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의 행복
요즘 나는 건강이 별로 안 좋다. 팔다리가 뻐근한 현상이 오래 가더니 이젠 깜짝깜짝 놀라게 아프기도 하다.
병원에 가서검사했는데 결과가 썩 좋지는 않으나 50년 살컷 부려먹은 것치고 그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관찰한 결과 책상에 오래앉아 있으면 증세가 악화된다고 나름 진단했다. 그래서 책상을 멀리 하고 되도록 몸을 많이 움직이기로 했다. 가사노동도 열심히 하고, 자전거도 많이 타고, 많이 걷기로 했다.
점심 먹은 설거지 거리를 부엌에 그냥 쌓아놓은 채로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봄이 오는 진통으로 날이 개었다 비가 뿌렸다 하는와중에 잠시 화창한 틈을 타서 자전거를 타고 이자 강변을 달렸다. 알프스의 눈이 녹아 제법 불어난 이자 강물은 유난히 짙은초록빛을 띄었다. 강물에 발을 담그고 서서 이제 막 푸르르기 시작하는 수목이 강열한 물빛에 눌려 배시시 부끄럼을 탔다. (오홋,갑자기 시가 쓰고 싶다는….)
다리 위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역광으로 비치는 햇살에 수면이 잘잘히 부서지며 눈이 부셨다. 너무 예뻐서 숨이 막혔다.“와, 꼭 금가루 같지?” 남편이 탄성을 질렀다. 문득 ‘‘그까짓 금가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장롱 속에 저만큼 많은황금이 쌓여 있은들 이보다 좋으리? 산더미같은 금으로 햇살 비치는 수면을 모조한들 진품보다 더 아름다우리?
나는 그 순간, 반짝이는 저 수면 이외에 아무것도 갖고 싶은 게 없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눈이 아프도록, 싫증이 날때까지 누릴 수 있는 나는 그 순간 완벽하게 행복했다. 내 집 장롱이 금이 있건 똥이 있건, 거기 서 있는 나의 행복에 아무런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제 잡지에서 읽은 대목이 생각났다. 직장에서 해고 당할까봐 고질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막상 해고 당했을 때 받는 스트레스보다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단다. 그렇다면 걱정만 하고 해고 당하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해고 당한 사람보다 더 마음 고생이크다는 소리다.
법륜 스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사람이 하는 고민의 대부분은 지나간 과거를 원통해 하는 것과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걱정하는 것이라고. 나도 길가에 핀 풀 한포기처럼 겸손하고 가볍게 살고 싶다. 뽑혀서 버려져도 무심코 다시 뿌리를 박고 일어나는잡초처럼 질기고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햇볕과 바람을 듬뿍듬뿍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대단하지도 않은 딴생각에 빠져햇볕과 바람의 속삭임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되, 고민하는 건 의사에게 일임하려고 한다. 아플 만큼 아프다가 때가 되면 나을지도 모르지만,혹시 노화 현상이라면 그냥 다독이며 데리고 살련다. 책상에 앉지 않고 서서 글 쓰는 방법이나 연구해 봐야지. 서서 글 쓰다가 댄스스텝도 밟고 국민보건체조도 하고… 앗, 그러다가 거꾸로 너무 젊어지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