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주부 vs 전업주부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면 나는 늘 박쥐가 된다.

일이건 공부건 나의 전문 영역을 늘 손에서 놓지 않았으니전업주부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산업역군의 마인드를 가지고 경제활동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니 취업여성이라하기도 민망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평생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가지고 나의 일에 열성을 쏟았기 때문에 누가 나를 취미삼아 간판만걸어놓은 한량 취급을 하면 기분이 나쁘다. 특히 남편이 실수로 유세라도 하는 날에는 국물도 없다. 이런 속물을 데리고 사느니차라리 죽음을 달라!!!

나는 남의 일에 간섭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자식은 아무쪼록 엄마 손에서 커야 하는 거라고 남에게 죄의식을조장하는 할머니나 동네 아줌마들도 싫어하지만, 모성애는 남존여비 사회가 만들어 놓은 족쇄이니 걷어차라고옆에서 주문을 외는 사람들도 싫어한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냥 자기나 실천하면 되는 거다. 자녀 기르는 방법에는 정답이라는 게없으므로 그냥 각자 자기가 처한 상황과 성격에 맞춰서 결정할 일이다. 엄마가 아이를 꼭 끼고 길러서 더 잘 되는 경우도 있고그래서 망치는 경우도 있다. 취업여성이라고 해서 다 남녀평등에 기여한다고 말할 수는 더더욱 없다. 여성 고유의 장점을 반납하고남자 흉내를 내는 여성들은 암만 성공해도 다른 여성들에게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아건 직업이건, 어떤 길을 가느냐가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한 길을 얼마나 잘 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부부가 아이들을 끼고 길러서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 부부 스스로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후배 부모들에게 우리의 황홀했던경험을 얘기할라치면 자칫 아이를 부모가 끼고 기르라고 추천하는 것처럼 들릴 때도 있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기가 선택한육아 방식이 가장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것 밖에 모르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열두어 살 때였으니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친구 부부가 두 살짜리 어여쁜 아기를 데리고 놀러왔는데 우리 아들이 참예뻐하며 잘 데리고 놀았다. 그러다가 공무원인 엄마가 18개월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게 위해서 아기를 곧 어린이 집에보낼 거라는 말을 듣고 아들이 경악했다.

“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얜 아직 말을 못하니까 그걸 원하는지 물어볼 수 없잖아?”어떻게 의사 표시를 못하는 아기 본인의 일을어른들이 맘대로 결정할 수있냐는 뜻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서 설명을 해줬다.

“아이들을 어린이 집에 맡기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엄마 아빠가 둘 다 직장에 나가는 것이 가족 전체를 위해서 더 나은경우도 있어.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아이를 덜 사랑하는 건 아니거든. 너는 네가 다르게 컸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을 뿐이야.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네 부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함께 결정하는 거야. 너 혼자 고집부리거나 강요하면 안 돼.”
아들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럼 내가 집에서 아기 키울 거야.”

취업맘만 나중에 애들에게서 원망 듣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사랑으로 끼고 길렀다고 해서 아이들의 원망에서 비껴가는 건 아니다. 우리 딸애가 어렸을 때 자기는 엄마 아빠가 자기네들 돌보는 대신 밖에서 일많이 하고 돈이나 많이 벌어서 마당에 수영장이 있는 저택에서 살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했다. 난 가소로워서 “그러셔?“ 하며웃고 말았다. 부모에게 불평 불만을 가지는 건 아이들의 직업이니까. 물론 그런 말 듣는 첫 순간에 나는 무심코 억울하긴 했다.나도 인간이니까.

하지만 우리 딸의 미래의 구상을 들어보면 억울함이 좀 가신다. 딸은 이런 저런 직업을 떠올리면서 바람직한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일인지를 꼭 따져 본다. 아직 어린 아이가 벌써 그런 족쇄를 매달고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엄마가 네 아이들 잘봐줄게. 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원없이 해 봐.“라고 말할라치면 얘는 날 야만인 또는 파렴치한 취급을 한다. “꽥! 내 아이를왜 엄마가 돌봐? 왜 나의 기쁨을 빼앗으려고 하냐구? 자기는 다 즐겨 놓구서.“ 그런 말을 들으면 난 마음이 좀 놓인다. 사실나는 집에서 아이들 보면서 욕구불만도 많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커서 얘들에게 못되게 군 일도 많았을 텐데 아이들 눈에는그런 내 상황이 그다지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하지만 만약에 내가 아이들을 맡기고 일한취업맘이었다더라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비슷한 정도의 만족감을 보였으리라고 확신한다. 가족을 사랑하고 열심히살았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외형이 어땠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한국 사회는 취업맘들의 죄의식을 유난히 부추기는 것 같다. 가족이나 이웃에서 그런 분위기로 몰아가는 탓일 수도 있고, 경쟁위주의 교육 현장이 살벌해서 아이들 혼자 해결하기에 버거운 상황이라서 그런 것 같다. 이런 마당에 부모와 자식이 꼭붙어서 비비고 사는 기쁨을 쓴 나의 책 ‘‘고등어를 금하노라'‘가 우리나라 취업맘들의 죄의식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악용될 것을 나는심히 우려한다. 하지만 난 그 책이 한국의 보편적인 아버지들의 죄의식은 좀 부추겨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일반적인 엄마들의모성 점수에 비해서 아버지들의 부성 점수는 좀 낮은 것 같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부성애를 돈 잘 버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이건 동서양을 막론하고 원시시대부터 이어온 남자들의 근성이니까 조금은 이해해줘야 하지만, 남자들의 이런 착각은 결국 남자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의 생일을 절대로 잊지 않고 꼭 챙겨주지만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생일을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내리사랑이란 의미에서 당연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많은 아버지들은 그 반대다. 당신은 자식들의 생일은 전혀 모르면서도 행여 자식들이 당신 생일을 잘 챙겨주지 않으면 섭섭해하신다. 이들 아버지들이 경우없는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젊었을때 첫 아이인 나를 안고 어르다가 목사님이 오시니까 갑자기 나를 팽개치듯 내려놓으셨다는 일화, 해외 출장이 잦았던 아버지가외국에서 자식들에게 학교로 엽서를 보냈는데 그만 내 동생의 학년을 몰라서 틀리게 적었다는 일화가 우리 집안에선자랑스럽고 애교스럽게 전해내려온다. 우리 아버지는 자기 핏줄에 대한 원초적인 사랑을 표현할 자유를 사회 통념에 의해 박탈당하고,자식의 성장 과정에 무심한 것이 대외적으로 성공한 대범한 아버지로 용서되는 시대를 주류로 살아온 사람일 뿐이다.

그 세대의 아버지들은 평생 죽을동 살동 일하고 돈 벌어서 가족을 부양했지만 가정 속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여 결국 돈버는기계로 전락했다. 냉정한 후대의 시선으로 보건대, 가장 소중한 부성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줄도 모르고 밖에서 자신의 꿈을실현하는 것이 남성의 특권이라 여겨서 맘껏 인생을 즐긴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사회 전체가 총체적으로 그렇게 무지했다. 그런 사회의 분위기는 가정을소중히 여기는 소수의 남성들을 핍박하고 윽박질러 그들이 가정에 헌신하는 것을 막았다.

노년의 아버지들은 억울하다.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품었던 섭섭한 감정은 어머니의 다른 헌신적인 행위로 상쇄될 기회가 많지만,아버지의경우엔 접촉이 별로 없으니 쌓였던 억하심정을 풀 기회 또한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자식들은 그들이 관여할 분야가 아닌, 부부사이의 은밀한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일에서까지 어머니를 대변해서 아버지를 원망한다. 어머니는 자식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지만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돈만 대준 사람, 즉 어머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식들과 관계를 맺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는가능해도 사람의 감정은 아버지가 버는 돈 이콜 사랑이라고 해석하지 못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독일이라고 해서 그다지 다른 것은 아니다. 요즘 독일의 젊은이들은 구세대 아버지들의 무지와 억울함을대물림할의향이 없다. 우리 주위에만 해도 부인과 육아 휴직을 나눠 쓰는 남성이 서넛이나 되고, 잘 나가는 정치가가 승산이 높은 당수경선을 포기하고 1년의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일도 있다. 독일에선 최고 3년의 육아 휴직이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그리고 육아를위해 휴직한 사람에게는 12개월 동안 기존 월급의 67%를 지급하는데, 양쪽 부부가 동시에 또는 번갈아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경우에는 2개월분을 더 지급한다. 아버지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인데 아직은 고학력층에서 주로 수용되고 있는현실이다.

독일인들이 양성평등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 정책을 만들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독일은 어머니를 가정에 묶어두는 전통이 있는나라이다. 자녀를 일곱이나 둔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 장관이 도입한 이 정책은 세계에서도 으뜸가는 독일의 저출산율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이다. 즉남녀가 평등하게 육아의 짐을 지는 사회안에서만 젊은이들이 자식을 낳아 기를 엄두를 낸다는 것을 정치권에서 알아챈 것이다. 육아가 남녀 공동의 과제로 간주되어야만세상의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도 육아로 인해 손해보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래야 사원을 위하여 회사 내에어린이 집을 운영하는 기업도 생겨날 것이고, 남녀 막론하고 장기간의 육아 휴직이 당당하게 활성화될 것이며, 양질 저가의 어린이시설이 양성될 것이고, 믿고 맡길 만한 공고육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 사회의 수혜자는 이중고를 벗은 여성, 가정에서 제 자리를확보한 남성, 그리고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된 유아시절을 보내고 공교육에 의해 평등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고달픈 현실을 반영하고 암울한 미래를 상징하는 저출산율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자식 농사는 손해보는 사업임에 틀림없지만 약간의희망만 보여 주면 누구나 다 속아넘어가는 아이템인 걸.



(레몬트리 11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