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에서 60Km 떨어진 아우그스부르그는 독일의 3대 고도에 속하는 유서깊은 도시다. 역사만 긴 게 아니라로마시대를 거쳐 중세,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주요 통상로를 관장하여 부를 키웠고,

권력의 중심지로서 화려한 문명과 문화를꽃피웠다. 아우그스부르그의 구시가지는 권력자들이 살았던 대로와 그 아래쪽으로 펼쳐지는 수공업자 동네가 맞물려 역사를 입체적으로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역사의 재미는 권세를 떠받쳐주었던 일상의 잔잔한 증인들이 유적으로 함께 남아있을 때에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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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의 윗동네. 중세시대의 권력자들이 살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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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의 아랫동네. 화재의 위험이 있고 시끄럽고 냄새나는 수공업자들이 따로 모여 살았다.


유럽의 문화는 종교의 문화인만큼 아우그스부르그 대성당과 그 옆에 붙은 대주교청은 역사의 중심부에 서 있는 건물이라 말할 수있다. 역사가 1000년이나 되는 대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색유리 성화 시리즈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증축하고보수한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이 대성당을 지키기 위해 아우그스부르그의 주민들은 2차대전 막바지에 목숨을 걸었다. 젊은남자들이 전부 전장으로 끌려나간 후, 노인 신부와 어린 소년들은 공습경보가 울리면 지하실로 숨는 대신 대성당의 다락으로올라갔다.대성당으로 떨어지는 소이탄(폭발은 없고 화재만유발함)을 맨손으로 주워서 밖으로 내던지기 위해서였다. (“문화재 조사와 가미가재” 보기)

대성당 바로 옆에 있는 옛 대주교청은 오늘날 지방정부 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니,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상징인 셈이다.유서깊은 이 건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는 로코코 축제실이다. 하얀 벽에 금박이 장식되어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인상을 주는 전형적인로코코 스타일의 널찍한 이 공간은 옛날에 대주교가 손님들과 식사하던 홀이다. 현재 강연실, 연주회실로 활용됨으로써 일반인들의차지가 된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우그스부르그 모짜르트 패스티발 기간에는 이곳에서도 연주회가 열린다. 참고로 말하자면모짜르트는 로코코 시대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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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코코 홀에서 지난 3월 14일에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좀 특이한 연주회가 열렸다. 한국 젊은이들이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벌이는 음악 잔치였는데, 음악 영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높은 경지를 보여주었다. 피아노, 바이올린,첼로, 마림바 연주자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각 악기의 특성에 따라 변화하는 음악의 세계로 청중을 인도했다.

우연히 그 자리에 참석했던 행운에 대한 감사로 그날 내가 받았던 감동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는 악기라고는 “엘리제를위하여”나 띵똥거리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조예가 낮은 사람이다. 음악을 들을 때는 곡 자체에만 심취할 뿐, 연주자의 실력을평가한다거나 비평할 능력도, 의향도 없다. 나는 연주를 잘 들었는데 옆에서 누가 연주자의 실수에 대해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치반찬 투정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언짢다. 음악을 들으러 연주회에 다니는 청중들의 대부분이 어쩌면 나같은 부류일지도모른다는 생각에서, 또한 무대에 서는 연주자들에게는 나같은 비전문가의 의견도 소중하리라는 믿음에서 용기를 내어 감히 그날의연주에 대한 감상을 쓰고자 한다.

스크리아빈의 어려운 곡으로 스타트를 끊은 김다혜는 10대 소녀의 연주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능숙하고 힘있는 연주를보여주었다. 피아노에서 나오는 소린지 그의 몸에서 나오는 소린지, 그가 악기를 치는 건지 악기가 그의 몸을 빌어 소리를 내는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냥 스크리아빈이 있을 따름이었다. 훌륭한 스타트였다.

김다혜의 좋은 스타트에 힘입어 그 뒤를 이은 박지윤의 바이올린 연주는 청중을 확실하게 압도했다. 그가 첫 음을 내는순간, 그가 첫 동작을 취하고 첫 표정을 보여주는 순간, 나는 내가 범상치 않은 연주회에 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박지윤의연주에서 나는 귀로듣는 감정과 눈으로 보는 감정이 일치함을 느꼈다.

그에 이은 한문경의 마림바 연주는 내게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마림바라는 악기가 그렇게 총체적이고 독립적인 악기라는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실로폰처럼 딩동거리는 악기로서 그렇게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기술과 음악성이 놀라웠고,마치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온 몸으로 즐기는 듯 보이는 연주자의 편안하고 천진한 모습은 나를 새로운 음악의 세계로 단숨에끌고갔다.

첼로를 연주한 심준호도 아직 20대 초반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성숙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첼로는 내가 개인적으로가장 좋아하는 악기로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맛이 좋았다. 그의 매끄러우면서도 깊은 선율, 첼로와 사람이 하나로 어울려뽑아내던 장중한 선율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홍지환의 피아노 연주는 격조높은이번 연주회의 피날레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가 신들린듯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지금 자신의 음악과 완벽하게 일치되고있다고 느꼈다. 그런 내밀한 순간을 엿보는 나의 가슴도 연주자와, 그리고 그의 음악과 공명하기 시작했다. 작곡가인 베토벤의영혼도 그 순간 함께 공명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가 연주회의 초반에 김다혜의 연주 때부터 막연히 느꼈지만 확실히 잡히지 않던 감정, 박지윤과 한문경의 연주에 따라 점점선명해지던 어떤 감정 하나가 심준호와 홍지환의 연주로서 또렷해졌음을 깨달았다. 이날 나와 함께 공명한 것은 베토벤 뿐만이아니었다. 이날 연주된 모든 곡의 작곡가들이 한국에서 온 젊은 연주자를 통해서 나와 함께 떨림을 나누었던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어 이승과 저승의 영혼을 연결시켜주는 음악의 위대함과 연주자의 위대함을 확인한 순간의 감동이 밀려왔다. 아직어린 이들이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음악의 문외한으로서 감히 평가가 아닌 느낌만을 얘기할 수밖에없다.

이들은 아직 공부를 하는 젊은이들이었지만, 등장하여 악기를 고르고 첫음을 내는 순간부터 청중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나이에 비해서무대 경험이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 국내외의 굵직한 수상 경력이 있는 연주자들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이들의자신있고 세련된 연주 매너는 관람하는 청중에게 안정감을 주어 마음놓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선사했다. 무엇보다도 이 젊은연주자들은 음악을 스스로 즐기는 듯이 보였다. 스스로 즐거우니 듣는 사람도 즐거울 수밖에.

그러나 난 알고 있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실력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바치는 노력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이들이 어려서부터음악을 위해 포기한 일들과 이들이 음악을 위해 바친 희생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을. 그러나 이 세상에서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은아닐 터, 분명히 이들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젊은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재능이 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닐터, 그런 재능을 발견하고 기꺼이 키워준 부모들의 은혜가 있을 것이다. 이들 부모님들이 자식을 이만큼 키우기 위하여일찌기부터 바친 희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부모 또래의 내가 부모님 은혜 운운하는 것처럼 젊은이들에게 진부한 일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왕에 진부하고지루한아줌마로 낙인찍힌 김에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부모님의 희생 정신만으로 이 세상의 자식들이 다 연주가로 성공하는것은 아니다. 갑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음날 끼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유복한 환경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오늘의 성공은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더라도 악기는커녕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대신 일터로 내몰리는 청소년들이 이 세상에는 절대다수로 존재한다. 이것은 운명적 불공평이 아니라 제도적 불공평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인류는 일찌기 혁명이나 자본의 힘에기대보기도 했지만 결국엔 다 실패했다.

지금 이 세상에 굶는 사람이 있는 건 빵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남아서 버리는 빵이 너무 많아서이다. 즉, 버릴망정 분배가 원활하게이루어지지 않아서이다. 우리 세대는 빵을 더욱 싸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에 전력을 다했지만 좋은 세상을 만들기는커녕세계적인 경제 위기를 자초했다. 가뜩이나 없는 사람들은 이제 생존의 위협까지 받게 생겼다.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과학 기술을 이용해 빵만 디립다 만들어대는 기술자들이 아니다. 소단위로 따로따로경쟁하여 내 것을 잘 챙기는 것이 지상목표이던 세상은 이미 지나간, 실패한 모델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이웃을 돌보며 다같이살아남을 수있는 길을 모색해야만 하는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을 미리 깨달아 남에게도 권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인문, 예술의 힘으로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특별한 재능과 원만한 환경을 허비하지 않고 남다른 노력을 바쳐 그 자리에 선 연주자들에게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은 시공을초월하여 이승과 저승의 영혼을 연결시켜주는 음악성을 이미 갖춘, 축복받은 사람임을 늘 잊지 마시기를 부탁드린다. 그 음악성이야말로버리는 빵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꼭 필요한 능력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를 부탁드린다. 아울러 재능, 노력, 환경의삼박자를고루 갖추지 못한 다른 음악인들까지도 다독이며 부축하여 함께 나아가시기를, 그래서 되도록 많은 영혼들이 음악을 듣고 상처를위로받아, 서로 이웃을 챙기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세상이 올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한국의 음악인에 대한 신뢰와 호의로 유서깊은 장소에서 격조 높은 연주회를 열어주심으로써 나같은 문외한에게 하루 저녁의 기쁨이상으로 큰 배움을 주신 율리우스 베르거 교수님(Prof. Julius Berger)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