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 이쁘게 생겼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나는 어려서부터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다. 몇십 년 전의 어른들은 교육적으로 무지했다. 집안 어른들은 공공연히 나를 쨀눈이라는 애칭으로 불렀고,손님들은 나보다 내 여동생이 더 예쁘다고 입을 모았다. 그게 어린 내 마음에 상처로 남았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기억이 나는 걸 보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내가 보통으로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보통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나도 보통에 속할확율이 높다. 여드름 나고 뿔테 안경을 낀 사춘기 소녀였을 때 나는 남몰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거울을 향해 이런저런표정을 지어보이던 중, 활짝 웃으면 나도 꽤 예쁘다는 것을 발견했다. 늘 그렇게 밝게 웃으려면 마음을 진정으로 착하게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외형적인 결점을 내면적인 매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의 세상을 훨씬 공평하게 만들어줬고 내게개척자의 자신감을 심어줬다. 그 무렵에 나는 새로 선발된 미스코리아가 자기는 어렸을 때 꺽다리라고 놀림을 받았고 그래서 외모에대한 열등감으로 죽고 싶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객관적인 미의 기준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

인생에 대한 느낌이 아직 그렇게 풋풋하던 시절에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사건이 생겼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가족과 함께독일로 가게 되어 출국준비에 바쁘던 어느날, 엄마는 아침부터 나를 닥달해서 어디론가 끌고갔다. 내가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채끌려간 곳은 명동의 유명하다는 성형외과였다. 나이가 지긋한 여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생긴 애는 눈이 문제가 아니라 코도높여야 한다며 내 코를 핀셋으로 집어 올려보였다.

나는 수모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에게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하는 훈련을 받지 못하고 자란 순둥이 소녀였다.훌쩍훌쩍 우는 것밖에 내가 할 줄 아는 항거의 방법이 없었다. 모두 내가 수술이 무서워서 우는 거라고 단정했다. 의료진은 물론미국에서 다니러 왔다는 내 또래의 환자 아가씨까지 눈에 반창고를 붙이고 나와서 나를 촌스러운 겁쟁이라고 몰아부쳤다. 엄마는 얘가그래도 서울에서 좋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고 변명하며 수술비를 치뤘다.

수술 준비가 착착 진행되었다. 포승줄로 묶지만 않았다 뿐이지 그야말로 막무가내의 상황이었다. 나는 자포자기가 되어 이런저런생각에 빠졌다. 가끔 남몰래 눈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쌍거풀을 만들어보던 내 얼굴을 상상하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난 좀더 나은 외모로 좀 더 신나는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어떻게 신나는 인생? 내면보다 외모가 더 중요한 인생? 그게 내가원하는 인생일까? 그런데 나중에 학교에 작별인사를 하러가면 친구들이 뭐라고 그럴까? 억지로 했다고 변명하나? 내 일을 가지고남의 핑계를 대기가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이 수모를 참으면 나는 앞으로도 남이 결정해주는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수술대 위에 눕기 직전에 나는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바보처럼 울기만 하던 애가 처음으로 눈물을 닦고 침착하게 의사표시를 하니모두들 얘가 이제서야 정신이 드는가 싶은지 반색을 했다. 그 병원 옆에 한일관이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만두국을 시켜달라고말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그 길로 뺑소니를 쳤다. 수중에 차비는커녕 휴지 한 장도 없었고, 길도 몰랐다. 어리숙하고 늦된 편인나는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던 모범생이었다. 명동에서 어찌어찌 서대문까지 온 후에 버스 노선을 따라 불광동 쪽으로 하염없이걸었다. 유월의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쪼이는 무악재 고개를 넘다가, 아이들이 달걀 모양으로 동그랗게 얼린 얼음물을 사먹는 것을보고 빼앗아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저녁에 나는 경을 치지 않았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면 쌍거풀 수술을 시켜준다고 늘 얘기하곤 했기 때문에 그 일을 당연하게생각했던 엄마는 나름의 사랑을 거부한 내가 내심 몹시 섭섭했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잘 했다. 이왕 도망치려면 만두국이나 먹고 갈것이지.“라는 말로서 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독일에서 결혼식을 올린 우리 부부가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한국에 갔을 때였다. 첫 만남에서 신랑이아버지께 영어로 “혜지는 뷰리풀 하다”고 말했더니 아버지는 “뭐? 혜지가 뷰리풀?“ 하면서 우하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신랑은정색을 하고 “한 공장에서 생산된 인형처럼 똑같이 꾸민 다른 한국 여성들보다 혜지가 더 뷰리풀 하다”라고 말했다. 그날 아버지는새파랗게 젊은 사위에게서 진정한 미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들어야했다. 난 쌤통이다 싶어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서일렀다. “엄마, 신랑이 나 이쁘다고 하니까 아빠가 우하하하 웃었어.“ “니 아빠는 소년 시절에 책을 많이 안 읽어서 교양이없어.“ 모녀는 깔깔 웃었다. 어쩌면 엄마는 속으로 내게 “그것 봐라. 그때 내 말 안 듣더니 쌤통이다.“하는 생각을 하셨을지도모른다.

나는 평생 사랑을 많이 하고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이때 나의 외모가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를 보고 예쁘다고 말한사람도 많았지만, 나는 내가 특별한 미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다행으로 여겼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는 나의 내면세계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은 내게 안정감과 자신감을 주었다. 늙어도 변치 않을 자산을 가졌으니…

나는 70년대 독일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경도되어 히피의 차림새를 추종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화장을 하고 손톱을 칠하기도 했다.나의 외모에 관한 어떤 원칙도 없이 그때그때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스스로 외모에 관심이 많은 남자와 사귈때는 나도 꾸미는 일에 재미를 붙였던 것 같고, 저도 양말을 뒤집어 신고 다니면서 내가 잠옷을 입고 나가도 몰라보는 남자와 사귈때는 나도 거울을 보지 않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남자에게 맞추었다기보다는 재미가 있고 없고의 문제였을 것이다. 손바닥도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까. 또한 내가 줏대가 없는 사람인 것도 사실이다. 나는 싫고 좋은 게 그렇게 확실하지 않고,웬만해선 이래저래 다 만족한다. 내게 중요한 것 딱 한두 가지만 악착같이 사수할 뿐, 그 밖에 다른 일을 양보하는 일에 하등의갈등이 없다.

몸치장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내 주변의 독일 여성들도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젊은 시절에 터키의 사막에서메소포타미아 발굴에 참여했을 때도 나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이 살인 태양으로부터 얼굴 피부를 보호하려는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않았다. 썬크림 하나 바르지 않았다. 우리의 젊은 가슴은 만 년 전의 문명을 만나는 일로 두근거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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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상종일 수도있지만 독일 사회의 성격이 원체 그런 면도 없지 않다. 학부모 모임에 가거나, 일하러 가거나, 심지어 댄스 학원에 가도 수수한청바지 차림에 맨 얼굴을 한 여성이 더 많은 것이 독일 사회다. 물론 화사하게 가꾸고 다니는 여성들도 있지만 그냥 각기 다른취향으로 인정될 뿐이다.

보통 여성들이 성형수술을 받는다는 건 독일 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얼굴에 난 점이나 사마귀도 웬만해선 그냥 다달고 산다. 누구나 다 그런 게 하나씩은 있으니까 특별히 인상에 남지도 않는다. 나는 내 또래의 독일 여성들과 벼라별 얘기를 다해봤어도 늙은 피부를 팽팽하게 되돌리는 방법이 진지하게 고민되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보톡스라는 것이 독일에도 시판된다는사실을 나는 불과 몇 달 전에 동네 약국 쇼윈도우를 보고 처음 알았다.

내가 그때 명동에서 성형수술을 받았더라도 내 인생이 그렇게 크게 달라졌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내 주장을 관철시키지못한 수모감이 은밀한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때 수술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가끔 서양의 언론에한국이나 일본의 성형 열풍이 회자될 때 남의 일이거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 일이었다면 난 독일 친구들 보기가 몹시부끄러웠을 것이다.

나의 동양적인 외모를 좋아하는 이곳의 지인들이 한국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고유한 생김새를 가진 동양여성들이 쌍거풀을 만들고 코를 높여 서양의 미녀를 모방하는 행위를 행여나 저급한 백인숭배 사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스스로의 가치를 비하하는 희한한 종류의 인종차별이라고 흉보지는 않을까? 만약에 히틀러가 세계를 지배하여 백인 이외의 모든인종에게 피부를 탈색하고 쌍거풀을 만들고 코를 높이는 수술을 강요했다고 상상해 보라. 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써 항거했을 것이다.목숨을 걸고 인종말살성 성형수술에 항거했을 사람들 중에는 지금 한국에서 무심코 유행 따르듯 쌍거풀 수술을 하는 사람도 섞여있을지도 모른다.

옛날에는 외모가 타고난 운이었는데 이제는 돈으로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끄는 매력은 안정된 내면에서나오는 어진 미소와 총명한 눈빛이다. 외모를 위해 투자한 돈의 액수와 상관이 없는 품목이다. 이렇게 말만 잘하는 내게도 약점이하나 있다. 나는 평생 태양의 딸답게 주근깨꽃이 만발한 맨얼굴을 반짝 쳐들고 잘만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느덧 세월의 훈장인검버섯까지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하자 슬슬 신경이 쓰였다. 보는 눈이 괴롭지 않을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이제는 사람을 만나러나갈 때는 파운데이션을 바르게 되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굉장히 의아해한다.

“왜 얼굴에 회칠을 하지? 가식이잖아?”
“나도 귀찮은데 차라리 레이저로 없애버릴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구두쇠 영감쟁이, 돈이 아까운 건가? 실은 나도 돈이 아깝다. 그 돈으로 쌀이나 약을 사면 지구 저 편에 있는 사람 목숨을 몇 명이나 구할 수 있을 텐데.
“안 달라지다니? 어머, 얼굴에 점이 없어도 정말 하나도 안 달라진다고?”
“나한테는 그래.”

실없는 디테일에 목숨을 거는 나, 나는 점이 있어도 예쁘다는 말인지, 점이 없어도 안 예쁘다는 말인지 따져보았다. 남편은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 발뺌을 했다. 어머, 그게 어떻게 같은 말이라는 거지? 필경 후자인 게야. 에헤, 나 뷰리풀하다고그래서 눈에 콩깍지가 씐 줄 알았더니 그래도 제대로 보긴 봤구만. 심심한 나, 아침 먹으면서 고등학생인 딸에게 쪼르르일러바쳤다. 딸이 나이프를 휘두르며 준열하게 판결을 내렸다.
“여성에게 그런 실례의 말씀을 하다니? 아빠가 내 남편이라면 이혼감이다.” 추상같은 솔로몬의 판결이 이어졌다. “엄마도 억울할거 하나도 없네. 평생 외모에 투자 하나 안 해놓고 무슨 좋은 소리 듣기를 바래?” 시험 치는 날 아침에 한 시간을 화장과몸치장에 투자한 우리 솔로몬은 학교에 간다면서 “치익~” 향수를 뿌리더니 핸드백같이 생긴 작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레몬트리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