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도 살림도 엉성하게 내 멋대로 하는 편이다. 내가 설익은 밥을 숟갈로 으깨어 후라이팬에 지져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얘기는

대가족의 안살림을 관장할 나이의 내 또래 여성들의 동정심을 유발한 모양이다. 한 동창 친구가 독일에 올 때 나 준다고 맛난 떡을 바리바리 싸왔다.

그런 나도 김치 담는 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황송하기 이를 데 없다. 춥고 어두운 북유럽에 막 도착한 새댁이 대체 여기선 김치를 뭘로 어케 만들어 먹는 거냐는 질문을 하셨길래 동병상련의 정으로 나의 비법을 소개해드린다. 간단하고 성공율이 높은 약식 조리법이니 해외에서 향수를 달래며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이해하시고… 국내 동포들 보시기에 우습더라도 흉보기 없기!

지금 그 나라에서 혹시 배추를 구할 수 있다면:
배추를 4cm 두께로 썰어도 괜찮고 4등분해서 통김치로 담가도 괜찮다. 소금물을 짭짤하게 타서 배추를 재워 숨을 죽인다. 배추의 사각사각한 성질이 없어지고 눅눅하게 쳐지면 숨이 죽었다고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소금물의 농도에 따라 다르다. 가끔 배추 조각을 맑은 물에 씻어서 먹어 봐서 배추 밑둥이 부분이 아삭아삭이 아니라 오돌오돌 씹히고 간간하게 먹기 좋으면 된 것이다. 배추를 맑은 물에 행궈서 채에 받쳐 물을 뺀다.

마늘, 생강, 빨간 피망을 믹서에 드르륵 갈아서 한국에서 엄마가 부쳐주신 고추가루와 버무려 양념을 만든다. 파를 어슷어슷, 또는 취향에 따라 쫑쫑 썰어 넣는다. 물기 빠진 배추에 양념을 넣고 골고루 무친다. 용기에 꼭꼭 눌러담고 접시나 돌로 누른 후 뚜껑을 꼭 닫는다. 공기가 새면 안 되므로 나는 뚜껑을 닫기 전에 랩을 씌우고 고무줄로 고정시킨다. 익기 전에 너무 자주 열어 보고 찍어 먹어 보면 망하니까 이틀 정도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나는 김치에 마늘을 넣지 않는다. 남편이 점심 시간에 밥 먹으러 들어왔다가 다시 회사로 가기 때문에 날마늘이 들어가는 음식을 피하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태어난 내 김치에는 워낙 젓갈이 안 들어가는데 여기에 익숙한 우리 식구들이 진짜 김치를 먹으면 “이상하다, 왜 김치에서 생선 냄새가 나지?” 이런다.


만약 그 동네에 배추가 없고 어른 팔뚝만한 서양 무가 있다면:
일이 쉽고 손에 양념을 묻히지 않는, 깔끔이 깍뚜기를 소개한다. 어른 팔만한 서양 무 2개를 깍뚝썰어 30분 쯤 소금에 절인다. 무와 소금을 살살 흔들어서 섞어야지 무를 주무르면 안 된다. (나중에 깍뚜기에서 군내 남)

무에서 나온 소금물에 마늘, 생강, 양파 한 개, 빨간 피망 한 개, 감자는 소녀주먹만한 놈 한 개를 넣고 믹서로 드르륵 갈아양념을 만든다. (마늘은 생략해도 됨, 감자도 생략해도 됨) 양념에 고추가루, 파, 통깨를 넣어 무랑 살살 섞는다. 여기 저기 먹어 보고 싱거우면 소금간을 더한다.

용기에 꼭꼭 눌러담아 접시나 돌로 눌러서 익힌다.

(3년 전의 내 독백: 나는 이번에 깍두기 담으면서 딴생각 하니라고 생강이랑 파 넣는 걸 잊어 버렸다. 그래도 국물이 걸쭉한게 얼마나 맛있는지 같이 먹다 옆 사람이 죽어도 모를 정도다. 나중에 국물만 남으면 거기다 국수 비벼 먹을 거다. 그리고나서 며칠 후에 쓴 독백에 의하면: 국물이 맛있어서 국수에 비빌 것도 없이 그냥 다 퍼먹었다.)


춥고 어두운 북유럽 그 나라에 배추도 무도 없다면:
당근으로 무처럼 깍뚜기 담아도 아작아작하니 참 맛있다. 양배추도 훌륭한 대안이다. 양배추는 배추보다 단단하고 질기므로 1cm 정도의 두께로 가늘게 썰어서 깍뚜기 담그는 방법으로 담근다.

(스웨덴 새댁의 성공을 빌어요. 적응 잘 하시고 좋은 경험 많이 하시구요.^^)


링크: 제가 떡을 다 만들었어요,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