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는 딸은 대학을 외국에서 다니고 싶어한다. 한창 나이에 세상 경험을 좀 해보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다.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하버드나 옥스포드 대학에 붙으면 보내줄 거지?”
“미쳤니? 그 비싼 등록금을 우리가 왜 내주니? 등록금이 싼 독일 대학을 놔두고.“(독일 대학의 등록금은 한 학기에 500유로다.)
“어머, 쩨쩨해라. 다른 부모 같으면 좋아하겠구만.“
“왜 하필이면 하버드나 옥스포드냐고? 어쩐지 남다르고 근사해 보여서 그런 거지, 너?”
“그래, 허영심이다. 그러면 좀 어때? 유명한 대학 나와서 출세하려고 그래. 난 출세해서 멋있게 살고 싶다구. “
“그럼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아서 가면 되잖아? 그건 우리도 안 말려.”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을 자신 없으니까 그러는 거지. 내가 장학금 받을 실력이면 엄마 아빠한테 물어나 보겠어? 내 맘대로하지.”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대해 열심히 조사하기 시작했다.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라는 것이다.
“거기 대학은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서 등록금이 비싸지 않대. 그 정도는 엄마 아빠가 보태줄 수 없을까?”
“미쳤니? 그걸 우리가 왜 보태주니? 우리는 독일 대학생의 평균 생활비만 대줄 거야. 더 이상 돈 드는 곳에 가고 싶으면 네가벌어서 가든지 장학금을 받든지.”
딸은 팩하니 삐졌다.
“그럼 엄마는 딸이 위험한 도시에서 값싼 숙소에 살다가 죽어도 괜찮아?”
“누가 가래? 죽어도 자기 책임이지 그걸 왜 부모한테 뒤집어 씌우냐?”
“부모로서 좀 무책임하지 않아? 부모가 자식한테 돈 가지고 치사하게 군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누가 가지 말래? 하고 싶은 건 네 힘으로 하라구. 나야 내 돈 가지고 내 취향대로 결정하는데 정당하지, 뭐가 치사하냐?”
딸은 왕왕 대들려고 숨을 좀 고르는듯 하더니 이내 배시시 웃었다.
“말은 맞네. 내가 맡겨논 돈도 아닌데.”

내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계산이 철저한 독일식 엄마라서 그런 건 아니다. 난 자식 교육을 위해선 집 아니라 내목숨이라도 팔 의지가 있는, 전형적인 한국 엄마다. 더구나 우리 부모님은 불우한 환경을 순전히 실력 하나로 극복한사람들이었으니 교육에 대한 내 의지는 남보다 굳건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나는 젊은이들이 일찍부터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세상경험을 하는 일에 대찬성이다. 독일이든 외국이든 어디로든 멀리 떠나서 제 삶을 개척하는 것이 행복과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믿고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순전히 부모의 덕으로 하려 든다면, 그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진정한 독립이 아니기에 진정한 자유를찾을 수 없다.

나는 참으로 행복하고 알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 당시 칼스루에 공대 건축과에선 디플롬(학사+석사)을 마치는데 평균 8년이나걸렸는데, 나도 그 기간을 꽉 채우고 졸업했다. 공부도 재미있고, 인생도 즐거워서 되도록이면 오래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했다.그런 결정은 내가 경제적으로 독립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약 내가 집에서 돈을 받는 상황이었다면 부모님께 미안해서라도학업을 서둘렀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억울하게 감옥에 가시며 가세가 기울었다. 성년이 되고도 부모님에 기대어 안일하게살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홀로서기에 박차를 가했다. 시끄러운 깡통 공장에서 엄청나게 빨리 돌아가는 기계의 노예 노릇도해봤고, 변기 닦는 솔로 환기통 격자까지 닦으라고 하는 깐깐한 독일 할머니 집에서 청소도 했으며, 공립 노인병원에서 시간에쫓기며 노인들의 입에 죽을 퍼넣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간호보조원 노릇, 술집에서 서빙하다가 인종차별성 발언을 하는 손님이 준팁을 던지며 쌈박질도 하는 등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은 경험이 없다.

그러나 나보다 훨씬 더 어린 나이에 홀로섰던 우리 부모님의 인생에 비하면 그까짓 대학생 아르바이트야 도리어 호강이었고, 그런 부모님의딸이라는 자부심으로 나는 어떤 일에도 항상 자신이 있었다. 장학금을 신청하거나 설계 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선 실력을인정받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나는 성적관리에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다. 바쁜 생활이긴 했지만 나는 내가 내 인생의주인이라는 자신감으로 늘 당당했고, 자유에 충만한 젊음을 보냈다. 적당한 시기에 도움의 손길을 끊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다.

젊은 시절의 나의 긍정적인 경험은 자식에 대한 교육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일이라는 것을 경험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립을 통한 자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한 나는 아이들의 자율성을 어려서부터존중했다. 아이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관찰하고 우리가 거기에 맞췄다. 책을 많이 읽어줬지만 아이들이 글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때문에 굳이 가르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제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알파벳이 3개만들어가는 이름만 쓸 줄 알았지 성은 쓰지도 읽지도 못했다.) 학교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인생에 유익한 일이지, 그 나이에 남보다 조금 더 먼저 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성장 발육에는 순서가 있다.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발견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을 연습해야 할 시기에는 충분히 뛰놀아야 뇌도발달하고 똑똑해진다. 그런 시기의 아동에게 엉뚱하게 글자나 숫자를 가르치는 것은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고 자발적인 학습욕을방해하는 행위라는 연구 결과는 학계에 수두룩하다.

미취학 아동을 위한 음악, 미술, 체육의 조기교육(영재교육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기초를다지는 준비교육에 가깝다.)을 받지 않은 아이들은 주변에서 우리 아이들밖에 없는 것 같다. 나도 아이에게유익한 일이라면 뭐든지 한번씩 데리고 가기는 했지만, 우리 아이들은 즐겨 하던 일이라도 단체로 줄 서서 하라면 싫어했다. 암만재능을 길러줘도 본인이 즐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서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의 학교 공부도 돌봐주지않았다. 암만 성적이 좋아도 본인의 학구열이 싹트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모가 재능을 길러준답시고 설치다가 도리어흥미를 꺾지나 않을까, 도와준답시고 주인의식을 빼앗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조심했다. 교육의 목적은 도토리 시절의 키재기가 아니지않은가?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적극적으로 공부 시키는 아이들에 비해서 학교 공부와 예체능이 늦되었다. 그러나 성년이 된 우리아이들이 지금 남보다 못하는 일은 별로 없다. 시기상조로 배우려면 힘든 일이라도, 적절한 나이가 되면 쉽게 배우기도 하는 것이다.글을 세살에 깨쳤는지, 일곱 살에 깨쳤는지는 나중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른이 되었을 때 글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얼마나 즐겨사용하는가에 달려있을 뿐이다.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온 우리 아이들은 부모 품을 떠난 후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우리 교육의 목적이었다.

또하나 우리 교육의 목적은 아이들이 평생 신념과 사랑을 가지고 전념할 일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공부든기술이든 상관없다. 공부 잘해서 성공한 판사나 교수도 조직의 노예가 될 수 있고, 평범한 기술자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살 수있다.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늘 강조했다. “너에 관해서 너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엄마 아빠도 네 일에 관해서 너보다 더 잘 알 수 없어.”

우리와 교류하는 대부분의 독일 가정은 부자는 아니더라도 학력이 평균 이상이고 교육열이 높은 중산 지식층이다. 유치원이나 학교 등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부모들이 합심해서 노력하는 한편 개인적으로도 자식 교육에 힘쓴다.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시험 공부를함께 하는 등 학교 성적에도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지만 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에 돈을 쓰지는 않는다. 성적이 너무 떨어져 따라가기 힘들 지경이 되면 부모들이 돌아가며 남의 아이들까지 모아서 함께 가르친다. 아이들사교육에 돈드는 곳은 악기나 운동을 배우는 취미활동이다. 비용은 보통 한 달에 몇십 유로 선으로 저렴한 편이다. 무료의 기회도 많다.

독일에도 자식 교육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부모가 둘 다 강도 높은 직업을 가졌을 경우에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학교 성적이 너무 떨어질 경우에는 일시적으로학교 상급생에게서 한두 과목 과외를 받기도 한다. (과외비는 뮌헨 기준으로 시간당 10-15 유로)언제부터인가 독일에는 개인의 일을 사회에, 부모의 일을 학교에 미루는추세가 만연한데, 자녀의 성적관리를 아예 처음부터 가정교사에 일임하는 부모도 있고, 일반 고등학교에서 못 따라가는 자식을 스위스나 영국에 있는 사립학교에 보내는 졸부들도 있다.기숙사 시설까지 갖춘 고급 사립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방과후 학습지도까지 책임지기 때문에, 일반 학교에서 낙제하거나 제적 당할 실력의 학생들이라도 턱걸이일망정 졸업장은 딴다.

하루는 딸이 자기 급우 얘기를 하며 웃었다. 수업시간에 가난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는데 갑부의 아들인 급우가 “가난이란 공부못하는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지 못하고 기술학교에 보내는 부모의 슬픔”라고 했단다. 그러고 보니 갑부의 자녀들에겐 안전망 하나가 더 있는 셈이다. 내겐 그 아이가 처음부터 목발을 짚고걸음마 연습을 하는 약골처럼 느껴져서 도리어 안쓰러웠다. 그에 비하면 공부에 취미 없는 사람이 대학에 다니는 것만큼 실패한인생도 없는 거라고,남들 다 한다고 어설프게 진학하는 것보다는 기술 하나 똑뿌러지게 배우는 것이 낫다고역설하는 부모와, 세속적인 성공을 부추기는 사회 사이에서 갈등하며 제 길을 찾아 더듬거리는 우리 아이들의 환경은 얼마나현실적이고건강한지?

며칠 전에 딸과 단둘이 아침을 먹었다.
“엄만 요즘 무슨 테마로 글을 써?”
“교육적인 가정환경에 대해서. 아참, 네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가 고아원에서 만났다는 거 너 알고 있었니?”
“응. 엄마가 벌써 말했어.”

나는 부모님에 대한 자부심이 내 인생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서 딸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하는 모범을보여주심으로써 당신들은 누리지 못한 부모복을 자식에게 물려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얼얼했다. 어린 시절에 부모품을 떠나 외로웠을 그들이 내 자식처럼 가엾게느껴져서 목이 메었다. 딸이 나를 안아주며 토닥거렸다.

“난 집안이 참 좋은 사람이야. 난 우리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무척 자랑스러워. 나 사실은 영어 숙제를 안 해서 학교에 가서 베끼려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해야겠다. 이렇게 강력한 집안의자손이 체면이 있어야지.”



(이 글을 쓰도록 허락해주신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용서해주시리라 믿으며… 레몬트리 4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