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 600km 떨어진 먼 곳에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의 생신에 다녀오려고 나는 일찌감치 기차표를 예약했다. 그것을 본딸(만 17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친할머니 생일인데 왜 엄마가 가? 자식인 아빠가 가야지.”
“엄마가 가는 게 여러모로 편해서 그래. 엄마랑 아빠는 부부니까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거든. 근데 네가 왜 시비냐? 자기가 가는것도 아니면서?”
“이치에 안 맞으니까 그렇지. 그리고 엄마가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아.”

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하는 나는 그냥 빙그레 웃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은 시어머니와 나 사이의 고부갈등을 보며 자랐다.그간 살면서 내가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한 경우의 90퍼센트 정도가 시댁과의 마찰에 기인했으니 그 갈등을 아이들이 모를 수가 없는것이다. 자식까지 있는 여자가 철도 없지, 시댁 문제로 무슨 이혼까지 하느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그런 상황에서는 중간에 끼인 남편도 적절하게 처신하지 못하고, 그래서 안 해야 할 소리를 서로 주고 받다 보면 부부 간에도만정이 떨어지는 것이다.

세상 어디나 마찬가지로 독일에도 고부갈등이 있다.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의 명절'‘인 크리스마스가 오면 그것이 표면으로나타난다. 젊은 부부들은 명절을 어느쪽 부모님 집에서 보낼지 암투를 벌이기도 하고,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이것들이 혹시 다른 쪽부모 집에 더 오래 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질투하기도 한다. 선물이 문제가 되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이 달라서세대간에 다투기도 한다. 뭐니뭐니 해도 자식, 며느리, 사위가 여럿일 때 생기는 편애나 이간질, 암투가 가장 고약한 불화일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오래간만에 시댁이며 친정 식구들을 만나서 지지고 볶은 사연으로 며느리들의 전화통에 불이 난다.노인네들은 노인네들대로 친척, 친구들에게 젊은 것들 흉 보느라고 틀니가 빠질 지경이다.

그러나 한국의 고부갈등에 비하면 그 정도가 훨씬 약하다. 사회 분위기가 달라서 그렇다. 가부장제도가 거의 사라진 오늘날 독일에선며느리가 남편 집안에서 서열 꼴찌라는 인식이 별로 없다. 그래서 며느리를 대놓고 부려먹거나 구박하는 것이 (공식적으로는) 흉이되는 분위기다.또한 자식들이 부모의 노후보장이었던 시절이 이미 지나간 것도 고부갈등이 약화된 원인일 것이다. 이는 작금의 사회복지제도덕분이다. 돈 안드는 공교육이 제 구실을 함으로써 땅 팔고 집 팔아 자식을 공부시킬 필요가 없어지니 부모가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할 여력이생기고, 또한 다양한 노인 복지로 인해 노일들의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다. 즉, 부모 자식 간에 끈적한 부채감이나기대감, 그리고 의존증이 줄어들면서 그 관계가 점차 건강해지는것이다.

제도로 인해 불평등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인간의 본능이 변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의 배우자에 대한 의심증은 거의본능적이다. 그러길래 고부갈등을 진화론적, 뇌의학적으로 다룬 학술연구도 있는 거겠지. 자기 자식을 믿지 못하는 부모일 수록자식의 배우자에 대한 의심이 많은 것 같다. 내 착한 자식이 여우 또는 마초에게 휘둘려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는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부모들은 못 미더운 자식의 일에 노상 참견해온 습관으로 자식의 부부관계까지도 참견하기마련이다. 이것은 아마도 만국공통의 비극일 것이다.

며느리로서 내가 가장 분하게 느꼈던 것은 차별이었다. 독일의 가정에도, 구세대일수록, 시골일수록 남녀차별이 암암리에 존재한다.그러나 독일의 며느리들은 시부모 흉을 보기는 해도 시댁의 영향력에 심적으로 덜 흔들리는 편이다. 주는 상처에 비해서 받는 상처가깊지않다. 하지만 끈끈한 가족관에 물들은 나는 그렇지 않았다. 외며느리로서 차별의 대상은 남편일 뿐이었는데도, 또 한국의 며느리들에비하면 새발의 피였겠지만, 젊은 시절에는 차별이 참억울했다. 남녀차별인지, 인종차별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구별하는 차별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있었지만 어떤 종류의 차별이라고 해서 당하는 사람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은아니었다.

뭐니뭐니 해도 고부갈등의 결정체는 질투가 아닌가 한다. 적어도 내 경우엔 질투로 인해 고부갈등이 시작됐다. 내가 더없이 행복했던신혼의 임신시절에 나는 이렇게 사랑스런 남편을 낳아서 길러준 시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모시리라 다짐했다. 나는 시어머니께 전화도자주 드렸고 그럴 때마다 덕담삼아 남편 칭찬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것이 실수였다. 나는 그때 몰랐지만 마침 시어머니는시아버지와 사이가 나쁠 때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외에도 이래저래 당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억울한 마음이 드는 시기였던 것같다.

이렇게 실수로 건드려진 질투심은 계속해서 우리의 갈등을 지배했다. 나는 무조건 내 편이어야 할 남편이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만든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꼴보기 싫었다. 남편을 사이에 두고 시어머니는 나를 질투하고 나는 시어머니를 질투했다. 시어머니를 질투할때면 나는 남편을 증오했다. 겉으로는 자기 부인을 못살게 구는 사람과 한통속이 된 못난이라고 욕했지만 사실 나는 뼛속까지외로웠다. 해결할 능력이 없는 젊은 남편은 당황한 나머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의 이빨을 드러냈다. 나는 또 그것을 물고늘어졌다.

나의 시부모님이 특별히 더 심한 사람들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독일인 며느리들에 비해가족관계에 특별히 더 집착하는 탓에 남보다 더 자지러졌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시어머니와 나는 평생에 걸쳐 처절하고 치사한 심리전을벌였다. 모두가 정상이 아니었다. 내가 듣기에 시어머니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는데 같은 자리에 있던남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히치콕의 무서운 싸이코 스릴러를 보는 것 같았다. 이집 가족들이 모두 짜고 나를 미친 여자로몰아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가정을 지키려는 남편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그때 그때 간신히고비를 넘겼다. 남편의 지론은 여자고 남자고 사람의 능력과 품성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사랑이고 나발이고 일단 한번 시작한 사람과 계속노력하는 것이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이익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했다. 사랑에 목숨을 거는 취향을 가진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그럼대안이 나타날 때까지만 노력하자. 언젠가 내게 대안이 생기면 넌 국물도 없어.”하고 모진 마음을 먹었다. 그래, 우선 오늘 하루만 잘 넘기자.

인생의 계획을 너무 멀리까지 세우지 않고 당장의 안위에만 집중하니 도리어 일이 쉽게 풀렸다. 문화재 보수나 환경 공사를 할때도 영원한 해결을 목적으로 너무 크게 손을 대면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긴다. 후손의 실력을 믿고 당장은 내가 자신 있는선에서 최소의 수술을 하는 것이 정답일 때도 있다.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시댁과의 교류를 되도록뜸하게 함으로써 부부싸움의 횟수를 조금씩 줄여나갔다. 남편은 전화선을 하나 더 신청해서 시댁에서 오는 전화는 따로 울리게 만들어꼭 자기가 받았다. 그런데 내가 다른 일로 심통이 나 있을 때는 시댁에서 오는 전화를 일부러 받아서 역시 화풀이할 목적으로전화한 시어머니와 와장창 붙기도 했다.

우리 부부는 시댁 문제만 아니면 대체로 마음이 잘 맞았으므로 싸우지 않을 때는 알콩달콩 잘 살았다. 세월이 흐르니, 쌓인 시간의위력에 비해 이젠 시부모님의 존재가 점점 미미해진다.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내게 털끝만큼도 상처 입힐 수 없는 존재였는데 난그간 그 분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해서 일희일비하느라고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구나 싶다. 하지만 괜찮다. 막상 당할 때는 인생의누더기를 깁는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펼쳐 보니 조각보가 되었는 걸.

크리스마스도 지났으니 이맘때 쯤이면 친구들 입에서 시댁 흉이 나올 법도 한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전화통이 잠잠하다. 그러고 보니올해만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50세 전후인 우리 나이 탓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이미 많이들돌아가셨고, 혹 살아계시더라도 연로하셔서 이젠 우리와 대적이 안 되는 상대가 되었다.

나는 시댁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이번에 갈 때 불고기 좀 재워갈까요?”
“아니다, 빈 손으로 와라. 네가 온다는 것만 해도 내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모른다.”
“그래도 뭐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혹시… 혹시 너 김치 담아 놓은 거 있니?”
나는 “예, 집에 김치 많아요.”라고 대답하고 배추 사러 나갔다. 싱싱한 겨울 배추에 빨간 파프리카를 듬뿍 갈아 넣고 심심하고시원한 김치를 담기 위해서.

만나기 전의 마음은 서로 진심이지만 막상 만나면 또 한번쯤은큰소리 내며 싸울지도 모른다. 괜찮다. 누구 말 맞다나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데, 인품이 그렇고 그런 여자 둘이 남자 하나를사이에 두고만났으니 접시 하나쯤 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레라. 에헤, 조각보에 곧 찬란한 무늬 하나 늘겠구만.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레몬트리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