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인 먹거리
장보기를 귀찮아하는 나는 한번 장보러 갈 때마다 되도록 많이 사오려고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쓸어담는다.
자전거에 짐을 싣고위태롭게 휘청거리거나, 배낭으로 무겁게 매고 타박타박 걸으면서 “난 필경 짜부라져서 죽을 거야.“하고 한숨을 쉰다. 그러나남편과 함께 장보러 가는 날은 예외다. 힘 좋은 머슴을 대동한 김에 무거운 물건을 더 많이 사오는 게 요령일 텐데, 우리는 꼭그날 필요한 물건만 사서 가볍게 달랑 들고 온다. 물건 하나 놓고도 둘이서 이론도 많고 사설도 많아서 조잘조잘 아웅다웅 시간만엄청 보내고는 꼭 사야할 것도 깜빡 잊고 가볍게 돌아오는 것이다.
먹거리 시장은 과학이 아니라 믿음이 지배하는 시장이다. 뭐 하나 몸에 좋다는 결과가 나오면 소비시장이 우르르 그 곳으로 쏠린다.식품영향학계에서 회오리바람처럼 유행했다가 슬그머니 사라지는 학설은 얼마나 많은지? 그 와중에서 우왕좌왕하는 소비자의 돈을 챙기는약삭빠른 손은 또 얼마나 많은지? 물건을 사는 최종소비자가 시장의 주인일진대 그렇게 호구 취급을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 우리부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것이다.
“유기농 당근이 조금 더 비싸지만 이걸로 사자. 건강에도 좋고 토질 개선에도 도움이 되어서 환경에도 이로워.“
“그래, 요새는 유기농도 싱싱하니까 살 만하지?“
20-30년 전에 천연비료를 사용하고 농약을 안 쓰는 유기농이 처음으로 독일 시장에 선을 보였을 때는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그래서 유기농품은 부자, 또는 건강식 이상주의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수요가 많지 않으니 금새 팔리지 않아서 과일 야채가늘시들시들했다. 신선하지 않아서 영양학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주기에는 ‘‘내 몸 하나의 건강'‘이라는 주제가좀 빈약하다는 것이 당시 우리의 의견이었다. 더군다나 유기농품을 좀 더 싸고 싱싱하게 구입하기 위해서 자동차를 타고 멀리 농가에다녀오는 이웃을 보면서 남편은 화까지 냈다. 개인의 작은 이익을 위해서 에너지를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그래서 초반에 우리는 유기농품을 일부러 외면했다.
점차 유기농의 수요가 늘면서 보통의 서민 슈퍼에도 유기농품이 웬만한 가격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제때에 잘 팔리니 물건도 늘싱싱했다. 고백하건대, 그동안 시들한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면서 유기농을 격려한 부자, 또는 건강식 이상주의자들의 공로를 무시할수 없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기농품의 유통을 투명하게 만들어준 국가, 사회의 공로가 크다.
“<검증된 경작지>라는 말에 속지 마세요. 무엇이 검증되었다는 뜻입니까? 농부가 모자를 쓰고 밭에 나갔다는 사실이검증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답니다.“ 한동안 메스컴에서 소비자 교육에 열을 올렸다. 그와 동시에 유기농의 기준이 범국가적으로통일되었고 표기도 비오(Bio)로 통일되었다. 비오(Bio)라는 인증 하나만 믿고 유기농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는 요상한명칭에 속아 사는 일도 빈번했고, 소비자의 불신은 유기농품의 활성화를 저해했다. 갖가지 명칭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되고, 시장에서통용되는 표기를 믿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 우리 가정의 유기농품 수요가 확실히 늘었다. 좋은 일을 위해서 돈을 더 쓸 수도있으나, 피같은 내 돈을 쓰면서 속는다는 것은 주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 아닌가?
독일에선 유기농품만 각별한 감시를 받는 게 아니다. 유기농품이 아니더라도 모든 식품의 질을 검사하여 발표하는, 믿을 수 있는단체가 국가기관 이외에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일전에 그린피스에서 파프리카에 묻어있는 농약의 양을 조사하여 그것을 파는 슈퍼의이름과 함께 공개했다. 수치가 높게 나온 슈퍼에서 빠른 시일에 이를 개선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독일의 소비자 보호법도완벽하지는 않다. 근래에 상한 고기를 이용해서 소시지를 만들어 판 회사가 적발되었으나 정부에서 그 이름을 공개하지 못하는 까닭은예전에 명예훼손죄로 엄청난 벌금을 물은 전례에 따르는 것이다. 몇 달 전에 그런 사건이 한번 터진 이후로 우리 가족은 소시지종류를 일절 보이콧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힘을 합쳐서 업체의 로비만큼이나 강력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뭐야, 이거? 유기농 감자가 보통 감자보다 싸잖아?” 요즘 유기농이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독일이나 유럽의 유기농장의 공급이딸리자 세계화의 발동이 걸린 것이다. 인건비가 싼 먼 대륙에서 유기농산물을 수입하여 운송에너지를 낭비하는 폐단이 생겼다. 그래서어떤 때는 인건비가 싼 대륙의 유기농 야채가 독일에서 경작되는 보통 야채보다 값이 더 쌀 때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돈을 더주고라도 농약 친 독일산 야채를 산다.
“사과를 살 만한 게 없네. 이건 남미의 칠레산이고, 이건 뉴질랜드산이고, 또 이건 아프리카에서 왔고… 뭐야? 앗, 여기이태리산 있다. 유럽대륙이니까 운송 에너지가 덜 들었겠네. 이거 사면 되겠다.“
“가만 있어봐. 지금 유럽은 사과철이 아니거든. 이 이태리산 사과는 작년부터 저온저장 되었던 거야. 에너지소비로 치면 먼 대륙의제철 사과를 사는 게 나을지도 몰라.“
“아따, 당신은 사과 하나 사는데 뭐가 이리 복잡하냐? 인간성에 문제 있어.“
“문제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 왜 하필이면 지금 사과를 먹겠다고 그러는데? 딸기철엔 딸기 사먹으면 되잖아?“
“사과는 당신이 좋아하니까 사는 거지. 나도 사실은 딸기가 더 좋다구.“
이렇게 말하며 사과봉지를 내려놓고 딸기를 집으러 가는 길에 나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딸기 모종을 팔고 있었다. “어머나,발코니에다 이거 심으면 되겠다. 농약 안 치면 그게 유기농이지.“하며 담았다. 어느 세월에 딸기까지 길러서 먹느냐고 비웃는남편에게 말대꾸하다가 나는 그만 딸기 사는 걸 깜빡 잊어버렸다.
다음은 초코렛을 살 차례였다. 우리는 점심 식사 후에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초콜렛을 딱 한 조각씩만 먹기 때문에 하나만 사도일주일 이상 먹는다. 나는 얼마 전에 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 대한 기막힌 기사를 읽었다. <하루종일 뙤약볕 아래서 무거운분무기를 등에 지고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이 말한다. “내 눈과 피부가 얼마나 따가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거야.”하며 기자를바라보는 얼굴이 마치 노인처럼 늙어보인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고작10살이다.> 그 소년은 7살 때 노예로 팔려와 코코아농장에서 무서운 노동을 하고 있고, 유아 노예를 부리는 부도덕한 농장 주인은 일년에 3만원하는 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서허리띠를 졸라매고 고군분투하는 청년일 뿐이다. 그럼 이 판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미국과 유럽의 초코렛회사다. 그리고 우리 소비자들이다. 이렇게 맛난 초코렛을 헐값으로 사먹을 수 있는 우리들… 자식 기르는 사람이 다른 건몰라도 초코렛을 사면서 공정무역 상표를 외면하면 인간도 아니다. 값이 좀 더 비싸더라도 이왕이면 공정무역 플러스 유기농 상품으로골랐다. 노동력이 싼 곳일 수록 업체에서 노동자의 건강을 우습게 여기는 까닭에 이를 소비자가 적극적으로 챙겨주려면 무서운 농약을안 쓰는 제품을 선택하는 수밖에.
슈퍼에는 달걀만 해도 여러가지 종류가 비치되어 있다. 케이지 사육 달걀, 방목 사육 달걀, 유기농 달걀. 내가 제일 비싼 유기농달걀을 집어드는 것을 보고 남편이 싫은 소리를 했다.
“왜 하필이면 유기농이야? 풀밭에 방목해서 기르는 닭이 낳은 달걀이 어때서 그래?“
“유기농 양계장에선 천연 사료를 먹여서 달걀도 더 건강할 것 같아서 그래.“
“나도 못 먹는 유기농 곡물을 닭이 먹어야 할 이유가 있어? “
괜히 화를 내는 남편이 눈꼴시었지만 나는 ‘‘케이지에서 사육되는 닭이 불쌍해서 닭의 사육 환경을 개선하고 싶은 것일 뿐 그 이상은관심 없다'‘는 남편의 말을 받아들여 아무 소리 없이 다른 달걀로 바꿔넣었다. ‘‘일관성 없이 지 맘 내키는 대로 결정하면서 화를내기는? 그래 그래요. 주관이 지배하는 먹거리 시장에선 아무려나 당신 생각이 항상 진실이로소이다.’’
계산을 마치고 슈퍼를 나오며 남편이 물었다.
“헤이, 딸기 안 샀지?“
“아차, 깜빡 잊었다.“
“뭐, 일부러 안 산 거지. 구두쇠 아줌마가 딸기 대신에 모종을 심어서 뽕을 빼려고.“
“하하핫, 그렇네. 딸기 값이랑 모종 값이랑 같았거든. 나중에 딸기가 많이 달리면 내가 이익 보겠네. 그나저나 당신은 내가 기른딸기 안 줄 거야. 아까 괜히 화내고 지금 나를 비웃어서.“
우리는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유기농 빵가게 앞에서 발을 멈췄다. 백밀가루와 백설탕도 사용하는 유기농 비오(Bio) 빵집이다.어떤 이들은 이런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80년대에 독일에선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자각이 싹트면서 인공 비료와농약을 피하는 유기농이 선을 보였고, 그와 동시에 통밀, 현미, 흑설탕 등 미정백(米精白) 재료만을 사용하는 자연식이소개되었다. 마침 그때 독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발도르프 대안 교육문화가 유기농과 미정백 자연식을 동시에 지향했으므로독일인들은 아직도 이 두가지를 혼동해서 비오(Bio)하면 미정백까지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남편은 유기농의 공로만 인정할 뿐, 흰쌀밥을 먹거나 현미밥을 먹는 것은 철저히 입맛의 문제라고 고집하는 사람이다. 특별히독이 되는 음식은 없으니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것으로 골고루 맛있게 먹는 것이 약이라는 것이 그의 굳건한 지론이다. 물론 그의입에는 흰밥과 흰빵이 더 맛있다. 그러니 흰빵도 파는 비오(Bio) 빵집이 어찌 아니 반가울소랴?
빵집에 들어가려다 말고 남편이 멈칫했다. 문 앞의 팻말에 ‘‘토요일 오후 1시 이후에는 40%를 깎아준다'‘고 써있었다. 남편이시계를 보며 1시 반이라고 투덜거렸다. “좀 일찍 올 걸.“ 남편은 자기 이상과 입맛에 딱 맞는 기특한 아이디어로 창립한 이가게에서 가격을 깎아 산다는 사실이 민망한 것이다. 나는 그 이면에 개인적인 입맛과 상관없는 또다른 고마움이 하나 더 있다는것을 알고 있다. 인건비를 따라 움직이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어제 동유럽에서 반죽된 빵이 밤새 트럭을 타고 달려와 뮌헨의오븐에서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공장형 대형 빵집들이 늘어나는 추세고, 그들과의 가격 경쟁을 이기지 못해서 소규모로 운영되는 동네빵집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그런 와중에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만 믿고 문을 연 작은 가게가 망하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은주민의 책임이라고 남편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땅의 주인으로서 자기가 살고 있는 터전의 삶의 질을 지켜내려고 노력하는 남편의주인의식에 껌뻑 감격한 나는 그가 방금 딸기 모종 문제로 날 비웃은 일도 싹 잊어버리고 나긋하게 아양을 떨었다. “내가 월요일아침에 와서 제 값 주고 크로와쌍이랑 브뢰첸(주먹만한 하얀 아침빵) 사주께. 그럼 되지?“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레몬트리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