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아이들 학교에서 외국으로 답사여행을 가는데 여성인솔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같이 따라간 어른들 중에는자식들을 통해 친구가 된 타냐도 있었다.

타냐의 아들과 우리 딸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8년 동안이나 쭉 한 반에서 공부한소꼽동무들이다. 얘네들이 친한 줄은 알고 있었지만 가만 보니 이것들이 좀 수상했다. 나이가 만 16세나 되는 것들이 버스에서도나란히 앉아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자더니 춥다고 남자애가 우리 딸 어깨를 껴안고 다니지를 않나, 한번은 보니까 우리 딸이 남자애머리도 빗겨주고 안마도 해주는 것이 여간 가관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단순한 친구사이라며 천연한데, 타냐와 나는 서로 쿡쿡 찔러눈짓을 하고 몰카도 찍는 등 촌스런 짓은 우리가 다 했다.

어느날 자유시간에 남자애 방에 놀러가겠다는 딸을 내가 말렸다.
“걔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오늘은 자기 엄마랑 라틴어 공부하기로 했대.”
딸은 킥 웃으며 “타냐는 인생관이 이상해.”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다. 조금 있다가 타냐를 만나서 내가 일렀다.
“너희들 오늘 공부해야 된다고 내가 말렸는데도 이것이 콧방귀도 안 뀌고 네 아들 방에 놀러갔다.”
“아니, 이것들이?”
버르장머리 없는 요샛것들에 대한 테마로 재잘재잘 얘기꽃을 피우느라고 타냐는 그날 아들 공부 시키는 것도 잊어버렸다. 타냐도 나도혹시 나중에 사돈댁이 될지 몰라서 이제는 내 자식이건 남의 자식이건 자식 욕하기가 은근히 조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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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반 학생들의 로마답사. 바티칸의 베드로광장에서 발표하는 학생들


공부할 아이들만 모아놓은 김나지움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독일에서 타냐같은 엄마들을 많이 보았다. (독일에선 4년 과정의초등학교를 마치면 전 학생의 30%만이 대학에 가기 위하여 김나지움에 진학한다.) 아니, 내 주변에는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성적을 챙기고, 단어 공부를 같이 하는 엄마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 나같이언제 시험을 보는지도 모르고, 받아온 점수도 모르는 엄마는 오히려 예외에 속한다.

독일사람들은 내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엄마라서 아이들을 들볶지 않는 줄 알고 있지만 사연인즉슨 이렇다. 아들이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첫 숙제를 받아왔을 때였다. 처음 배우는 글자인 M을 공책에 세 줄 써오라는 숙제였는데 아들은 M을 길게늘여서 한 줄에 하나씩, 딱 세 개를 써서 세 줄을 채웠다. 안 그래도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놓고 조마조마하던 나는 그걸 보고너무 놀라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지우개를 들어 박박 지웠다. 뜻밖에도 아들은 마구 울면서 다시그렇게 쓰는 것이 아닌가?

아이의 결연한 태도에서 나는 아이가 선생님의 말귀를 못 알아듣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머리를 쓴 것이라는 걸깨달았다. 불현듯 이 아이가 간난아기였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뒤집기를 연습하던모습은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배움을 향한 간난아기의 의지는 얼마나 본능적이고도 강력한 욕구인지!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배움의단계를 맞아 글자를 늘여쓰는 아이의 해결책은 얼마나 기발하고 참신한 아이디어인지! 아이니까 야단을 치지, 만약 어른이 그랬다면천재라고 칭찬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 내가 아이의 독창성을 몰라봤던 일을 참 미안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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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난아기는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닌데도 저렇게 열심히 머리를 들고 엉덩이 드는 연습을 했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아들 못지 않게 둘째인 딸도 꽤나 늦되었다.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 때, 8 더하기 3을 하는데 얼마나느린지 난 애가 계산하다가 잠이 든 줄 알았다. 자기 손가락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더니 새끼손가락을 한번 살짝 구부려보고는11이라고했다. 그때 나는 내가 모르는 사고의 패턴으로 아이가 계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아이의 사고 패턴을 함부로 방해하지않으리라 결심했다.

우리집 아이들은 둘 다 난독증이 있었고, 암만 노력해도 구구단을 못 외웠다. 턱걸이로 김나지움에 들어간 후에도 한동안은 간신히낙제를 면해가며 학교에 다녔다. 그렇지만 교우관계도 좋았고 스스로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실력과 점수는 동의어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고 걱정하는 선생님들께 나는 우리 아이들은 정서가 안정되었으므로너무 심려하지 마시라고 도리어 위로를 드렸다.

나와 남편은 공부를 많이 한 편이지만, 공부 덕분에 부귀영화를 누려본 적도 없고, 또 부귀영화가 없다고 해서 불행하게 느낀 적도없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학력에 대한 강박관념이 적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도 초보 부모인데 자식의 앞날이 불안하지 않을 리가있나? 그렇지만 아이들의 성적에 참견함으로써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할 기회를 앗을 수는 없었다.자녀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모의 도움으로 잘 사는 게 아니라, 부모의 도움 없이 잘 사는 것이기에.

성적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우리가 교육에 무관심한 것은 결코 아니다. 자녀교육은 남편과 내 인생의 순위 1번이다. 단지 우리는공부에 있어서아이들의 본능적인 열정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간난아기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뒤집기 연습을 열심히 하듯이, 어린이들에게도스스로 열정을 바치는 놀이들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레고나 인형놀이같이 스스로 택한 프로젝트를 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몰두했다. 그것을 보고 우리는 이보다 더 나은 학습은 없다고 느꼈고, 어떤 선생님도 이보다더 잘 가르칠 수는 없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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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뭔가 열심히 만들고 노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던 아들.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의 놀이를 진지하게 보호하고, 행여 아이들이 도움이라도 청할라치면 갖은 상상력을 다동원하여 도와주었다. 이런 것이 바로 영재교육 아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독일의 학교는 점심 때면 파했으므로 놀 시간은 늘 충분히있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독일에는 오전에만 수업이 있었다. 지금은 초중고 과정이 총 13년에서 12년으로 줄면서 오후에도 수업을 한다.) 아이들이학교에서 받아오는점수에 우리가 초연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의 놀이실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창조력과 집중력이 놀이를 통해 꾸준히개발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놀이 프로젝트가 학교의 교과과정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애들 책임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 가정의 교육은 두 가지 원리에 기초했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호기심과 창조성을 유발하고 충족시킬 수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 그리고 친구들이 기꺼이 놀러오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우리집에는 티비나 비디오가 없는 대신모든 살림과 공구가 아이들의 장난감이었으므로 아이들은 항상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행하는 적극적인 놀이자세에 습관이 들었다.또한우리는 또래의 친구들만한 선생님이 없다고 여겨서 아이들의 친구들을 극진히 대접했으므로 우리집은 늘 남의 아이들로 북적거렸고,식사시간이면 동네 밥집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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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집에서 발명을 했던 남편은 집안에서 자전거도 조립하고 가구도 만들면서 온 집안을 작업장으로 만들어놓았다.그래서 모든 살림과 공구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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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이들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집.


이렇게 큰 틀을 만들어준 후에는 아이들의 자율성에 맡겼지만, 아이들이 십대 중반이 될 때까지 우리는 남몰래 정신을 바짝차리고 감시했다.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같이 중독성이 있는 놀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했고, 무엇보다도 밖에서 충분히 뛰어놀도록 유도했다.그리고 성적에는 왈가왈부하지 않았어도 아이들이 학업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는 면밀히 관찰했다. 기초가 너무 떨어져서 혼자의힘으로는 만회하기 힘들겠다 싶을 때는 다른 집 아이들까지 서너명씩 불러다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이며 같이 가르쳤다.

아이들 나이가 십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우리 부부는 그나마 더욱 고삐를 늦추고 느긋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어른이라고 해서저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부모라는 특권으로 사람을 과소평가하고 참견하는 일이 낯간지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친구처럼 곁에 있어줄 뿐이다.

아이들은 학년이 높아지면서 점차 성적이 올라 안정권(우등권이 아님!)에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당연한 일인 것 같다.공부의 내용과순서가 학교의 교과과정과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은 꾸준히, 자발적인 집중력을 바쳐 머리 쓰는 훈련을 해온 셈이니 말이다.하지만 성적이 오르는 현상은 부수적으로 따라온 것이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우리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이 우리 품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고유한 특성과 재주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간열중해서 노는 와중에 자신이 원하는 것,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개발해왔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렇게 중대한과업을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했다는 자신감을 안고 세상으로 걸어나가는 내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 자긍심의 지수를 학교 성적에 두지않았듯이, 커서도 행복의 지수를 출세에 두지 않는, 현명하고도 소박한 인생을 기원한다.


(레몬트리 11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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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만들어서 자전거에 끌고 다니던 다용도 차량. 공원에서 나뭇잎 파는 장사를 할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구두쇠네 집 아이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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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장식을 만드느라고 날달걀을 입으로 불어서 속을 빼는 일이 살모넬라균 때문에위험하다고 내가 불평했더니 당시 12살 난 아들이 레고로 달걀속 빼는 기구를 하나 만들어 주었다. 그걸 좀 보기 좋기 다듬어서 유럽특허청어린이 발명대회에 출품했다가 입상한 작품이다. 그냥 재미로뭔가를 하다보면 간혹 이런 일이 생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