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독일에서 성공한 한국 여성이다. 돈도 잘 번다. 독신으로 저 혼자 벌어서 쓰는 돈이 가족 넷이 먹고 사는 우리집총수입보다 많을 것이다.

하루는 그 친구가 알뜰살림꾼으로 소문난 내게 물었다.
“넌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돈이 항상 남는다는 거지? 난 통장에 잔고가 항상 달랑달랑해.”
“버는 돈보다 적게 쓰면 되지.”
“그게 쉽냐고? 생활비 줄이는 방법 좀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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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앉은 자리에서 줄줄이 읊었다. 첫째, 우리는 외식을 자주 하지 않는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밖에서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둘째,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술 담배를 전혀 안 한다. 간혹 손님을 초대하기 위하여 시장을 보면 고급와인값이 음식 재료비보다 훨씬 더 나가는 것을 알 수 있고, 하루에 담배 한 갑 피우는 사람은 매달 고급 구두 한 켤레 값을태워버리는 셈이다. 세째, 우리는 자가용이 없다. 출퇴근과 등하교를 자전거로 해결하니 평소에 교통비가 하나도 안 나간다. 운동도되니 헬스비까지 절약된다.

이렇게 해서 굳는 비용을 합치면 모르긴 몰라도 그 친구 총수입의 반 이상은 될 것 같았다. 거기에다가 우리는 욕조목욕을 피하고샤워만 하는 등 물을 아껴쓰고, 겨울에도 실내온도 섭씨 19도 이상으로 난방하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으려고장도 알뜰하게 보고 남는 재료를 늘 잘 활용한다. 옷이건 가구건 남 보기 좋으라고 사는 법이 일절 없으니 유행이 지났다고 잠깐쓰고 버리는 물건이 하나도 없다. 사실은 환경보호에 대한 신념으로 하는 일이지만 덩달아 절약되는 돈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친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게 살 수 있지? 넌 어려서부터 그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니?”
“아니야, 우리 부모님은 가난에 대한 한풀이로 자식들을 일부러 풍족하게 기르셨어. 어렵게 자라서 자수성가한 분들이거든.”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교 숙제로 글짓기를 했는데, 온 가족이 모처럼음식점에 가서 불고기를 배불리 먹고, 남은 고기는 집으로 싸와서 개를 줬다는, 그래서 내가 무척 행복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머니가그걸 보시고 사실과 다르게 썼다고 언짢아하셨다. 정말이지 사실과 달랐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외식을 자주 하는 편이었고,고기도 늘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머니의 자존심으론 음식점에서 먹다 남은 음식을 집에까지 싸오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일이었다.

어린 나는 왜 그때 그런 글을 썼을까? 난 알고 있다. 약간의 모방심리도 있었다. 60년대의 가난했던 한국에선 모처럼 맛있는음식을 먹어서 행복했다는 어린이의 글짓기를 흔하게 접했다. 그때 나는 내 또래들이 쓴 그런 글짓기를 읽으며 내가 느끼지 못하는그들의 행복이 막연히 부러웠다. 왜 나는 늘 고기를 배불리 먹으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지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게 생각했고,넘쳐나는 풍요 속에서는 인생의 정취나 낭만이 오히려 줄어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남몰래 품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궁상끼를 약간 달고 사는 돌연변이가 되어 어른들의 걱정을 들었다.

그런 내가 커서 남자를 만나 내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돈에 대한 환상이 적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자리를 잡은중년의 우리 부부가 아직도 케익 하나를 둘이 나눠먹으며 남다른 행복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식을기르면서 풍요로운 교육환경에 대한 강박감이 없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풍요로운 물질 대신에 부모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풍부하게 주려고 노력했다. 돈보다 시간이 더 값지다는 시각으로세상을 바라보면 꼭 가지고 싶은 물건도 없다. 어떤 물건을 사기 위해서 벌어야 하는 돈을 시간으로 계산하면, 또 그 시간만큼줄어드는 정신적인 가치를 따져보면, 차라리 그 물건을 안 가지고 마는 것이 이익이라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돈을 암만 적게 벌어도 돈 쓸 일이 없으니돈이 남는 인생을 살고 있다. 사람은 이렇게 자기 성장과정에 대한 한풀이를 하며 살아가는 모양이라고 말하며 친구와나는 눈을 맞추고 웃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보자. 한풀이라고 해서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고, 적절한 가난을 선택함으로써 마음의 자유를 구하는배짱역시 나 혼자의 실력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불황의 시기에 빈털털이 학생 부부가 아이까지 기르면서불투명한 미래를 희망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세입자 보호제도 덕분에 가능했다. 집을 살 돈이 없어도평생안정적인 보금자리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우리는 돈이 없어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회에봉사하는 일꾼으로자리잡을 수 있었다. 만약에 우리가 한국에서처럼 내 집이 없다하여 늘쫓기듯 이사를 다녀야 하는 형편이었다면 우리도 당연히 내 집부터 장만하느라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자유로운 인생은커녕생존투쟁에 내몰려 허덕였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수출국가인 독일에선 총가구의 57%, 즉 중산층을 포함한 절대 다수의 국민이 임대용 주택에서, 즉 남의 집에 세들어살고 있다. 유럽에서독일보다 임대용 주택의 보급율이 높은 나라는 독일보다 조금 더 잘 사는 스위스가 유일하다. 그러니 대다수 국민의 기본권 보호차원에서 세입자의 권리가 잘 보장될 수밖에 없다.

독일의 집세는 일반적으로 공정하다. 집의 위치, 상태에 따라 월세의 적정가격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집주인이 마음대로 집세를올려 받을 수 없다. 게다가 독일에선 전세라는 제도가 없고 전부 월세라서 몫돈이 필요하지 않다. 단, 입주할 때 월세의2-3배 되는 금액의 보증금을 은행에 맡겨 두었다가 이사나갈 때 집에 하자가 없으면 이자까지 붙여서 돌려받는다. 그리고 월세의인상도 정해진 한도 내에서 이루어진다.

또한 임대를 해약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서 집주인이 세입자를 함부로 쫓아내지 못한다. 해약사유도 법으로 정해진 몇 가지에 한정되어있고, 해약할 때는 세입자가 거주한 기간에 따라 3-9개월의 말미를 주어야 한다. 해약사유가 법적으로 인정되더라도 세입자가고령이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심리가 불안하여 그 집을 떠나서 사는 일이 고통스럽다는 판결이 나면 집주인은 해약을 강요할 수 없다.집이란 돈버는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에 그 곳에 살아온 사람이 진짜 임자이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 사람들은 한번 임대한 집에서 평균 12년을 산다. 세든 집을 자기 개성에 맞도록 꾸며놓고 내 집처럼 아끼고가꾸며 오래도록 산다. 21년 이상 한 집에 거주하는 세입자 가구도 전체의 4분의 1이나 되니,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소유와상관없이 진짜임자라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세입자 조합의 활약도 크다. 실비의 회비를 내고 가입하면 법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 조합의 임대법 전문가들은 월세를과다하게 인상하거나, 임대건물을 방치해서 세입자의 삶의 질에 지장을 주는 집주인을 상대로 법정투쟁을 대신 벌여 월세를 깎아주기도하고, 국가정책이 세입자의 권리를 유린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지 감시하고 여론화한다. 독일 정부에선 가난한 국민의 주거권을지켜주기 위해서 전 가구의 11분의 1에 해당하는 3백4십만 가구에게 매달 주거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인 독일에서 임대용 주택이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고 주거공간으로서 제구실을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세입자를주인으로 인정하는 국가정책이 일관성 있게 자리잡고 있다. 흔히 독일은 좌파 정부의 사회주위 국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독일에선보수 정당이 정권을 내준 일은 오히려 드문 일에 속한다. 보수와 진보를 오가며 내각이 바뀌어도 이런 정책이 초지일관 고수되는이유는 인간의 주거권을 인간의 기본권으로 인정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이 착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다. 천연자원이 없어서 인적자원에 기대어 수출로 먹고 사는 그들은 실용적인 것이다. 개인의 인권과 국력이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숨 쉬기전에 호흡권 투쟁부터 먼저 해야하는사람은 건강할 수도 없고 달리기 경주를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일로 인력을 낭비하는 국가는 안정되게 발전할 수도 없고 세계와경쟁할 수 없다. 주거권이 국민의 기본권으로 인정되고 보장되는 나라에선 월세집만 해도 이렇게 살 만하니 내 집 장만이 그렇게 절박하지않다. 그렇게 절박하지 않으니 정경유착을 등에 업은 부동산이 부글부글 거품을 내는 현상이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쫓겨다니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즉 다른 나라에선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주거권을 위해평생을 몸바쳐 일해야 하는국민은 무슨 힘이 남아돌아서 창조성을 키우고 세계와 경쟁할 것인가? 기업에게 유리하고 서민에겐 불리한 주택정책이 궁극적으로국력의 낭비는 아닌지, 정부는 국가의 경쟁력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며 세계인들과 건전하게 교류하려면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본적인 소양과 공감대는 갖춰야 할 것이다. 세계의지성인이공감하는 기본적인 소양은 바로 인권, 즉 인간의 기본권이다. 가난한 사람도 숨 쉬고,밥 먹고,인간답게 주거할 권리가 있다. 인간의 기본권을 가로채서 돈을 벌거나 권력을 쥐려는 사람들은 범세계적으로 불한당이다.

사람은 권력이나 돈의힘으로 이리저리 함부로 옮겨놓을 수 있는물건이 아니다. 사람은 뿌리를 내렸던 곳에 대한 향수와 추억을 먹고 사는 섬세한 영혼이다. 자신은 누리지 못한 인간의 기본권을자식들에게는 물려주기 위해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항거하는 엄숙한 영혼이다.



레몬트리 3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들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