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동생은 좀 괴짜인데 통도 크고 손도 큰 사장님이다. 회사는 독일에 있고 집은 스페인에 있어서 두 나라를 비행기로 왔다갔다하고 난방과 냉방도 쎄게 하는 “퇴폐적”인 사람이다. (그래도 우리는 친하다) 스페인의 쪼끄만 섬에 살면서 자동차는 또 몇 대나 된다구. 아이도 없이 부부만 단촐하게 사는 집은 왜 또 그렇게 큰지. “내게 말을 공간들”이란 책에서 나는 내 친구의 일이라며 스페인에 집을 설계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는데 사실은 이 동생 얘기다. 얘는 나보다 더 어려서 독일에 온 탓에 한국말을 거의 다 잊어버려서 내 책을 못 읽을 줄 알고 사실대로 막 썼는데 나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도 한번 읽어보겠다며 책을 보내달라고 해서 나는 시껍먹었다.

독일에서 사춘기를 꼬박 다 보낸 내 동생이 거의 1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에 갔을 때의 일화다.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이 뽀글뽀글한 파마 머리를 하고 다녔던 80년대의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번잡한 거리를 걸어 가는데 맞은 편에서 오던 남자가 갑자기 손을 뻗어 동생의 가슴을 주무르고 지나가더란다. 얘는 순간적으로 멈춰서서 냅다 고함을 질렀다.
“야, 이 새끼야. 너 왜 남의 젖을 만지니?“
한국말이 서툴어 어휘가 빈약하니 욕도 심플하게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벌써 저만치 가던 양복차림의 남자는 당황해서 되려 큰소리를 냈다.
“아니, 점잖은 사람보고 이 새끼라니?“
“남의 젖을 만지니까 새끼지, 점잖은 사람이 남의 젖을 만지니?“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에 무대화장을 한 아가씨는 점잖은 사람들이 안 쓰는 용어를 써가며 거침 없이 대꾸했다. 어려서 독일에 간 우리 형제들이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공수받아 읽은 책이 뒷골목의 은어로 쓰여진 “어둠의 자식들”이어서 우리는 그 책을 교과서 삼아 모국어를 연마했는데, 그 표시도 좀 났을 것이다. 동생의 얘기를 들은 우리 부모님은 “저노무 가수나 한국에서 살다간 칼 맞겠소. 독일에서 결혼하겠다 그러면 말리지 맙시다.“하고 꿍꿍이를 맞추셨다.

나도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 시각적 또는 물리적 성추행을 한국에서도 겪었고 독일에서도 겪었다. 그러나 나는 내 동생처럼 순발력과 용기가 없어서 조용히 당하고는 두고두고 진저리를 쳤다. 첫 경험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꽤 오랫동안 맘고생을 했다. 이제 손주 볼 나이가 된 오늘까지도 당시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내가 느꼈던 감정까지도 절절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그런 사건들은 내 마음 속에 제법 깊은 상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나는 저런 정도의 성추행은 도리어 약과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족을 비롯하여 가까운 어른들에게서 성추행 또는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도대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견디고 있는 어린이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동서를 막론하고 많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성교육의 첫째 목적은 성추행, 성폭행으로부터 유년기 자녀들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그런 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림책을 통해서 미리 알려주고 차조심, 불조심 교육과 마찬가지로 반복해서 대화를 유도함으로써 그런 일에 대한 언어를 준비해주었다. 사람은 어떤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있어야만 막상 그런 일에 부닥쳤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아챌 수 있고, 그럼으로써 피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설령 불상사를 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사후에라도 부모에게 의연하게 알림으로써 혼자서 죄의식을 키우거나 마음의 상처로 묻어두는 이중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준비는 말로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친절한 아저씨와 재밌게 놀다가도 내 마음에 내키지 않는 놀이가 시작되면 단호하게 “싫어”라고 말하고 엄마에게 달려올 수 있는 용기, 암만 친한 이웃집 아저씨라도 내가 안기기 싫으면 거부할 수 있는 용기,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우호적인 분위기를 깨는 한이 있어도 내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일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는 단순히 설교를 통해서 길러지는 게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기 때부터 의견을 존중해주고 “네게 있어선 너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다. 너의 기분과 감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너를 믿어라”라는 교육이 뒷받침되어야만 한다.

 놀이터에 혼자 놀러와 배회하는 어른들은 경계의 대상이다. (이 사진의 모델은 제외^^)


그러나 미친개가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미친개를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친개에게 물렸으면 신속하게 병원에 가서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하고 광견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아이들을 물지 못하도록 동네 사람들이 합심해서 미친개를 때려잡아야 한다. 미친개에게 물리고도 몸을 더렵혔다는 수치심으로 혼자서 끙끙대며 마음의 상처를 키우는 것은 물린 사실 만큼이나, 아니 물린 사실보다 더 억울한 일이다. 그리고 그걸 믿고 미친개는 활개를 치며 돌아다닌다.

성에 대해 개방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사회일수록 이런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경험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이웃집 여자 아이가 아침에 학교에 가다가 나쁜 놈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담임선생님과 학부모 대표는 그 아이와 부모의 동의를 얻어 이 사실을 학급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적극적인 성교육의 기회로 삼았다. 피해자 아이는 비록 피해는 당했지만 처신을 잘한 걸로 칭찬을 받았다. 남자가 처음에 수작을 걸었을 때 무시하고 앞만 보며 간 점, 끌려 갈 때 싫다고 말한 점에 대해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에 누구에게라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나가는 행인에게 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할 것, 행인들이 가족이라고 오해하지 않도록 폭행범에게 꼬박꼬박 존대말을 쓸 것을 급우들이 다같이 배웠다.

사건 후에 아들은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영문을 묻는 내게 아들은 “성폭행 당한 친구가 혼자서 학교 가는 게 무섭대. 그래서 내가 집으로 데리러 가는 거야.“라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 여자 아이가 역시 평이한 말투로 “나 성폭행 당한 이후로 혼자서 학교에 가는 게 무서워. 너 우리 집에 올 수 있니?” 하고 묻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피해자 아이는 그 후 일 년 정도 혼자서 학교 다니기를 불안해 했고 우리 아들을 비롯한 꼬마 친구들이 매일 집으로 데리러 가고 바래다주었다. 아이들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친구의 가방을 들어다 주는 일처럼 당연하게 여겼고 도움을 받은 아이도 고마움은 있었지만 수치심은 없었다.

성교육의 둘째 목적은 미혼 자녀들의 안전 섹스라 볼 수 있다. 자신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성병과 임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콘돔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쪼잔한 행동이 아니라 쿨한 행동이란 걸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청소년 자녀들에게 입으로만 가르치는 교육만큼 효과 없는 교육도 없다는 것을 익히 아는 바, 우리 부부는 콘돔을 예쁜 상자에 담아서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놔두고 엄마 아빠도 피임을 위해 콘돔을 애용한다는 표시를 냈다. 국 끓일 때 소금 넣듯이, 자동차 탈 때 안전벨트 매듯이, 섹스할 때 콘돔은 필수라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날렸다.

딸이 15세였을 때 하루는 나 보고 콘돔 사용법을 실제로 가르쳐달라고 했다. 자기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기 전에 미리 알아두어야겠다는 것이다. 나는 기회다 싶어서 당근을 가져와서 호기 있게 콘돔 봉지를 뜯어보였다. 그러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나는 평소에 “소녀들도 콘돔 사용법을 익혀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고 쿨한 척은 했지만 나도 콘돔은 그날 처음 만져본 거였다. 당근이 자꾸 쑥쑥 빠지자 딸은 불안한 얼굴로 “임신해서 인생 망치기 전에 아무래도 피임약과 콘돔을 같이 써야겠어.“하고 말했다. 나는 임신하면 인생을 망친다는 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람의 인생이 단 한번의 실수로 망가지는 존재일까? 나는 딸에게 말했다. “네 인생을 단번에 망칠 수 있는 건 없어. 임신해도 인생 망가지는 거 아니야. 아기 키우면서 공부하면 돼. 엄마 아빠도 너를 도와줄 거야.” 딸은 말도 안 된다고, 무슨 엄마가 이러냐고 펄펄 뛰었다. 미국에 비해 성에 개방적인 독일에서도 소녀가 임신하면 동네방네 구설수에 오른다.

성교육을 순결교육과 혼동하여 무조건 막거나 죄의식을 주는 건 어차피 효과도 없거니와 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바, 성교육의 세번째 목적은 성에 대해 건전하고도 긍정적인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되겠다. 그것은 나중에 안정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입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모범? 시범? 어떻게? 애들 앞에서? 아니,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모범이 아니라 이런 모범이요. “치열하게 부부 싸움을 한다. 춤추러 갈 시간이 되니까 슬금슬금 궁색하게 화해를 한다. 어정쩡하게 손 잡고 나간다. 그날 밤, 흠뻑 땀에 젖어 돌아와서는 그윽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며 괜히 코를 부비부비한다. 내게 한없이 익숙한 상대의 육체를 귀하게 바라보는 그윽한 눈길도 섹스다.”


에필로그 1

가족에게 이런 글을 쓴다고 얘기했더니 딸이 자기가 당한 성추행의 경험을 얘기해줬다. 클럽에서 춤추는데 뒤에서 누가 엉덩이를 때리더란다. 뒤돌아 봤더니 남자 둘이서 실실 웃으며 손가락으로 서로 상대방을 가리키고 있었다. 딸은 말없이 두 놈을 차례로 쪼인트 깠다. 새로 산 뾰족구두로. 엄, 내 딸 지 이모 닮았네. 귀신처럼 방 어지르는 거 보고 난 진작에 알아봤지.

에필로그 2

지금 생각이 났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20대 중반에 나 혼자 유럽여행을 했을 때의 일이다. 남유럽 해변에서 비키니 바람으로 누워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슬쩍 내 가슴을 만지고 지나갔다. 나는 옆어 벗어두었던 샌들을 집어들고 그 남자의 맨 종아리를 마구 패면서 바락바락 신경질을 부렸다. 남자는 손을 비비며 비는 시늉을 하면서 도망갔다.

그럼 나도 내 동생이나 내 딸과 같은 꽈? 아니다. 거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내 동생과 내 딸은 남이 보고 있는 앞에서 행동했고 나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할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란 불의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아니라 도리어 나를 부끄럽게 만들어 위축시키는 존재인가 보다. 여성에게 상처를 입히는 진정한 범인은 사회, 즉 경박한 입을 가진 너와 나로 이루어진 사회인가 보다.


(레몬트리 12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들이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