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다니는 댄스학원에서 지난 일요일 저녁에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었다. 대형 트리가 세워진 홀에선 송진 냄새와 양초 타는 냄새,

게피와 오렌지를 넣고 달콤하게 끓인 글뤼와인의 냄새와 끈적한 과자 냄새가 어울려 전형적인 독일 크리스마스의 향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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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친구들과 얘기도 하고 춤도 추며 흥겹게 놀았다. 친하게 지내는 젊은 커플이 크리스마스 과자를 열 종류나 구웠다고 해서 나는 아주 부러웠다. 난 장애아 유치원에서 퇴근하면 그냥 녹아떨어지는 바람에 올해는 과자를 하나도 못 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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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도 샀다. 남편이 “복권은 많이 사야 당첨된다”며 넉넉하게 샀다. 일등상은 겹날개가 달린 구식 비행기를 타고 조종사 옆자리에 앉아서 알프스의 백조성을 구경하는 상품권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곁들인 생나무 트리를 타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왜냐면 해마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트리를 사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딸이랑 싱갱이를 하는데, 이번에 행여 상품으로 타게 되면 모든 문제가 우아하게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원 원장의 어린 자녀들이 복권을 팔았는데 마지막 두 장이 남았다고 우리에게 가지고 왔다. 그 아이들을 귀여워하는 우리는 “이것이 행운의 복권이 분명하지?“하고 다짐을 받고 사줬다.

드디어 복권 추첨의 시간이 되었다. 나는 친한 커플과 함께 제일 앞에 서서 서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타가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겐 요즘 막연하게 믿기는 구석이 있었다. 올해 나는 유치원 일에 적응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으므로, 즉 보상에 비해 공덕을 많이 쌓았으므로 행운의 굳은자가 많이 남았을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다. 으럇차차, 이게 꿈이냐 생시냐? 크리스마스 트리가 걸린 번호를 부르는 원장의 목소리에 남편 손에 있는 복권이 파르르 떨며 공명했다. 유삐! 나는 골 넣은 축구선수처럼 두 팔을 치켜들고 팔짝팔짝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 상품을 받으러 앞에 나갔다. 학원 원장이 축하한다며 소감을 물었다. 금방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것을 다 봤기 때문에 특별히 감동적인 멘트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사실 올해는 어떡하면 트리를 생략할 수 있을까 머리를 쓰는 중이었다.“는 남편의 말에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원장은 “네 딸이 좋아하겠네.” 상품을 건내줬다. 우리가 이제까지 샀던 어떤 트리보다 크고 복스럽게 잘 생긴 생나무와 올해 유행이라는 주황색으로 통일된 장식품 세트를 보고 나는 정말 행복했다.

으악, 조금 있다가 더한 일이 일어났다. 2등상 번호를 부르는데 그 숫자가 이번에는 내 손에서 반짝이는 게 아닌가? 아이팟이란다. 사람들이 열띤 박수를 보내며 부러워하는 틈을 타서 난 얼른 남편 귀에 대고 물어봤다.
“아이팟이 엠피쓰리야?”
“그래.”
“비싸?”
“그럴 걸.”
이번에는 내가 나가서 상품을 받아왔다. 원장은 이번에도 “네 딸이 좋아하겠네.“하면서 상품을 줬다. 우리가 괴팍한 부모라고 동네에 소문 났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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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편에게 속삭였다.
“복권 놀이는 다 같이 즐겁자고 하는 것이고 상품 종류가 많은 것도 아닌데 한 집에서 두 개나 타가는 건 부도덕하지? 그지?”
“부도덕할 것까지야 없지만 누구 주고 싶으면 당신 맘대로 해.”
“아이팟이랑 나무 중에서 뭘 가질까?”

나는 정말 한참 망설였다. 심정적으로는 내가 간절히 바라던 나무가 더 땡겼지만 혹시 딸이 나중에 아이팟을 남 줬다는 소리를 들으면 난리를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와 함께 나무에 눈독을 들였던 젊은 커플에게 트리를 줬다. 펄쩍 뛰며 사양하길래 “우린 하나만 가져가려고 하는데 그럼 니네가 아이팟 가질래?” 그랬더니 그들은 그제서야 트리를 받으며 참 좋아했다. 그 대신 자기네가 구운 열 가지 과자를 갖다준다고 했다. 그래서 난 더 좋아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물었다.
“딸애가 이번에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집하면 어떡하지?”
“사주지 뭐. 아이팟보다 쌀 텐데.”

이튿날 이야기를 들은 딸애는 빽빽 소리를 질렀다. 한편으론 트리를 남 줬다고 욕하고 또 한편으론 자기가 아이팟을 가지겠다고 떠들었다. 남편은 올해는 생나무를 사는 대신에 우리 화장실 옆에 있는 고무나무에 장식을 달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서 딸애의 속을 긁었고, 나는 아이팟은 유치원 선생님이 될 내가 가져야 한다며 딸애의 애간장을 태웠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온 가족이 하루종일 불평과 불만과 암투와 사투를 벌인 덕분에 3일의 공휴일에 대비하는 대형 장보기도 무사히 마쳤고, 집안 청소도 대략 마쳤다. 돈이 궁한 딸이 시간이 궁한 엄마를 상대로 크리스마스 특별 청소비를 비밀리에 협상한 덕분에 모든 일이 비교적 순조롭게 끝났다.

문제는 또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이번에도 딸이 이겨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긴 했는데, 아가씨가 승부에만 욕심이 있고 실현에는 관심이 없는 탓인지 트리 세우고 장식하는 걸 깜빡 잊은 것이다. 우리 가정의 크리스마스 이브 음식인 왕비 파스테테(크루아상 처럼 바삭하게 구운 빵과자 안에 닭고기 요리를 채워놓고 초록색 콩이랑 밥이랑 먹는 요리)를 차려놓고 보니 아직도 나무는 망사에 싸인 채 발코니에서 찬바람을 맞고 있었다. 식구들은 트리고 뭐고 식기 전에 우선 먹고 보자고 했고, 나는 그럴 거면 애꿎은 나무는 대체 뭣하러 샀느냐고 짜증을 냈다. 결국 나무를 들여와 대강 세워놓은 후에 저녁을 먹었다. 나는 나대로 입이 부었고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나 때문에 입이 부었다. 그런데 올해의 왕비 파스테테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거 먹는 틈에 모두들 기분이 사르르 다 풀려버렸다.

남자들이 나가서 부엌을 정리하는 동안 나와 딸은 화기애애하게 트리를 장식했다. 딸은 나중에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크리스마스를 쇠러 집에 오면 그때도 크리스마스 트리를 꼭 장만해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고물고물한 아가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신바람이 나서 “트리 뿐이냐? 열 가지 과자도 구워야지. 그리고 너희들 키울 때는 안 했지만 완전히 독일 전통대로 할 테야.“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독일에선 전통적으로 꼭 24일에 전나무를 집안으로 들인다. 부모는 거실 문을 굳게 닫고 아이들 몰래 트리를 장식하고 예수님의 탄생 신화를 구현하는 인형을 꺼내놓는다. 저녁이 되면 그날 내내 굳게 닫혔던 거실 문이 활짤 열리고 아이들은 그제서야 촛불이 켜진 트리를 감상하고 온 가족이 함께 노래한 후에 트리 밑에 놓인 선물을 받게 된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 시절에 문틈으로 반짝이는 트리를 몰래 엿보는 맛이 황홀경이었다고 곧잘 회상하곤 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가정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는 약식이다. 우리는 노래하는 대신에 음악을 듣는다. 올해는 남편이 하필이면 클레츠머(유대 음악과 집시 음악과 재즈의 혼합)를 틀어서 나에게 핀잔을 받았다. 이왕이면 예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듣는 게 좋잖아? 각자 준비한 선물 외에도 그간 크리스마스를 기해 받은 소포와 친구들에게서 받은 자잘한 선물들을 전부 모았다가 이날 트리 밑에 쌓아놓고 하나씩 풀어보며 기뻐했다. 올해는 선물이 예년보다 푸짐하게 쌓였다. 내가 유치원에서 일하면서부터 명절에 작은 선물을 주고 받는 (보편적인) 사회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 사이에선 선물을 생략한지 오래되었다. 그 대신 남편은 꼭 가지고 싶었던 부엌 살림을 한 가지 사고, 평소엔 살림 늘어난다고 잔소리하는 나도 이날만큼은 잘 샀다고 남편을 칭찬해준다.

아이팟은 딸에게로 돌아갔다. 딸은 그동안 정말 가지고 싶었는데 엄마 아빠가 원칙상 절대로 안 사주는 품목이라는 걸 알고 감히 바라지도 못했다며 감격해했다. (명품은 자기가 돈 벌어서 사야 함.)

그런데 올해는 아이팟 때문에 우리 부부에겐 도리어 출혈이 컸다. 엊그제 내가 딸에게 “아이팟을 올해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슬쩍 흘렸더니 “어떻게 공짜로 받은 걸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때우려고 하느냐, 아이팟은 아이팟이고 선물은 선물이다”는 반응이 슬쩍 흘러나왔다. 내가 남편에게 그렇게 전했더니 “그럼 딸에 비해서 아들 선물이 가격상 약소하다.“는 태클이 들어왔다. 갑자기 뭘 더 사러 나갈 수도 없고 아들은 워낙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이라 지금 준비한 것 이상의 아이디어도 떠오르지도 않았다. 나는 할 수 없이 카드를 만들어서 “네가 일전에 산 핸드폰에 엄마 아빠가 100유로 보탬.“이라고 썼다. (그냥 다 사준다고 썼으면 우아했겠지만 그러면 또 딸이랑 형평성이 맞지가 않아요. 게다가 그 물건이 명품이라서 자기가 번 돈으로 사는 게 맞걸랑요.) 돈 쓸 데가 없어서 돈이 별로 아쉽지 않은 아들은 덤으로 받은 돈에 별로 감동하지도 않았다.

차라리 트리를 택하고 아이팟을 남에게 줬더라면 우리 돈이 덜 들었을 터인디… 나무 사는 값 더하기 아들에게 준 100유로는 굳었을 터인디… 자식들과 우리 부부를 갈라서 생각하면 우리 부부가 손해를 본 셈이고, 자식들과 우리 부부를 한통속에 넣어 생각하면 우리 가족이 아이팟 더하기 열가지 종류 과자만큼 이익을 본 셈이다. 유삐!

행운의 성탄절을 맞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합니다. 제가 구운 건 아니지만 과자 드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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