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요긴한 소식들이 많이 있는데 제 한글이 요즘 좀 답답해요. 근래에 독일어를 많이 써서 그런지 한글 단어가 잘 생각나지않네요.

사전을 들쳐가며 쓰니까 번역같은 문장이 나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그냥 주저리 읊겠습니다. 안 알려드리고 그냥 지나치기는 좀 아까운 사연들이어서요.

유치원 보모들의 파업

독일에선 지금 유치원, 어린이집 보모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무기한 동맹파업에 돌입했다. 맞벌이 부모들은 갑자기 아이들을 맡길 곳을 달리 찾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지만 동맹파업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다. 독일에서 유치원 보모라는직업은 대우와 월급이 아주 낮은 직업군에 속한다.

이 불경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아이들을 볼모로 다른 서민층을 압박한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번 파업의 가장 막강한 지지자는 연방 가정부 장관이다. 7명의 자녀를 둔 여성 장관은 돈을 들여야 좋은 서비스도 바랄수 있는 거라며 공개적으로 노조의 편을 들고 있다. 부디 동맹파업이 성공하여 유치원 보모들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독일의 미래를 위해서.

대학생들의 데모

원래 독일에는 대학 등록금이라는 게 없이 무상 교육이었다가 2007년부터 한 학기에 500유로(80만원)의 등록금을 받고 있다.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제도라 하여 이에 반발하는 데모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헌법재판소에 학생들의 단체소송도 걸려 있는중이다. 등록금 징수 이후로 집안이 가난한 학생들의 대학진학율이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

교육의 기회가 불평등한 나라는 장기적으로 불안한 나라다. 인적자원을 완전히 활용하지 못하여 국제경쟁에서 뒤처질 것이고, 사회의 이분화를 불러 감정이 앞서는 유혈혁명의 불씨를 심기 때문이다. 유혈혁명을 방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독재가아니라) 모든 이에게 희망을 주는 제도를 향한 변화이다. 나는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작금의 교육지옥을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변화를 기다리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 링크: 지난 5월 13일 뮌헨의 데모 동영상

“알아서 기는” 충신들과 66년만의 전범 재판

요즘 우리나라에는 “알아서 기는” 충신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의 행적이 역사속에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주는 사건들이 독일에선 지금 일어나고 있다. 최근의 사건을 소개한다.

나치의 하수인 존 뎀야뉵(John Demjanjuk)이 죄를 지은지 66년만에 독일 법정에 서게 되었다. 89세의 고령인데다 지병을 앓고 있는 그가 재판 시일까지 생존한다면 아마도 그는 나치 전범재판의 마지막 피고인이 될 것이다.

그는 폴랜드에 있는 유태인 수용소에서 나치의 하수인으로 일하면서 2만 9천명의 목숨을 앗는 일에 동참하며 그 잔인함으로 악명을떨쳤다. 그간 미국에 숨어 살면서 독일의 법정에 서지 않으려고 갖은 꾀를 다 부렸으나 결국 지난 5월 12일에 독일로 이송되어 뮌헨에 수감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독일, 이스라엘,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검찰이 30년 이상 끈질기게 추적한개가이다.

그의 가족들은 고령이자 병자인 뎀야뉵을 독일로 이송하여 법정에 세우는 것은 고문과 맞먹는 비인도적인 처사라고 항의하며그의 위독한 상태를 알리는 동영상을 유포했다. 가족들의 홍보 작전은 잠시 성공하는 듯 보였다. 독일의 이송팀이 비행기를 대기시켜놓고 그를 앰블런스에 싣는 순간 미국 법정에서 이를 금지하는 통고가 온 것이다. 그러나 그날 마치 죽을 것 같이 엄살을 부리던 그가 다음날 멀쩡히 걸어다니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확보되었고, 얼마 후에 독일 검찰은 그를 독일로 강제이송하는 일에 성공했다.

뎀야뉵이 일했던 수용소에 수감되어 전가족을 잃고 혼자 살아남은 한 피해자(Thomas Blatt, 당시 15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을 굳이 법정에 세우려는 목적은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재판으로 인해 진실이 드러나 그의 피해자들이 어떻게 죽어갔다는 것이알려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과거의 진실을 정확히 조명함으로써 정의를 되살리는 일만이 피해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일이고 재발을 막는 일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뎀야뉵은 2차대전 때 소련군에 입대했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유태인 수용소에서 나치의 하수인으로 일했다. 당시 그의 입장에 대해 피해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치의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수용소에서 일했던 100명의 전쟁 포로 출신의 하수인이 전부 그처럼 악랄했던 건 아니다. 조직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과, 앞장 서서 과잉 충성을 하거나 자신의 새디즘을 충족시키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 조직의 명령이나 이념을 핑계로 고문, 살상, 어용재판 등 인간의 양심에 어긋한 행동을 하는 것이 언젠가는 개인적인 범죄로 치부되어 끝까지 법의 추적을 받게 하는 나라만이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개인의 양심을 지켜 불이익을 감수하는 행동이 “바보짓”이 아니라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얼마나 단순명료하고 편안하고 발전성이 있을까?

참고로 현재 독일의 군사법 11조에 의하면:
1. 군인은 상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단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명령과 사적인 명령은 거부해도 법의 저촉을 받지 않는다.
2. 범법 사항에 속하는 명령에는 복종하면 안 된다. 범법인 줄 알면서도 명령을 수행하면 스스로 법의 저촉을 받는다.

링크:이반 뎀마뉵의 이송작전 동영상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을 신문에서 발견했어요. 한번 읽어보세요. 그럼 전 팔이 아파서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링크:[세상읽기] 이 사회의 뻔뻔스러움 / 우희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