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살그머니 빠져나와인터넷을 하며 놀고 있는데 남편이 아침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렀다.

길가로 창문이난 거실에선 안 보였는데 부엌에서 보니 뒤뜰에 눈이 쌓인 게 보였다.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카스테라를 커피에 찍어서 먹었다.아이들은 항상 늦잠을 자고 부부만 단둘이 하는 주말의 아침식사가 고맙게 느껴졌다. 이 순간만으로도 나의 인생이 성공이라는 생각이들었다. 나는 행복에 겨워서 남편에게 콧소리를 냈다.

“우리가 인생에서 못 한 것도 많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다 성공했지?“
“우리가 성공한 것을 우리에게 소중한 거라고 개념 짓는 것일 뿐이야.“
남편의 무뚝뚝한 대답에 나는 흥이 화악 깨졌다. 눈치 없는 남편은 계속 말을 이었다.
“사람은 언젠가는 자기만의 거짓말을 만들어. 자기 인생이 뜻있는 것이었다고 믿기 위해서.“
내가 속으로 “이걸 그냥? 코드도 무드도 안 맞는 인간아!” 하고 욕하는 것도 모르고 남편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식관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당신한테 휘둘려서 아이를 가진 거야.“
“웃겨. 누가 누구한테 아기를 만들었는데?“
“당신이 괜찮을 거라고 해서 콘돔을 안 쓴 거잖아?“
“그땐 괜찮을 줄 알았지. 의사가 임신이라고 했을 때 좋아서 운 사람이 누구지?“
“당신 아니야?“
“아니야. 자기가 먼저 그랬어. 자기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한 거야.“
“그럼 당신은 낙태 생각도 한 거야?“
“그렇지는 않았지만 임신이 기쁘지만은 않았다구.“
“그랬어? 결혼식 올리자마자 임신했기에 난 당신이 되게 원한 줄 알았어.“
나는 꽥꽥 거렸다.
“나도 꿈이 있는 여자였다구.“
오래 같이 살다보면 푼수가 다 되어서 이런 정도론 화도 안 난다. 둘이 히히 웃으며 후딱 포옹하고 급하게 헤어져서 각자 자기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우리 딸의 말에 의하면 자기는 완벽한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춘 사람으로 친구들간에 회자된다고 한다. 특히 가정이 좋은 걸로 또래의부러움을 산다고 하니, 평소에 우리 가정에 대한 불평 불만으로 끊임없이 양양거리는 딸애도 사실은 그렇게 불행하지 않을지도모른다.

우리 가정의 화목의 비결은 참으로 사소한 데에 있다. 세끼 식사를 온 식구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식사를 늘 같이 한다는일은 사소해 보이지만 독일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부부도 이를 위해 댓가를 치르고 있다.학교에서 갓 돌아온 아이들의 입에서 학교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버지로서 대단히 유익하다며 매일 점심시간에 집에 들르는 남편은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와의 친분을 통한 이익을 포기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로 문화재를 실측 조사하는 나 역시 먼 곳에있는 일거리는 웬만하면 거절한다. 그래서 일감이 오래 끊어질 때도 있지만 그러면 글 쓸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대로 괜찮다고생각한다.

우리는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겉보기엔 별볼일 없을지라도 우리 스스로는일의 내용에 만족한다. 더이상의 성공을 바라지 않는데 가족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의 행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내가 특별히 바쁘거나 밥순이 노릇이 지겨울 때마다 나는 부엌일이 영재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우리 아이들이“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나는 식탁에서 배웠다.“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학교 성적은 그저그래도 영재임에 틀림없다. 학교라는 거대한 사회에 적응하면서도 그 시스템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취향이 비슷한 부모를 이용해도약하는 아들, 취향이 다른 부모 밑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내는 딸, 자긍심의 지수를 학교 점수에 두지 않는 현명함, 이런점들이 모두 우리 아이들이 영재라는 증거다.

우리 부부의 이런 인생관은 절대로 우리 스스로의 작품이 아니다. 격동의 시기에, 주어진 운명에 반응하며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뿐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낯간지러운 사건이라면 아마도 내가 허니문 베이비를 가진 것이겠다. 도수 높은 안경 낀 딸이연애 박사인 줄을 모르시는 친정어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애를 덜컥 임신부터 시켰다고 사위를 원망하셨다. 사실은 내가 피임의배테랑인데 어쩌다가 실수한 거라고 실토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계획하지 않은 임신으로당황하기는 우리도마찬가지였다. 세속의 경쟁이라면 피한 적도, 져본 적도 없이 줄기차게 달려온 나나 남편의 계획 속에는 출산과 육아를 위해 비워둔공간은 없었다.

하지만 우리의 추상적인 사랑이 내 몸 안에서 한 생명으로서 자라고 있다는 구체적인 사실은 우리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우리는우리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제맘대로 찾아온 운명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었고, 이보다 더욱 적절한 임신의 시기는 또 없을 거라고믿게되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있었다. 아이는 우리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덤이라고 믿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우리의모든 계획은 차질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기는 자기가 누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위한 덤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인생이라는 것을 태어나는 순간부터주장했다. 출산 사고와 함께 태어난 첫 아이는 인큐베이터의 신세를 질 정도록 병약했고, 막연히 자신만만했던 우리는 아이 살리기에급급했다. 그것은 차라리 다행이었다. 출산 사고에 얽힌 사연으로 남편과 나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지만, 너와 나보다 더욱중요한 임무 앞에서 우리는 힘을 합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새 생명의 위력은 막강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세상에서이루지못할 것이 없으리라는 우리의 오만함을 아기는 단숨에 날려버렸다.

게다가 커다란 역사의 흐름 앞에서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허상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었다. 첫아이의출산직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꽃피는 낙원이 될 거라던 정치가들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통일 독일은 지독하게 춥고 긴 불경기의터널로접어들었다. 대학생들이 졸업도 하기 전에 벌써 취직을 보장받던 호시절은 가고, 이제는 어떤 과목을, 어떤 성적으로 졸업해도100통의 이력서가 모두 되돌아오는 무서운 실업의 시절이 왔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뭄에 콩 나듯 잘 나가는 사람들의 얘기가들려와 우리의 패배감을 가중시켰다.

그래도 열번 울다가 어쩌다 한번 방긋 웃는 아기 얼굴만큼 세상에서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경험한 우리 부부는 우리가 가진소중한 것에대한 자긍심으로 도도했다. 우리에게 깊은 사랑을 보내는 아기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한없는 신뢰를 받는 우리 자신이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저절로 느껴졌다. 아이의 눈빛은 부모가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자 진로의 이정표가되었다.

남편은 하는 일마다 다 실패하고 동업했던 친구들과도 파탄을 겪었다. 그러던 중에 지멘스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받았다. 이같은불경기에 철밥통으로 알려진 회사에 취직한다는 일은 기적에 가까운 행운일 터였다. 와이셔쓰를 깨끗하게 다려입고 면접에 다녀온남편은 감이 좋다고 했지만 결국 떨어졌다. 몇년 후에 우연히 알게된 사실인데, 그때 지멘스에선 남편이 국제결혼한 사실을눈여겨보고 국제적인 일꾼으로 양성하려고 남편을 선택했고,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역동적으로 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남편은”나는 어린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붙을 줄 알고 감이 좋다니!

내가 엑스포 건으로 외국에서 일할 기회가 왔을 때 남편은 전업주부가 되는 일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래야 아이들이 행복하고,아이들이 우선 행복해야 자기가 행복하다는 지론이었다. 엑스포가 끝나자 이번에는 내가 아이들을 돌보며 남편의 취업을 도왔다.남편이 가까스로 안정된 직장을 구하고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할 나이가 되자 우리 부부는 나의 자립을 위해 힘을 합쳤다.

지금은 둘 다예전의 꿈에서 먼 일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세태를 거스르며 사느라고 어렵게 구한 일이라, 또 돈은 못 벌어도 시간이 넉넉한일, 즉우리 인생관에 어울리는 일이라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돈이 아니라 부모의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를 평생에 걸쳐철저하게 실천할 수 있었던사실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감사한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이렇게 풍요로운 인생을 맛볼 생각도 못했을 것아닌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뒷면에는 우리가 초반에 직업적으로 승승장구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도 분명히 있을것이다. 우리의 인생관이 확고하게 서기 전에 일에 대한 유혹이 먼저 들어왔다면, 승부욕이 강한 우리의 성격으로 보건대 진로를 그방향으로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그랬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지금과 다른 종류의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내가 지금 아무런 후회도 없이 이렇게 행복한데,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폄하할 이유가 없다. 또한 이런 행복감이 나만의거짓말인지 아닌지도 고민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지금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레몬트리 12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