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남편과 데면데면하다. 남편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

뭔가 내게 섭섭하거나 불만이 있는 듯하다.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봐도그냥 아무 것도 아니라며 나를 슬슬 피한다. 그래서 나도 남편에게 화딱지가 났다. 나도 당신같이 비실비실한 남자 딱 질색이라구요!

마음속으로 법륜 스님께 여쭌다.
“스님, 남편이 이러이러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거의 다 외우고 있는 나, 스님의 대답이 명쾌하게 들린다.
“내버려 둬라. 남편도 그럴 자유가 있다. 그걸 꼭 알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집착이다. 왜 모든 게 네 맘대로 되어야 하니?”

나는 세상 사람의 이목이나 비판에 초연한 편이다. 내가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한 일이면 욕을 먹거나 왕따를 당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단, 자식들의 비판에는 최근까지도 약했다. 자기 어머니에게 아직도 억하심정이 많은 남편을 보며 나도 나중에 자식들에게서 섭섭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전전긍긍 조심했다.

어느날 법륜 스님의 법문을 접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사람들은 각자의 업(과거의 경험이나 습성)에 따라 제각각의 평가를 내린다. 그래서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하고 인정하고 이해하되 그 평가를 내 자질과 연관시켜 기뻐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같은 말씀이라도 이것을 내게서 먼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일은 쉬웠지만 내게 소중한 은인이나 친구, 그리고 부모와 내 자식에게까지 적용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흔들릴 때마다 얼른 저 말씀을 상기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순해진다. 나중에 녀석들이 모라모라 그러면 “잘 하느라고 했는데 그렇게 됐구나. 미안하다.“며 용서를 빌겠지만 자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 딴 건 몰라도 자식 문제에서만은 최선을 다했다고 믿기 때문이고, 실수 없기를 바라는 것이 오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초연하지 못한 사람은 남편이다. 나는 이 사람에게는 정말 잘 보이고 싶다. 이 사람이 나의 어떤 면을 경멸한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차라리 헤어지면 헤어졌지 그의 냉대를 받고 싶지 않다. 남편은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 사람은 자기의 일거수일투족이 내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상상하지도 못한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남편에게 물어봤더니 남편은 내가 열이 나서 헛소리하는 줄 알고 걱정스럽게 내 이마를 짚어본다. 남편은 내가 자기 의견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여자라고 굳세게 믿고 있다.)

마음속으로 법륜 스님께 여쭌다.
“스님, 왜 저는 남편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걸까요?”
“네가 오만해서 그렇지. 네가 뭐 그렇게 잘났다고 남편에게 완벽하게 인정받으려고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왜 남편에게만 오만할까요?”
“열등감을 느껴서 그런 게지. 오만함은 열등감에서 오는 거란다.”
“그렇다면 저는 왜 남편에게만 열등감을 느낄까요?”
“연애박사인 니도 모르는 일을 결혼도 안 한 내한테 물으면 우야노? 왈왈.” (내가 모르니까 내 마음 속의 스님도 모르심)

남편과의 관계가 매연같이 매케하니 내 마음이 우울하게 가라앉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의젓하고 건전한 글을 쓸 박자가 아니다. 거의 다 써놓고 마무리만 지으면 되는 홈에세이를 접어둔다. 이럴 때는 감성을 대번에 툭 건드리는 글이 쓰고 싶어진다. 최영미 시인의 시집을 펼쳐든다.

가을에는 (최영미)

내가 그를 사랑한 것도 아닌데
미칠 듯 그리워질 때가 있다
바람의 손으로 가지런히 풀어놓은, 뭉게구름도 아니다
양떼구름도 새털구름도 아니다
아무 모양도 만들지 못하고 이리저리 찢어지는 구름 보노라면
내가 그를 그리워한 것도 아닌데
그가 내 속에 들어온다
뭉게뭉게 피어나 양떼처럼 모여
새털처럼 가지런히 접히진 않더라도
유리창에 우연히 편집된 가을 하늘처럼
한 남자의 전부가 가슴에 뭉클 박힐 때가 있다
가을에는, 오늘처럼 곱고 투명한 가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으로 문턱을 넘어와
엉금엉금, 그가 내 곁에 앉는다
그럴 때면 그만 허락하고 싶다
사랑이 아니라도, 그 곁에 키를 낮춰 눕고 싶다
(창작과비평사, 1994)

시인의 정직하고 도발적인 언어가 내 핏속으로 스며든다. 오예, 바람 피우러 나가자! 날씨마저 바람나기 안성마춤이다. 해가 짱하고 났다가 삽시간에 후두둑 빗방울 듣기를 반복한다. 이런 날 꼭 가고 싶은 곳이 생각났다. 남부 공동묘지(Südfriedhof). 우아하게 카페에 앉는 것보다는 청승을 떠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서 보온병에 커피를 끓여 담았다.

날 듯이 자전거를 달려 뮌헨 시내에 위치한 남부 공동묘지(Südfriedhof)에 도착했다. 연두빛 햇살을 받고 고즈녁하게 피어오르는 싱그러운 풀냄새와 끼르륵깔깔 새소리. 토요일의 소비문화로 복작거리는 대도시 안의 장엄한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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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사대문 밖에 위치한 이 공동묘지는 16세기에 도시의 빈민들이 버려지던 장소였다. 페스트가 창궐했던 17세기에는 페스트묘지라고 불릴 정도였다. 18세기에 들어 자연과학의 발전과 함께 식수를 길어먹는 우물물 바로 옆에 사체를 매장하는 것이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은 도시 형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사대문 안에 있던 모든 공동묘지가 바깥으로 이전되면서 이 빈민묘지는 뮌헨의 중앙묘지로 정식으로 승격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도심의 문화재 공원처럼 운영되고 있으며,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많은 동식물의 종이 보호받고 있다. 노숙자들의 쉼터가 되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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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가 거의 마모되었거나, 이끼를 잔뜩 뒤집어 쓴 오랜 비석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모습이 평화스럽게 느껴진다. 2차대전 이후로 새로운 묘택을 쓰지 않고 있는 이 곳에서 이제는 새로운 죽음의 흔적 - 새 흙과 많은 생화로 표시되는 - 그리고 절절한 슬픔으로 남겨진 사람들의 공허한 실루엣을 만날 일이 없다. 그런 사실은 내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마치 박물관을 관람하는 기분으로 비석에 쓰인 이름과 생전의 직업과생사의 년월일을 읽는다. 19세기 뮌헨의 쟁쟁한 인사들의 이름이 간혹 눈에 띈다. 건축가, 과학자, 미술가, 음악가, 혁명가,맥주 공장 사장, 카톨릭 교구인 뮌헨에서 시민 자격을 받은 첫 기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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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시내에 있는 유적들만을 이용해서 서양건축사 강의록을 만들려는 나의 계획이 묘비를 구경하는 사이에 좀 더 풍성하게 살이 붙는다. 건물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를 생동감 있게 얽을 아이디어가 소록소록 떠오른다. 건축 공부와 역사 공부를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방법으로 쉽고 자연스럽게 깨치도록 교과를 짜는 일이 가능해 보인다.

언젠가 뮌헨 답사를 할 때 이곳 공동묘지에서 시작하도록 일정을 한번 짜봐야겠다. 역사의 주인공 되시는 양반에게 인사 먼저 드리고 공부를 시작하면 그 염력으로 머리에 쏙쏙 들어올 거야. 감성을 콕 찌르는 글감을 찾아 공동묘지에 왔다가 공부만 하고 가는 이 깝깝한 주변머리여.

그래도 이백 살쯤 먹은 원숙한 남정네들이랑 영혼의 눈을 맞추고나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가난한 시인”을 그린 슈피츠백의 감성과 한 바람, 뮌헨 고전주의 건축의 아버지인 클렌체의 야심과 또 한 바람, 한나절에 이렇게 몇 차례나 바람을 피우고 가슴에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 집으로 돌아간다.

으악, 그래도 집은 고대로 있구나. 컴퓨터 앞에 그린 듯이 앉은 남편이여. 가슴을 가득 채운 바람의 힘으로 전의를 다진다. “마음아, 마음아, 뭐가 문제니?”

spitzwegverkleinert.jpg 19세기에 소시민의 일상을 그린 뮌헨의 화가 칼 슈피츠벡의 “가난한 시인”

friedhofspitzweg.jpg 칼 슈피츠백의 묘지, 뮌헨의 남부 공동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