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삶과 죽음이 내게 준 것”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부치는 저의 글을 읽고 반론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일 주일간의 출장에서 돌아와 이제야 답장을 드리네요.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우선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님은 노무현 전대통령을 좋아하셨고, 그의 공적을 인정하시는 분으로 이해했습니다.그러나 님은 비리 의혹의 한가운데 있던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사건을 마무리한 것을 무책임하게 생각하십니다. 또한아직 비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무조건 자살이 미화되는 현실을 우려하고 계십니다. 또한 그의 자살을 신성하게 포장하기에급급하여 반대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작금의 사회분위기를 폭력적이라고 느끼십니다.

저는 평화를 사랑하고 인명을 중시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살인을 절대죄악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웠습니다.히틀러 한 사람을 죽여 몇백만의 인명을 구하고자 했던 여러 인사들을 존경하고 있고, 사람을 죽인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욕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내 새끼 하나의 목숨을 노리는깡패 여럿의 목에 칼을 겨눌 수 있는 어미입니다.

남의 목숨을 끊는 살인도 그러할진데 자기 자신의 문제인 자살에 대해서도 저는 절대적인 잣대를 대지 않습니다. 숭고한 살인이 있을 수 있듯이 숭고한 자살도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만큼우리나라 노동인권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을까요? 저는 감히 전태일 열사에게 자살을 탓하여 손가락질 할 수 없습니다.

우울증이나 병적인 원인에 의한 자살 충동일 경우에는 치료해서 막아야 마땅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당사자의 결정을 존중하고싶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인 견해이기 때문에 님께서 다른 견해를 가지셨다면 그것을 인정합니다. 또한 저의 견해를 인정해주실 것을부탁드립니다. 왜냐면 그렇다고 해서 제가 인명을 경시하거나 삶을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히려 죽음이 그렇게가깝기 때문에 남의 인명을 구하는 일, 스스로 열심히 사는 일에 더욱 열정을 기울일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 님은 두 가지를 물으시겠지요?첫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비리를 저지른 자의 책임 회피성 행위가 아니라는 근거가 있느냐고 제게 물으시겠지요? 둘째, 어떤 이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전태일 열사의 반열의놓을 수 있느냐고 물으시겠지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저의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드립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보고 저는이 죽음이 충동적인 도피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글 쓰는 사람인 제가 보건대 그 유서는 감정이 격해서 후르르 훑어내린글이 아닙니다. “엄마가 모자를 안 사줬으니내가 얼어 죽는 꼴을 봐야해”라고 말하는 유아적 책임전가와도 거리가 먼 글입니다. 당신의 자살을 통해 가족과 동지에게 앞으로점점 더 거세게 불어닥칠 불의를 막겠다는 담담한 책임감을 저는 느꼈습니다. 자살을 통해서라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 그가 추구한이상이 훼손되는 것을 막겠다는 책임감을 저는 느꼈습니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서 유태인 라슬로가 말합니다. 매일매일 얼굴에 거름통을 쏟아붓는 수모를 감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살을 선택할 수도있는 거라구요. 어떻게든 살아서 대항하자고 애원하는 애인에게 한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유서에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의 목을 조여올, 그의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불의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제는 제가 그런 사실을, 그에게 그런 불의가 닥쳤다는 사실을 그의 유서를 보고서야 그제서야 제대로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우리 정치계의 그런 관습을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 천지에 어디 있겠냐마는, 그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그런 불의는 우리의근대사에 늘 있어온 일이기에 저는, 그리고 우리는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그의주머니에서 털려나오는 먼지를 흥미로운 눈으로 구경했던 거지요. 그래서 저는 미안한 겁니다. 29만원밖에 없다는 거짓말로서 그런수모에 맞서는 사람들의 반열에 그가 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는 미안한 겁니다.

두번째 답을 드리겠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우리의 어린 노동자들이 얼마나 심하게 착취당한다는 것을 다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사회적 불의를 외면할 공동의 핑계를 만들어서 서로의 양심을 위로하며 오손도손 살림을불리고 저축하며 살았습니다.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착취가 우리 역사에 늘 있어온일이라는 이유로 당연시하던 사람들에게 “그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 반드시 고쳐야 할 불의”라는 자각을 사회에 심어준 계기가 바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입니다.

일단 권력을 잡으면 정적의 약점을 캐서 씨를 말리려는 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있어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시에도 있었으리라고 저는확신합니다. 이는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라는 집권자의 의지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조직원들이 알아서 기는 불건강한 정치의생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타성으로 변해버린 사실을 두고 “이건 불의다”라고 이름 붙여준 사건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라고전 생각합니다. 그가 의도했건 안 했건, 역사적으로 그런 의미를 갖는 사건이란 말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전태일 열사의 죽음과 같이 어떤 역사성을 띄게 될지 아닌지는 뒤에 남은 사람들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우리나라 노동 인권에 길이길이 큰 영향을 미치게 된 스무살의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자살도 자칫 그냥 잊혀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자극을 받아 우리나라 정치 문화도 앞으로 정의롭게 변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있고 그렇지 않게 될 수도 있지요. 남은 사람들이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가장 숭고한예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답변이 충분했는지 모르겠네요. 제 이론에 치우쳐 님의 질문의 핵심을 찔러 답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부탁드립니다. 마주 앉아 하는 대화가 아닌지라 약간 미진한 점이 있더라도 상대의 진심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으로서 토론의위안으로 삼아야겠지요.

님의 의견의 많은 부분에 저는 동의합니다. 충동적인 자살이 일상화되거나 심지어는 미화되는 현상은 분명히 병적인 현상이라고,그리고 그것은 근절되어야 마땅하다고 저 역시 주장합니다. 이런 현상은 사회의 책임이지만, 자살을 죄악으로 정의해서 금기시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저는생각합니다. 그 원인을 사회의 구조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로 운명을 개척할 수 없을 정도로 불공평하고부정의한 사회, 일부 구성원에게 희망이 전혀 없는 사회가 아닌지 점검해보자는 말이지요.

아울러 우리 사회의 소수 의견에 대한 다수의 폭력성은 정말로 배타적이고 파괴적인 현상이라고 저는 백번 동의합니다. 그런가운데서도 제게 차분하게 이견을 제시하신 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덕분에 다시 한번 숙고하고 의견 개진의 기회를 갖게되어 기쁘고 감사하게생각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참고 링크:
글루미 선데이
김동렬의 구조론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