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의 인터뷰에서 발췌.

**-아이들의 난독증을 슬기롭게 이겨내신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처음 난독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당혹감 같은 것은없으셨는지?

**-남편에게도 난독증이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당혹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지금 멀쩡하게 잘만 사니까요.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못했어도 교우 관계도 좋고 성격도밝아서 걱정을 덜었지요. 공부 못해서 기가 죽으면 그것 때문에라도 걱정이 되었을 텐데요. 저희는 아이들이게 실력과 학교 성적은 동일어가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성적을 잘 받을 생각을 하기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배우기를 바랬지요.

많은 분들은 이런 교육법이 독일에서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죠. 그러나 교육에 관한 저의 모델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엄마들이었습니다.한국에서도 아이들을 그렇게 기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는 어머니가 아이 숙제를 봐주면서 “이거 틀렸지만 지금 고칠필요는 없어. 선생님이 보시고 얘기하실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고 저도 따라한 셈입니다. 그리고 다른 어머니가 한국에서 자녀들을 전교에 학급이 두 개밖에 없는 시골분교에 보내는 것도 보았지요. 아이들이 사람다운 학창시절을 보내게 해주려고요. 지금도 한국에서 사교육 없이 고등학생 자녀를 공부시키는 가정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저희처럼 하는 부모들이 소수이고 한국에도 저희같은 부모들이 있습니다. 저는 의식의 문제라 생각하지 환경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실천하기가 쉽고 어려움의 차이는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나름대로 확신으로 아이들을 키워오셨지만 때론 아쉬운 점도 있을듯 한데 어떠신지요?

**-예, 아쉬운 점이 있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아쉬운 이유가 정말 교육 방법에서 오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하나를 취하면 버리는것도 있는 게 당연지사인데 어떻게 다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나 하며 마음을 편하게 먹습니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특정한 교육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신념에 따라 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경향이 더 크기 때문에 결과에 별로 연연하지않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것으로 만족합니다. 뭔가 부족한 것은 인간적인 현상일 뿐이지요.

저희 아이들은 커가면서 공부를 잘 하는 편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많은 독자분들께서 저희의 교육 방법이 성공했다고 하실 것을생각하면 제 속이 살살 쓰립니다. 행여 저희의 교육 방식이 “공부 잘하는 아이 만들기”의 비결로 오해될까 씁쓸합니다. 아이들이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성공하라고 저희가 고도의 전술을 쓴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저희는 아이들이 직업학교에 가서기술을 배우더라도 자신이 열정을 느끼는 일을 발견했다면 성공으로 치고 참 기뻐할 겁니다. 반대로 아이들이 대학에서 법학이나의학을 공부한대도 열정 없이 허영심에서 하는 거라면 부모로서 슬프고 측은하게 생각할 겁니다.


**-독일에서 살아오신 인생은 독자들이 보기에는 성공적일 듯 합니다. 향후 고건축 전문가이자 책을 집필하신 작가로서 또 다른계획이 있다면?

**-그런가요? 저는 만족하지만 특별히 성공적으로 보인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지금 저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가을부터 장애아 유치원에 도우미 교사로 취직했어요. 프리렌서로 고건축실측 조사를 함께 하던 동료들, 그리고 조만간 저와 함께 전문서적을 집필하려고 했던 원로 교수님께도 이 사실을 통고했자요.

보육 교사는 제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실행에 옮길 엄두를 못 냈는데, 근래에 장애아 도우미로 자원봉사 하느라고유치원에서 일하면서 생각을 굳혔습니다. 제가 실측 현장에 일하러 가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고 유치원에 일하러 가는 날은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아하, 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결과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하나는 과정이즐거워서 하는 일이구나. 그리고는 저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할 때 네가 가장 근사하게 보이지?” 가 아니라 “무엇을 할 때네가 가장 행복하지?” 하고 물었습니다. 전 평생 열심히 일해서 제 분야에서 좋은 성과도 냈고 그만하면 사회에 충분히환원했으니까 이제는 저를 위해 즐거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 나이가 만 52세니까 지금부터 부지런히 교육 받아서 자격증 따면 한 10년은 맘껏 일할 수 있지요. 저도 나이가 있는데 더하라고 그래도 힘들 것이고… 그 나이에 힘들어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겠느냐는 말을 듣기도 하는데요, 평생 그 일을 해온사람이면 식상해서 힘들겠지만 전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니까 신선한 호기심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다가 정 힘들면 그때 가서생각해 보지요. 미리 걱정할 일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오래 못 하게 되더라도 일단 하고 싶은 것 해봤고, 하는 동안 즐거웠으면 됐지요. 안 해 본 것에 비하면 엄청난 이익 아니겠어요?

또 하나 저의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저의 글쓰기여요. 저는 글을 계속 쓰고 싶은데 고건축 현장에서 홀로 작업하는환경에서는 글감의 입력(input)이 부족하더라구요. 저는 실생활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글을 쓰는 사람이기때문에 그렇게 입력(input) 없이 출력(output)만 있는 생활을 오래 지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주제를 반복하거나 거짓말을 쓰게 되지는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에 비해서 글쓰기와 유치원 선생님은 궁합이 잘 맞는 조합인 것 같아요.

하지만 당장 고건축 현장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있던 실력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전공쪽으로 읽고 사고하고 글을 쓸 것이며, 유치원 방학을 이용해서모교에서 대학생들지도하는 일도 계속 할 계획이니까요. (세상이 뒤집어져서 티베트 전통가옥을 실측 조사하는 기적이 일어나면 다 팽개치고 달려갈지도 모릅니다. 유치원 아가들한테 폭 빠져서 그런 일이 시쿤둥해질 가능성도 있지만요.) 하지만 장애아 유치원에 매일 출근하는 요즘은 제 평생에 가장 어려운 일을 배우고있다는 자부심과 기쁨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요. 그야말로 용기백배 장미빛 인생입니다.


**-또한 한국에서 활동하실 계획은 혹시 있으신지요? 가족들과 떨어져야 하기에 당장은 불가능할 듯 하지만 향후 계획이 있다면?

**-평생 저는 언젠가는 한국에서 활동할 거라는 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슬슬 그 꿈을 접으려고 합니다. 남편과함께사는 한은 그게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저희는 언젠가 한국에 같이 가서 살 생각도 했지만 그건 젊어서의 생각이고 이제 나이를 먹어가니까 남편이 새로 다른나라에서 적응해서 사는 게 힘들 것 같아요. 물론 살라면 살겠지만 정신적으로 충만하고 행복해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남편이행복하지 않으면 저도 행복하지 않지요.

부부관계에도 여러 종류가 있죠. 만약 저희가 자녀를 낳지 않고 각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생활을 했더라면 아마 다른 형태의부부관계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는 둘 다 독립적인 성격이니까 각자 정열을 바쳐 일하는 분야를 가지고 한달에 한번, 일년에몇 번만 봐도 충분한 관계도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아이들을 낳았고 온 가족이 딱 붙어서 비비며 사는 인생을살아왔어요. 좋고 나쁨을 떠나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죠. 20여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남편도 저도 그런 생활에 맞추어살며 서로에게 습관이 들었지요. 그래서 이제는 한쪽이 없으면 무척 아쉬워요. (당장 댄스 파트너를 어디 가서 따로 구할 생각만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물론 아이들이 다 컸으니까 이제 다시 패턴을 바꿔서 각자 자기 일을 찾아서 공간적으로 떨어져서독립적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둘 다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고요. 하지만 그러기엔 지금 저희의 생활이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변화를 추구할 이유가 없지요. 제가남편을 독일에 두고 한국에 가서 어떤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저를 지금보다 행복하게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국이 저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니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제 인생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중대한 일을제가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