외에도,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강도 높게 겹치는 일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붕위로 높다랗게 솟아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둥근 창문이 알고 봤더니 고딕 시대에 찍은 벽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로마네스크 시대에 쌓은 벽이 로마시대의 건물을 해체한 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 등을 밝혀내는 일은 흥미롭다.

또한 나는 기술자들이 각자 맡은 일을 익숙하게 하는, 더럽고 시끄러운 공사판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작은 몸집으로 살금살금사다리를 타는 여자에게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지만, 내가 사다리를 옮겨달라고 부탁하면 기꺼이 도와주는 인부들이 나는 참 좋다. 그들과 한 지붕 밑에서 비슷하게 더러운 복장으로 비슷하게 어려운 일을 한다는 사실에 난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하는 일의 성격과 위상에 대해서는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의 마지막 장 “현장 이야기”의 마지막 글 “상식과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솔직하게 설명했습니다. 외국에 살기 때문에 한국책을 구입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그 부분을 발췌해서 새 글로 올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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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공사판에서 일하는 그 겨울에는 나의 고질적인 수족냉증이 사라진다. 일을 시작한 첫 사흘 동안엔 손에 가시가 수도 없이 박혀서 저녁이면 그걸 빼내느라고 온 가족을 괴롭히지만 며칠 후부터는 가시가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하고 투박해지는 내 손을 나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처음엔 무서워서 벌벌 떨던 장소를 곧 능숙하게 오르내리게 될 때 나는 내 뇌세포가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함을 확인한다. 이 일을 하는 한 난 치매에는 안 걸릴 거라고 했더니 남편이랑 딸이 입을 모아서 대답했다. “치매에 걸리기 전에 죽을 거니까.” 이런 고이헌!

대성당의 육중한 문을 열고 향을 피운 냄새와 세월의 먼지 냄새가 섞인 공기를 호흡하는 순간 난 행복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많은 전쟁을 견뎌온 고색창연한 스테인드글래스에 경외의 눈빛을 보내며 내부를 가로질러 사무실로 가서, 독실하게 성호를 긋는복사님에게서 열쇠를 받아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의 공사장에 딱 도착하는 순간에 나는 세상을 잊는다. 그리고는 점심으로 싸간 빵 한 조각을 먹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몰두한다.

하지만 올 겨울엔 한 가지가 달라졌음을 나는 느끼고 있다. 일하러 가기까지는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아 미적댄다는 점이다. 나는 침대에서 빈둥대는것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집을 떠나기 전에 내 침대를 몇 번씩이나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곤 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모통이를 돌아 눈 앞에 대성당이 척하니 나타나는 순간 가슴마저 철렁한다.

왜 그럴까? 단순히 몸이 아파서 겁이 나는 걸까? 나이를 돌아보라는 현명한 신호일까? 아니면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게을러지는 징조일까? 이런 순간을 극복하는 것은 미련한 치기일까? 아니면 정취있게 늙는 비결일까?

어젠 폭퐁우가 무섭게 몰아쳤다. 대낮인데도 하늘이 먹통처럼 깜깜하고, 공사판 가설 지붕을 덮은 휘장이 천둥치는 소리를 내며 바람에 펄럭였다. 간간히 굵은 빗방울이 들이치며 강열한 회오리 바람이 벽과 목재 사이사이를 휘돌았다. 내 몸이 휘청거렸는지 벽체가 흔들렸는지는모르겠지만, 성당 전체가 바람에 실려 둥실 떠가는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성당을 타고 하늘로 뜬다면 그건 분명히 천당이겠군. 이렇게 낭만적인 일터라니! 나는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큰 소리로 웃었다. 현장에서 생각하면 정취이고 집에 가서 생각하면 치기겠다.


PS
오래간만이죠? 바쁘기도 했지만 일하고 와선 끙끙 앓느라고 컴퓨터 앞에 앉을 여유가 없었어요. 이젠 갈비뼈 아픈 것만 빼고는 몸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답니다. 다음 주부터는 일 주일에 사흘씩 일하기로 합의를 봤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근데 그렇게 질질 끌다가 언제까지? 설마 겨울 내내?”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인제는 빨리 끝내려고 서두르지 않을 거에요. 그렇다고 해서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던대요. 일단 급한 불은 껐으니까 이젠 제가 속도를 조정할 겁니다. 다시 아프면 며칠 쉬기도 할래요. 항상 제가 주인인질대 그래도 가끔 그것을 주장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뒤늦게라도 조금씩 노력하려구요.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게 메일을 주신 분들께 저는 모두 답장을 드렸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못 받으신 분들은 스펨통에서 한번 찾아보시구요, 그래도 없으면 다시 연락주세요. 그리고 “고”로 시작하는 성함을 가진 두 분께 보낸 메일이 되돌아왔어요. 귀엣말에 넣어주신 메일 주소가 틀린 것 같아요. 다시 한번 연락 주실 때 본인의 메일 주소를 확인해주세요.

이제 가끔 글 올릴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각자 계신 곳에서 모두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