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안녕하시지요? 봄이 오고 있어요. 오늘은 할 일이 있는 날인데 ‘‘노화 일기'‘라는 제목에 이끌려 몇 자 두드려요. ‘‘황혼 일기'‘도 어감이 이쁘긴 한데 ‘‘늙어가는 과정의 일기'‘라는 뜻에서 ‘‘노화 일기'‘가 더 정확한 단어인 것 같네요. 오늘도 즐거이!


에피소드 1

오래간만에 딸과 단 둘이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둘이 도란도란 대화의 꽃을 피웠다. 딸은 제 아빠에게 삐져 있었다. 전날 밥 먹다가 둘이 싸웠기 때문이다.

“아빠같은 남자랑 사는 엄마는 참 무던해."
나는 으흐흐 웃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해가 잘 안 갔다. 난 우리 남편이 무던한 사람이어서 나같은 여자를 견디는 거라고 믿고 있는데.

“아빠는 늙으면 더 고약한 노인네가 될 거야."
나는 반짝 호기심이 동했다.
“어떻게? 아빠는 어떤 노인네가 될 것 같으니?"
“끊임없이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은 전혀 안 듣고, 계속해서 반복하는 고집쟁이 할아버지."
“설마? 네 아빠는 과묵한 사람이야."
“어유, 내가 못 살아. 엄마는 왜 이렇게 사람 볼 줄을 몰라?”

나는 내친 김에 또 물어봤다.
“나는? 난 어떤 노인네가 될 것 같으니?"
딸의 눈이 담박에 실눈이 되었다. 혼자서 샐샐 웃더니 말 안 해준단다. 엄마가 들으면 화낼 거라고 했다. 나는 절대로 화 안 낸다고 계속해서 꼬드겼다.

“엄마는 늙으면 굉장히 어리버리한 할머니가 될 것 같아서 걱정이야. 이것 저것 다 흘리고 쏟고 실수만 하는. 정신도 오락가락할것 같단 말이지. 그리고 우리가 도와주다가 자기 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바락바락 화를 낼 것 같애. 나는 저쪽으로 가고 싶은데너희들은 왜 이쪽으로 인도하느냐고 바락바락 화내는 할머니가 될 것 같애."
딸은 말을 마치고 얼른 내 눈치를 봤다. 나는 화가 나기는커녕 딸의 머리속에 있는 미래의 내 모습이 참 유쾌하게 느껴졌다.
“아하하, 참 귀엽겠다. 노상 실수만 하면서 바락바락 화내는 쪼끄만 할머니라니, 귀엽지 않니?"
“뜨아, 그런 소리 마셔. 귀엽긴 뭐가 귀여워? 지겹지."
“아빠보단 났지 않아?"
“막상막하지 뭐."
모녀는 눈을 맞추고 깔깔 웃었다.

며칠 후에 남편에게 말해줬더니 삐졌다.


에피소드 2

요즘 남편과의 잠자리가 뜸하다. 내가 다른 도시로 일하러 다니면서부터 몸과 마음이 늘 피곤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나이 탓도있을 것이다. 서로 원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인간의 몸은 화학공장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부부간의 섹스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호르몬의 분비가 윤활하지 않으면 부부 금슬이 메마를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남편을 유혹했다. 그렇지만 유혹하는 마음 한 구석에는 남편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남편이거절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편도 ‘‘당신이 원하면 해도 괜찮겠다'‘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어찌어찌어긋날듯 말듯 소통이 이루어져 둘이 침대에 누웠다.

남편이 배를 깔고 눕더니 등을 긁어달란다. 등이 가려운데 뭐가 났는지 좀 봐달라고 했다. 나는 잘 안 보이기도 하고, 한쪽 팔꿈치로 고이고 누운 자세가 불편해서 대강 슬슬 긁어줬다.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하고 남편이 불평했다.
“잘 안 보여서 그래."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인젠 섹스할 때 돋보기가 필요한겨?"
둘이서 정신없이 웃느라고 에로틱한 분위기는 다 날아갔다. 그냥 이렇게 시시덕거리다가 잠이 들어도 괜찮을 듯했다. 어찌어찌 어긋날듯 말듯 소통이 이루어져 다음 과정으로 진전되었다.

왜 그런지 몸이 유연하지 않고 자세를 바꾸기가 영 불편하고 힘이 들었다. “아, 왜 이렇게 끙끙대는 거야?” 남편이 불평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의 고등학교 친구가 해준 얘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홀로된 60대의 오라버니에게 동갑의 여성을 소개시켜줬는데 몇 번 만나더니 오라버니가 그만 만나기로 했다고 하더란다. 차에 타고 내릴때 그 여성이 끙끙 신음소리를 내는 게, 할머니랑 연애하는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우와, 웃기셔. 자기는 열 살이나 많으면서.” 하면서 흥분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나는 남의 남자 차에 타고 내릴 때 절대로끙끙 소리내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 남편이라지만 침대에서까지 끙끙대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푼수라서 남편에게 벼라별 소리를 다 하는 나, 이 얘기는 꿀꺽 삼켰다. 암, 여자가 자존심이 있어야지.

몰래 국민 보건체조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