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안녕?
언니 안녕? 오늘은 언니랑 데이트하려고 제가 좋아하는 장소로 왔어요. 뮌헨 중앙역 바로 앞에 있는 큰 백화점 꼭대기에 있는셀프서비스 레스토랑이에요.
둥그런 돔으로 된 천창에는 녹다 만 눈이 하얀 솜처럼 보송보송하게 얹혀 있고 그 사이로 햇살이 환하게 비치네요. 조금있으면 피아노 치는 뚱뚱한 아저씨가 와서 생음악을 연주하겠지요. 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지만 자리가 넉넉한 탓에 늘 한적한느낌을 주는군요. 언제 뮌헨에 오시면 한번 모시고 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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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싶은 순서대로 다 골랐는데도 6유로 60센트밖에 안 나왔어요. 반으로 갈라서 베이콘이랑 치즈를 끼운 크로와쌍 1개, 삶아서파란 물을 들인 부활절 달걀 1개, 무화과로 예쁘게 장식한 와인크림 디저트, 그리고 큰 컵 가득히 라테 마키아토. 계산대에서20유로짜리 지폐를 냈더니 이렇게 또 두 번은 먹을 수 있는 돈을 거슬러주네요. 저 참 부자지요?
오늘은 제가 돌보는 장애아이를 음악 조기교육에 데리고 가는 날이에요. 나이가 다섯 살인데 말도 못하고 혼자 앉을 수도 없는아이에게 음악 조기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물으시겠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단지 장애가 있는 아이도 부모가 원한다면장애가 없는 아이들과 똑같은 혜택을 누린다는 점에 저는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참, 저는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음악 조기교육을시키지 않았어요. 단체로 뭐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제가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사실은 제가 그 아이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어요. 요즘같이 일이 많아서 정신없이 휘둘릴때도 매주 이날만큼은 비워둬야 하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중요하게 여기니남들도 알아서 일정을 거기에 맞춰줍니다. 이번 겨울엔 제가 하는 일이 참 바쁘고 힘들었어요. 이렇게 중간에 하루씩 빠지는 날마저없었다면 저는 또 목숨바쳐 미련을 떨었겠지요.
아우그스부르그 대성당 실측이 끝나고 이제는 린더호프 성의 비너스동굴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제 책에서 읽으셨지요? 미친왕루드비히 2세가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려고 만든 인공 종유석동굴이요. 해발 1000미터 알프스 산중에 있는데 가는 길이 정말예뻐요. 그런데 요즘은 인간적으로 너무 추워요. 어제는 영하 19도였습니다. 동굴 안에는 습도가 거의 90%라 사다리 타고높이 올라가서 일하기에 가히 살인적인 작업환경이었지요. 일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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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실측일을 아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올 겨울에 연달아 맡은 프로젝트가 우연히도 너무 고난도여서 그런지는몰라도 이제 슬슬 꾀가 나면서 이런 일의 의미를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군요. 남 보기에 그럴 듯해보이는 것 말고 또 어떤 의미가있는 직업인지 스스로 묻고 있습니다.
벌써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저를 보고 환히 웃을 꼬마를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레요. 언니 안녕!
뮌헨에서 혜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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