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과의 잠자리가 뜸하다. 내가 먼 곳으로 일하러 다니면서 몸과 마음이 늘 피곤하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몸은화학공장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부부간의 섹스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호르몬의 분비가 윤활하지 않으면 부부 금슬이 메마를 수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와도 취하지 않는 은밀한 동작을 나누고 난 후에 남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조금은 더애틋해지는 현상이 화학인지 심령인지 알 수 없지만.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래간만에 남편을 유혹했다. 그렇지만 유혹하는 마음 한 구석에는 남편이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남편이 거절해도괜찮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편도 “당신이 원하면 해도 괜찮겠다”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어찌어찌 어긋날듯말듯 소통이 이루어져 둘이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남편이 돌아눕더니 등을 긁어달란다. 등이 가려운데 뭐가 났는지 좀 봐달라고 했다. 나는 잘 안 보이기도 하고, 한쪽 팔꿈치로 고이고 누운 자세가 불편해서 대강 슬슬 긁어줬다.

“왜 이렇게 성의가 없어?“하고 남편이 불평했다.
“잘 안 보여서 그래.”
남편이 웃음을 터뜨렸다.
“인젠 섹스할 때 돋보기가 필요한 거야?”

둘이서 정신없이 웃느라고 에로틱한 분위기는 다 날아갔다. 그냥 이렇게 시시덕거리다가 잠이 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어찌 어긋날듯 말듯 소통이 이루어져 다음 과정으로 진전되었다.

왜 그런지 팔다리가 뻐근하고 자세 바꾸기가 영 힘들었다. “아, 왜 이렇게 끙끙대는 거야?” 남편이 불평했다. 나는 친구가 해준얘기가 떠올라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60대의 홀아비 오라버니에게 50대 여성을 소개시켜줬는데 몇 번 만나더니 오라버니가 그만만나기로 했다고 하더란다. 차에 타고 내릴 때 그 여성이 끙끙 신음소리를 내는 게, 노인이랑 연애하는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안좋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우와, 웃기셔. 자기는 노인 아니야?” 하면서 흥분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나는남의 남자 차에 타고 내릴 때 절대로 끙끙 소리내지 말아야지” 하고 앙큼하게 다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자기 남편이라지만 침대에서까지 끙끙대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푼수라서 남편에게 벼라별 소리를 다 하는 나, 이얘기는 꿀꺽 삼켰다. 당장 그 다음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국민보건체조 동영상을 찾았다. 그걸 보면서 맨손체조를 하면 뼈마디에서똑똑 소리가 났다. 컴퓨터 앞에서 체조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침부터 웬 행진곡이야?“ 차마 당신 때문에체조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리를 죽여놓고 그림만 보면서 체조를 하자니 신명이 덜 난다.

우리 부부 사이에서 서로 원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은 이유에는 나이 탓도 있을 것이다. 한동안 불규칙하던 생리가 완전히 멎음과동시에 성관계 할 때 힘이 들기 시작했다. 콘돔의 불편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성생활을 누릴 줄 알았던 나는 남편의 애무에 시원찮게반응하는 내 몸이 민망하고 남편에게 미안했다.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하러 갔더니 완경으로 인해 질의 점막이 건조해졌다고 한다. 내진을 마친 의사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이젠 질박테리아 대신 피부 박테리아가 서식한다고 말했다. 어째 내진할 때 예전같지 않게 아프더라니. 의사는 내게 호르몬 요법을 권했다.나는 펄쩍 뛰며 다시 생리하기 싫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소량의 에스토로겐 호르몬을 좌약으로 투입하면 성관계를 할 때 편안할 뿐, 생리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옛날에55세로 막을 내렸던 여성의 수명이 무려 30년이나 연장된 오늘날, 자연만 고집하는 것은 삶의 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독일사람들은 “전부” 아니면 “무”라는 철저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서 피곤하게 산다며 의사는 호르몬 좌약을 처방해 줄 테니 한번써보라고 거듭 권했다.

나는 남편에 대한 의리로 거절했다. 남편도 이젠 변강쇠가 아닐 터, 나 혼자만 호르몬 도핑으로 변함없이 촉촉한 젊음을 과시한다면노장이 부담감을 갖지나 않을까 염려되어서였다. 내가 편안하게 건조해야 그도 편안하게 부드러울 것 아닌가?

남편과 상의해서 전희를 정성껏 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같은 결과를 위해 바치는 수고가 커져서 그런지, 즉 편익 대비 비용이 높아져서 그런지 어느덧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에 이어 언제부터인가 나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희로 인해 윤활유가 충분한데도 마치 새색시처럼 아픈 것이다. 기분이고조되면 통증도 사라지지만 이튿날 소변 볼 때 쓰라리다. 의사는 내게 이런 현상이 오리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남편에게만은 미주알고주알 입이 가벼운 나도 이 사실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 관계할 때 아프다는 얘기를 입밖에 꺼내는 날 우리부부는 플라토닉 러브를 향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다. 통증이 좀 있어도 즐겁다는 건 내 사정이고, 내게 통증을주는 행위를 즐길 수 없다는 건 남편의 강박관념이다. 다른 데서는 우락부락 무심해도 섹스에 관한 한 남성의 심리는 그렇게예민하고 섬세하고 비이성적이다. 세월을 먹은 남자일수록 더욱 그렇다.

남편과 나눈 섹스의 횟수만큼 깊어진 애틋한 눈길을 앞에서 거론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함께 한 세월만큼 깊어진 상처에 대해서얘기할 차례다. 우리 부부는 평생에 걸쳐 무수한 상처를 주고 받았다. 서로에게 적응하지 못해서 성욕의 주기가 곧잘 어긋나곤 하던시절에 우리는 간혹 짜증이나 무시의 눈길로서 상대방을 거절했고, 이것은 각자의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내게통증을 주는 섹스를 즐길 수 없는 남편의 강박관념도 사실은 내가 임신했을 때 일어났던 어떤 일의 후유증이다. 내가 이를 기억하는이유는 남편이 내게서 먼저 상처를 받고 그 여파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나나 남편이 보이는 어떤 불합리한 행동은바로 이런 묵은 상처에 의해 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파트너에게 입힌 상처가 결국엔 내가 치료해야 할 상처로 직결되는 분야가 바로 섹스다. 어렴풋한 마음의 상처가 육체를 통해구체적으로 반응하는 분야도 섹스다. 너와 나의 개념이 사라지고, 영혼과 육체의 개념이 동화되는 세계다. 이래서 부부는 한몸이라고 하는가 보다.

묵은 상처의 위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 나름의 방법은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핑퐁을 주고받는 와중에 튀어나간 공이 누구의라켓에서 튀어나갔는지를 따지는 것은 닭이 먼저인지 알이 먼저인지를 따지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우리가 만든 공동의 상처라고생각하면, 내가 입은 상처가 덜 원통하고 내가 입힌 상처가 덜 부끄럽다. 깊은 곳에서 따끔거리는 생채기는 시간이 지나도 늘신경이 쓰인다. 그렇다고 자꾸 들여다보고 가끔씩 건드려 보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생채기는 잘 아물면 단단한 굳은살로 남아보호막의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괜히 자꾸 건드려 덧나면 암세포로 발전할 수도 있다.

상대의 실수 뿐 아니라 나의 실수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유머감각을 기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매일같이 내가 특별히 잘난 존재가아니라는 오만을 지우는 연습을 한다. 우리 깜냥에 이만큼 해낸 것도 대견하다. 주고 받은 상처도 딴에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한짓이다.

나는 사회적으로는 공정하고 정확한 역사 청산을 부르짖는 사람이지만 부부 관계에 있어서는 그러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주관과 감정으로 얽힌 동네지 공정성이나 정확성이 지배하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남편이 우리의 과거에 대해 황당무계한소리를 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나는 “그런가?“ 하고 만다. 그걸 따져서 위자료를 받을 상황도 아니고, 아무려나 남편이 그렇게믿고 기분이 좋아서 밤이고 낮이고 내게 서비스를 잘 한다면 그것도 공동의 이익이 아니겠는가?

나는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지만 꼭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일 이유는 없다. 나는 영화처럼 드라마틱하고 숨넘어가는 분위기를 좋아하지만 우리집 남자는 순발력을 요구하면 인생의 혼란을 느끼기 때문에 늘 길게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

“나 조만간 당신이랑 자고 싶어.“
“그래? 돌아오는 일요일 저녁에 춤 추고 와서 할까?“
며칠 후에 춤 출 때 눈웃음을 치면서 사인을 보낸다.
“오늘 저녁에 우리 같이 자는 거 맞지?“

그러면 남편은 미리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날의 진행에 차질이 없다. 젊어서는 나도 이런 남자가 더럽고 치사하고 한심해서복수하네 이혼하네 이를 갈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기운이 넘쳐나서 별 걸 다 가지고 정력을 소비했구나 싶다.

요즘 나의 남편이 가장 섹시하게 느껴지는 때는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나란히 누워서 라디오를 들을 때다. 그와 살을 맞대고 누워있으면 마치 섹스할 때 몸과 마음이 합쳐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깜빡 잠이 들곤 하는데, 섹시하다면서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모순스럽기 짝이 없다. 이렇게 값싸고 품질 좋은 호사를 옛날에는 누릴 수 없었다. 남편은 효율성 없는신체접촉을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잘못 건드렸다간 괜히 집적거려놓고 책임 안 지는 치한 취급을 받을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아침부터 편안하게 그의 배를 쓰다듬어도 괜찮은 것이, 남편도 근년들어 웬만해선 쉽사리 단단해지거나 불량한 눈빛을 띄지 않기때문이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플라토닉 러브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그러면 나는 아침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남편의둥근 배를 쓰다듬는 것으로써 섹스의 충만감을 뿜어올릴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의 화학공장에 윤활유를 공급받아 황혼이혼의 유혹을물리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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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시아버님의 유작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래를 향해 걷는 연인의 뒷모습을 표현한 목판화. (Diestelhorst 1996, 40*60 cm)


(도입부에 2009년 3월 4일자 “노화 일기”를 일부 이용했습니다.)
(레몬트리 5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