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지식하지만 의심도 많다. 사람은 잘 믿어도 설은 잘 안 믿는다.

무조건 믿어야 소통이 가능한 분야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신도 안 믿고 미신도 안 믿고 사주팔자도 안 믿는다. 전생도 내생도 안 믿고 천당도 지옥도 안 믿는다. 현재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은 있으나마나고, 내생이건 천당이건 현재의 내가 알아볼 수 없는 일이라서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나는 이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얘기는 누가 하던지 항상 즐거이 경청한다. 종교인들의 얘기도 즐겨 듣는다. 누가 하나님의 뜻 또는 사주팔자라고 말하면 내 식대로 새겨듣고 깊이 감동한다. 마음으로 대화하는 데 종교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실정을 가르쳐주는 책이나 사람이 사는 법을 일러주는 강연을 접할 때는 다르다. 나는 치밀한 논리의 그물을 촘촘하게 치고 안테나를 날카롭게 세운다. 행여 그럴 듯한 헛소리에 속아 넘어가 허튼 일에 내 인생을 바친다면 낭패 아닌가?

몇년 전에 정토회 법륜 스님의 법문이 뮌헨에서 열린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스님의 말씀이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나는 더욱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법륜 스님은 북한이나 인도에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신다던데 이거 혹시 달변으로 꼬셔서 돈을 버는 사교는 아닐까? 나는 허리 꼿꼿히 세우고 눈을 반짝이며 부도수표를 잡아내기 위해 귀를 쫑긋하고 들었다. (미래의 희망이란 부도수표를 남발하며 피라미드 하부구조의 인력을 착취하는 수법을 통해 이 세상은 유지되고 있다.)

그날 나는 단 한 건의 부도수표도 잡아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단 한 꼬투리의 논리적인 헛점이나 비약도 발견하지 못했다. 믿음이 있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말도 전혀 없었다. 좋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믿으라는 말도 없었고, 좋은 일을 위해 오늘의 나를 희생하라는 내용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너나 잘 하세요!‘‘였다. 남 참견하지 말고, 세상 핑계 대지 말고, 지금 당장 너 하나 행복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도 ‘‘꿈에 강도에게 쫓기다가 눈 한번 뜨면 해결되는 것'‘으로 간단하게 설명되었다. 나는 모든 말씀을 그 자리에서 이해했고, 동의했다. 그리고 내 식으로 감탄했다. 와, 되게 머리 좋은 분이시구나. 이렇게 쉬운 말과 빈틈 없는 논리의 조합이라니.

나는 뮌헨의 정토회를 찾아갔다. 대여섯 명의 신도들이 일 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법륜 스님의 비디오를 틀어놓고 반야심경을 공부한다고 했다. 에그머니, 테레비 보면서 절하고 감동하는 영상법회라니. 일인우상화 같아서 기분이 찜찜했다. 게다가 난 반야심경이 뭔지도 몰랐고 불교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 뵈었던 법륜 스님에 대한 신뢰만은 확고했다. 이 분이 하시는 말씀인데 한번 듣고 보자.

영상법회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나는 감탄했다. 그저 전부 다 쉽게 이해되고 수긍되는 말씀 뿐이었고, 논리적으로 껄끄럽거나 억지로 믿어줘야 되는 부분이 어쩜 이렇게 하나도 없을까? 내가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점이 있어도 영상법회 후에 차 한잔 하면서 대화하는 동안에 다 해결되었다. 그때 나는 몇 년째 한국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살아서 한국말을 참 어눌하게 할 때였는데 거기 모인 분들 중에는 나만큼이나 한국말을 엉성하게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세상의 석학들이 날카롭고 섬세한 용어를 동원하여 토론할 수도 있는 테마를 우리는 단어가 빈약한 모국어로 떼떼거리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나는 단 하루도 미심쩍음을 안고 집에 간 적이 없었다. 내용을 확실하게 이해한 사람들에겐 복잡한 언어가 필요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식구들이 나의 변화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엄마 기분 좋은 거 보니까 오늘 불교 모임에 다녀왔구나?"
“당신 확실히 변했어. 그렇게 변하다가 죽을까 봐 겁이 나.”

남편은 법륜 스님의 법문을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아서 내 컴퓨터에 저장시켜 주었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집안일을 할 때마다 스님의 법문을 듣는데, 듣는 재미에 팔려서 갑자기 살림을 열심히 하는 부인이 되었다. 한번은 내가 긴 법문을 시리즈로 듣는 바람에 부엌 바닥까지 솔로 박박 문질러 빛나게 닦아놓았다. 남편은 너무나 감동해서 무선 해드폰을 사줬다. 이제 남편은 내가 무슨 일로 화를 내면 얼른 해드폰을 갖다가 내 머리에 씌워준다.

법륜 스님은 일 년에 한 번 뮌헨에 오셔서 법문을 하시는데 한번은 그날 마침 우리 아들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생겼다. 나는 법회를 위해서 잡채를 만들어 가고 싶었는데 그만 두어야겠다고 말했더니 남편이 두말없이 조퇴를 하고 일찍 들어와 아들의 일을 맡아주었다. 며칠 후에 내가 다른 일로 남편에게 화를 냈더니 남편이 울상을 하는 척했다.
“스님 다녀가신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벌써 약효가 떨어지냐? 내년까지 난 어떡하라고?"
“당신 성질이 이렇게 고약한데 나만 약 먹으면 뭐하냐?"
“스님 말씀이 둘 중에 한 사람만 머리에서 양동이를 벗어버려도 덜그럭덜그럭 부딪치지 않아서 안 시끄럽대매? 당신만 벗으면 되잖아?"
요런다.

작년에는 스님이 뮌헨에 안 오시는 대신 프랑크푸르트에서 주말에 2박3일로 명상 수련회를 지도하셨다. 난 명상 수련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스님을 만날 생각에 무조건 기차표를 예약했다. 그런데 가기 전에 건강이 나빠졌다. 안 가는 게 현명할 것 같아서 나는 남편의 반대를 유도하는 질문을 흘렸다.
“진통제 먹을 정도로 몸이 안 좋은데 어떡하지?"
남편의 대답이 의외로 돌아왔다.
“당신이 그렇게 기다렸는데 웬만하면 가지 그래? 주말이라 어차피 병원에도 못 가니까 집에서 아프나 거기서 아프나 마찬가지잖아?"
오오, 우리 남편은 머리가 참 좋다.

그렇게 해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묵언, 소식과 함께 하루종일 명상만 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살짜기 들여다본 귀한 경험이었다. 난 역시 의심이 많아서 도를 깨치기 어려운 타입인 것 같다. 명상을 하라면 그냥 눈 감고 명상할 것이지 어떻게든 좀 더 잘해보려고 이런저런 궁리도 하고 잔꾀도 냈다. 그리고 그것을 시시콜콜 스님께 쪽지를 통해 여쭤봤다. ‘‘눈앞이 먹통이 되는 경험을 했는데….’’ ‘‘몸은 잠자는 모드로 만들어 놓고 정신만 깨어서 나를 관찰하면…‘‘등등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창피한 소리를 진지하게 여쭈었고, 스님은 간단한 답장으로 명료한 해답을 주셨다.

나중에 생각할 때 가장 억울한 것은 내가 헛수고를 했다는 점이다. 명상 지도 프로그램에 따라 명상하는 중간중간에 동영상이 방영되었는데 거기서 동영상 속의 스님은 번번이 내가 막 궁금해 하던 점을 콕 집어서 설명해주셨다. 정말이지 족집게 도사가 따로 없었다. 나는 항상 ‘‘아이, 조금만 참을 걸 아까 괜히 쪽지 드렸다. 촉새같이…‘‘하는 세속적인 후회와 ‘‘우와, 우리 스님 머리 좋으시다.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꿰뚫고 계시는구나.‘‘하는 세속적인 감탄 사이를 오갔다.

나는 내일 또 프랑크푸르트 행 기차를 탄다. 올해도 법륜 스님의 명상수련회에 참여하는 마음이 기쁘기 그지없다. 내일 하루를 결근하기 위해서 내가 하늘같이 여기는 직장, 장애아 유치원에다 그간 얼마나 큰 공을 드렸는지 모른다. 뭣도 모르고 덤벼들었던 작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몰래 사과를 훔쳐먹던 식탐에서도, 명상이란 이름의 망상에서도 조금은 발전한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도리어 거꾸로 갈지도 모른다. 명상은 아직도 내겐 미지의 세계다. 이런저런 기대를 내려놓고 그냥 조용히 ‘‘다만 할 뿐이다.‘‘를 되뇌이며 짐을 싼다.


링크: 식탐의 추억

법륜스님 독일 순회법회
*프랑크푸르트 법회*

일시: 11월29일(일) / 오후6시30분
장소: 프랑크푸르트 정토법당 (Friedrich-Wilhelm-von-Steuben Str. 2, 60487 Frankfurt / Hausen)
문의: 069-7167 1990

*뮌헨법회*
일시: 11월30일 (월) / 오후6시30분
장소: Züricher Str. 80, 81476 München (Alten- u. Service-Zentrum)
문의: 089-7852474

베를린법회:
일시: 12월1일 (화) / 오후 6시 30분
장소: Wulffstrasse 6, 12165 Berlin-Steglitz (Buddhistische Gesellschaft Berlin e.V.)
문의: 030-9798 3216, jungto.berlin@gmail.com
행사안내: http://blog.naver.com/jtberlin

링크: 법륜 스님의 명상 수련회와 독일 순회 법회 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