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 춥고 습한 알프스의 동굴 실측조사가 드디어 끝났습니다. 그간 너무 힘들어서 끝날 날만 고대했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마음이싱숭생숭하네요.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에 너무 서둘렀다는 반성과 함께 다음번에는 더욱 잘 하겠다는 각오가 들기도하고, 또 한편으론 “어이구 시원해라. 그노무 노가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번에는 몸이 좀 상해서 우선 좀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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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산 속에 있는 린더호프 성의 인조 종유석 동굴. 4월부터 방문객이 밀어닥치는 고로 겨울에만 조사 작업을 벌일 수 있는데, 미친 왕 루드비히 2세가 바그너의 오페라를 상영하기 위해 저 안에다 인공 호수까지 만들어 놓는 통에 저는 춥고 습해서 혼났습니다. 거기엔 오늘도 눈이 펄펄 내리고 있다네요.


그간 독일의 주택 임대법에 대해 상세한 질문을 하신 분이 계십니다. 감사드려요. 제가 개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테마인 주거권에관심을 보여주셔서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 성심껏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독일에선 빈 집으로 임대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세입자들은 텅 빈 공간을 자기 취향에 맞게 꾸며놓고 살다가, 나중에 이사 나갈 때 가구와 전등 일습을 도로 다 떼어 가지고 나갑니다. 가구를 붙여 임대하는 공간은 전형적인 임대용 주택이라기보다는 게스트하우스에 가까운 개념으로서일반적인 세입자 보호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하 저의 답변은 빈 집으로 임대하는 주거공간을 기준으로 말씀드립니다.

wohnungsvergleich.jpg 뮌헨의 같은 동네에 있는, 비슷한 가격대의 임대용 주택 거실. 세입자들이 각기 10년 이상 자기 취향에 맞게 꾸며놓고 살았다.

한 임대용 주택에서 10년, 20년씩 살 수 있는 이유

독일에서 한 임대용 주택에서 10년, 20년씩 살 수 있는 이유는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장기적인 임대를 지원하기 때문입니다.임대기간이 무한정인 것이 보통이고, 몇 년이라고 임대기간을 정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에 속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임대기간이 2년만보장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독일의 기준으로 볼 때 대단히 심각한 인권의 침해이자 엄청난 국가적 낭비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입자는무한정 임대한집에서 살다가 자기가 나가고 싶을 때 아무런 이유를 붙일 필요없이 임대를 해약하면 됩니다. 단, 나가기 3개월 전에 통고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집주인, 즉 소유주는 다릅니다. 소유주는 법으로 정해진 몇가지 이유에 한해서만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고, 또 그럴 때도 세입자가 그 집에서 산 햇수에 따라 해약통고 기간이 3개월에서9개월까지 늘어납니다.

소유주 쪽에서 임대를 해약할 수 있는 사유는 몇 가지 됩니다. 월세가 2 개월치 이상 밀릴 때, 세입자가 몰상식한 행동으로 이웃을 심하게 방해할 때, 폭력적인 행동으로 소유주를 협박하거나 건물을 파괴했을 때, 소유주 본인이나 직계가족이 임대한 공간을스스로 필요로 할 때… 등등인데 이런 사실을 법적으로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세입자가 세입자 조합의 도움을 받아끝까지 버티면 오랜 세월 재판을 벌여야만 하지요.

예를 들어 주택을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소유주라면 여태 살던 집을 놔두고 하필이면 꼭 그 공간을 필요로 하는지, 그 이유를 증명하느라 애좀 먹을 겁니다. 그리고 소유주가 재판에 이겨도 세입자가 고령이거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일 경우엔 세입자의 거주권이 특별히보호를 받습니다. 내보낼 수 없습니다. 또한 소유주가 세입자를 내보낸 후에 실지로 몇 년이상 그 공간에서 살지 않았다는 것이발각나면, 옛 세입자가 다시 들어오던가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월세의 수준

**적정 월세는 각 지방과 시 별로 주택의 위치와 설비 수준을 세심하게 고려하여 책정하고, 물가나 시세변동을 참작하여 몇년마다 조정합니다. 대체로 공정한 편입니다. 주택을 구입하려고 할 때 보통 일년치 월세의 15배 정도가 적정가격이라고 합니다.즉 매매가격의 0.6%가 월세가 되는 셈이지요? 제가 사는 뮌헨은 독일에서도 월세가 가장 높은 도시에 속하는데 집값은 비율적으로더 비쌉니다. 저희가 현재 1000유로의 월세로 살고 있는 주택을 사려면 가격이 약 30만 유로입니다. 집값이 일년치 월세의 25배정도네요. 즉 매매가격의 0.3%가 월세가 되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보통 1%의 이자율을 계산하여 월임대료로 책정한다고 하셨는데, 이건 전세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요, 아니면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인가요? 1년이면 12%니까 (집값 또는 전세가격의) 8분의 1에 해당되는 것이네요. 만약에 매매가격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우리나라 월세의 수준은 독일의 두 배가 되는 셈이겠고, 만약에 전세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면 매매가격 대비전세가격의 비율만큼 낮아지겠군요.

월세 수입의 소득세

단 한 채의 주택이라도 임대수입에는 소득세가 부과됩니다. 보통 독일 중산층의 소득세를 총수입의 25%라고 칠 때 매월 월세1000유로를 받으면 매년 3000유로의 소득세를 내야 합니다. 임대수입과 이자수입은 엄연한 소득으로 칩니다. 돈을 벌지 않는전업주부는 보통 남편의 의료보험에 포함되어 무료로 혜택을 받지만, 남편과 공동으로 벌어들이는 임대수입이나 이자수입의 절반이 한달에 350유로가 넘을 경우, 의료보험을 따로 들고 보험료를 따로 지불해야 합니다.

**독일의 세입자 보호의 취지

**임대 계약서의 양식은 법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소유주가 임대 계약서를 임의로 만들 수는 있으나 법규에서 어긋하는 사항이 하나라도 들어있을 경우에는 계약서 전체가 무효가 되고, 그 대신 법정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지요. 주택은 사유재산이지만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소유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주택은 재산을 늘리는 수단이기에 앞서 삶의 터라는 공개념이 더 강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척 예민한 사안입니다. 독일은 공산독재국가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채택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죠. 주택정책은 사회복지와 시장경제 사이에서 세심한 균형을 요구합니다.

세입자의 권리를 무작정 강화하는 것만이 세입자에게 이로운 것은 결코 아니랍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주의 사유재산권이 너무 무시되면 아무도 주택 건설에 투자하려고 하지 않겠지요. 그러면 임대용 주택이 줄어들 것이고,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집세도 오를 겁니다. 즉, 집주인도 사유재산권을 보장받고 주택 임대로 인한 공정하고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아야만 주택시장이 활성화되고 임대용 주택이 늘어나서 세입자들의 입지 또한 편안해집니다. 세입자 조합과 마찬가지로 민간 집주인을 위한소유주 조합이 소유주들의 권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예전에 독일 정부에서는 임대용 서민주택을 많이 지어 공급하는 것으로서 서민의 주거권을 보장하고자 노력했습니다만, 이제는 정책의 방향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요즘은 저소득층에게 국가에서 지원하는 월세 보조금을 늘리는 일, 즉 직접 지원에 좀 더 비중을 두는추세입니다.

이상입니다. 제 답변에 의문이 있거나 다른 질문이 생기면 언제든지 또 연락주세요. 감사합니다.


뮌헨에서 임혜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