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남편과 함께 장을 보러 갔을 때 이제부터는 유기농 우유를 사자고 제가 제안했습니다. 가장 싼 보통 우유가 1리터에 48센트, 유기농 우유는 89센트인데

우리 가정 정도의 수입이면 유기농가를 장려하기 위하여 이 정도의 추가 지출을 감수해도 될 것 같아서요. 남편은 반대하진 않았지만 마누라가 갑자기 헤퍼지나 싶은지 별로 공감하지도 않는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까 이 유기농 우유가 이웃나라인 오스트리아 산이더군요. 에구, 뮌헨 주변에 농가가 쌔고 쌨는데 아무리 유기농이라지만 수입 우유까지 먹을 일은 없잖아요. 운송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와 환경 파괴에 민감한 남편의 눈치가 보여서 제가 지레 포기하려고 하는데 남편 가라사대
“그래도 우린 계속해서 유기농 우유 사자. 오스트리아는 멀지 않으니까. 유기농가가 아닌 보통 농가에선 남미산 메주콩을 사료로 쓰는데, 그 콩은 아마존 정글을 벌목해서 개간한 땅에서 경작하는 거야. 유기농 우유를 사는 게 우리가 여기 앉아서 아마존 정글을 지키는 길이야.”

맞아요,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입하는 메주콩은 대부분(어쩌면 전부) 유전자 조작한 콩이란 말도 들었어요. 유전자 조작한 콩을 먹은 소가 만드는 우유를 먹어서 우리의 건강이 어떻게 될까봐 걱정하는 게 아니어요. 유전자 조작한 씨앗을 사야만 하는 농부는 자기가 농사를 짓고도 철철이 씨앗의 특허 라이센스를 바치는 소작농으로 전락하기 때문이지요.

생각이 발전해서 오늘 아침에는 우리나라 농촌에 대해 대화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 수입의존율이 여느 이웃나라보다 높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어서요. 공장 돌려서 번 돈으로 식량을 사오는 게 더 이익이라는 생각으로 농경을 경시하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나 봐요. 유럽에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농가를 장려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국가적 자급자족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국민이 먹을 식량을 나라 안에서 확보하는 일은 국가의 존립이 달린 문제거든요. 당장 먹을 것이 급한 유사시엔 돈도 휴지조각이고 팔려고 만든 자동차도 고철덩어리니까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원래 안목이 짧습니다. 오로지 다음 선거만 안중에 있기 때문에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에만 급급할 뿐이지요. 유난히 철학이 빈곤한 정부가 나랏살림을 맡은 시기엔 더욱 그렇습니다. 실속은 저리 가라고 숫자 불리기에만 혈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뽑아놓은 정부만 탓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농작물 수입 개방으로 값싼 식량이 밀려들어오는 오늘날 우리의 농촌을 지킬 수 있는 힘은 소비자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환경과 땅을 지키는 소규모 유기농가의 물건을 우리가 사주면 됩니다. 우리 개인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 환경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고, 우리의 곡식 창고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좀 비싸다구요? 솔직히 말해서 요즘 우리 너무 많이 먹지 않나요?

PS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요즘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아무 것도 못 쓰고 있어요. 속으로 좀 익혔다 제대로 쓰고 싶은 욕심도 있고, 또 무엇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기도 하고 그래요. 그러다가 아예 잊어버릴까봐 메모 형식으로 간단히 남깁니다. 뮌헨엔 겨울비가 오다가 해가 쨍하게 나다가 그럽니다.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