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그스부르그 대성당 건물 조사에서 내가 맡은 임무는 로마네스크 시대(11세기)에서 고딕 시대(14세)를 거쳐 근대, 현대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건축, 보수된 벽을 실측하고

관찰함으로써 변천사를 기록하고 읽어내는 것이다. 독일 남부 지방에서는 로마네스크 시대에 석회암으로,고딕 시대에는 벽돌로 벽을 쌓았다. 로마네스크 시대의 벽에 간간이 섞여있는 벽돌은 로마 시대의 건물을 헐어 재사용한 것으로서고딕 시대의 벽돌에 비해 크기와 성분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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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서 거론한 세계 최초의 색유리 성화 시리즈는 로마네스크 시대의 산물이다. 창문의 형태도 위가 둥근 로마네스크 양식이다.그렇지만 그 창문의 위치는 오리지날이 아니라 훗날 장소를 옮긴 것이다. 고딕 시대에 성당을 증축하고 내부를 유행에 맞게리모델링하면서 창문도 새로운 간격으로 새로 뚫었다. 이때 창문의 형태를 신식인 고딕식으로 뾰족하게 만들지 않고 구식인 둥근형태로 만든 이유는 아마도 로마네스크 시대의 색유리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이 색유리 시리즈가 당시에도 흔치않은 명품이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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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진 왼쪽에 보이는 회벽은 로마네스크 시대의 벽이고 오른 부분은 창문이었던 자리인데, 고딕 시대에 다른 곳으로 창문을 옮기면서 벽돌로막았다. 그리고 그 앞으로 쌓은 벽돌벽을 보호하는 작은 지붕을 두었던 흔적이 사선의 기와 조각과 자국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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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실측조사에선 일일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자로 재서 도면을 그린다. 연필로 그린 도면은 몇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색이 바래거나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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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측정 기계도 좋고, 사진 기술도 좋은데 꼭 그렇게 꼭대기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수작업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도 젊어서는 그런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역사가 깊은 건물에는 많은 사건과 비밀이 숨겨져 있다. 암만 꼼꼼히 관찰해도 절대로 눈에 띄지 않을 디테일은 하나씩 측정해서 직접 그림으로써 잡을 수있다. 막연히 알고 있던 사실도 막상 글로 쓰려면 여기저기 미심쩍은 구석이 생겨서 좀 더 철저히 공부해야 하듯이, 도면도 재대로 그리려면 제대로 파악해야 하므로 철저하게 관찰하고 조사할 수밖에 없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이론에 하자가 있으면 도면을 그릴 때 나타난다. 도면에 자꾸 오류가 나거나 앞뒤가 맞지않아서 그 원인을 끈질기게 추적해보면 선입관이 틀려서 그런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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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난이도에 따라 몇 시간이라도 집중해서 일할 수도 있지만 금방 피곤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들고 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꼭대기 공사장으로 한번 올라갔다 하면 되도록이면 오래 작업하려고 이를 악문다. 더군다나 공사와 병행해서 이루어지는 이 프로젝트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공사 인부들이 나를 추월해서내가 실측도면을 작성하기 전에 보수공사를 해버릴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원상태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기록하여 후세에 남길 기회를 영원히 잃는 것이다.

내겐 무심코 소변을 참는나쁜 버릇이 있다. 내가 요의를 감지할 때는 이미 참을대로 참은 후라 상당히 급한 지경이다. 얼른 연장을 내던지고 다다다다 사다리를 타야할 판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잠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 도면이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위에서 갑자기 돌부스러기나 물이 떨어지는 일은 다반사다. 실측도면은 거기 들어간 전문 노동력의 임금만 계산해도 수천유로의 가치가 있거니와, 영원히 잃게될 정보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면만큼은 꼼꼼하게 싸서 안전하게 저장해놓고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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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하는 여자의 화장실 노이로제에 대해서 아시는 분들은 아시리라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현장 이야기에 입체적으로 설명해드렸지요?). 다행스럽게도 이곳에는 성당 옆으로 수도원 회랑이 있고, 거기서 지하실로 내려가면 화장실이 나온다. 날 듯이 사다리를 타고 성당 문을 벌컥 열고 종종걸음으로 내부를 가로질러 드디어 지하실의 화장실에 도착한다. 냉랭하고 찬바람이 휘돌아 옷 벗기가 무섭지만 그래도 실내 화장실이라니, 이게 어디냐?

어휴, 살았다. 간신히 참았네. 앗앗앗, 또 하나의 장애물! 내복바지 두 개, 그 위에 청바지, 그 위에 작업복, 이렇게 해서 팬티까지 합치면 다섯 개의 아래옷을 차례로 내려야 한다. 위쪽으로는 그만한 숫자의 내복과 스웨터가 양파처럼 맞물려 있으므로 아래 위로 하나씩 벗겨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변기를 보는 순간 이미 긴장이 풀린 내 방광, 복장이 이렇게 복잡한 걸 이해하지 못한다. 아씨, 또 지렸다! 이러다가 늙어서 기저귀 차고 다닐라. 나이를 인정하고 생활습관도 나이에 걸맞게 바꿔야 하는데…

이왕 내려온 김에 몸을 녹이고 올라가기로 한다. 너무 춥고 손이 곱으니 능률이 나지않고 속도가 떨어지는데다가 도면이 밉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성당 앞 광장을 털레털레 가로질러서 이태리 커피숍으로 간다. 높은 탁자가 두어 개 놓인 아주 작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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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조르노, 마씨모! 뜨거운, 아주 아주 뜨거운 코코아 주세요.”
몸이 꽁꽁 얼어 들어오는 나를 위해 이태리인 마씨모는 큰 컵에 코코아 가루를 삼분의 일이나 채워서 진하고 뜨거운 코코아를 만들어준다. 잠시 후에 차갑던 몸이 거짓말처럼 녹는다. 다시 반나절을 추위에 견딜 기운을 얻어 공사장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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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는 사다리를 메고 사다리를 타야 하는 일도 생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아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끝없는 고민의 연속일 때도 많다. 너무 무거워서 부득불 남자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나는 자존심이 상한다. 실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어치우고 싶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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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암만 거친 목재를 잡고 지붕을 타도 절대로 가시가 박히지 않는, 단단하게 굳은 내 손이 난 정말 자랑스럽다. 손끝이 투박해서 책장을 잘 넘기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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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어느새 해가 지고 깜깜해진다.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새 인부들이 다 가버리고 나만 혼자 남는일도 있다. 나는 되도록이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혼자 일하다가 사고가 나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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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을 끝내고 깜깜한 밤길을 걸어 아우그스부르그 역으로 걸어간다. 크리스마스 장이 서서 중세도시의 도심이 알록달록아기자기하니 예쁘다. 추운 밤에 밖으로 나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겹다. 크리스마스 장에서 글뤼봐인 한 잔 마실까망설이다가 그냥 역을 향해 종종걸음을 친다. 고맙습니다! 오늘도 무사히! 저의 사진 일기, 문화재 실측 1편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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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친구들께!

지난 해 함께해 주셔서 저는 참 행복했어요. 귀엣말을 통해서, 또는 그냥 마음의 눈짓으로 동감을 나누고 영감을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게 저와 함께 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계 어디 계시던 하시는 일마다 승승장구 만사형통 하시고 몸의 건강, 마음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뮌헨에서 임혜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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