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 재앙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사대강 공사가 자연에 큰 폐해를 가져오리라는 사실은 사대강 구간 군데군데 설치되는 보의 숫자와 크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대강 공사의 구간은 634km이고, 거기엔 물을 막아 가두는 역할을 하는 보가 16개 계획되어 있는데, 가장 높은 보(낙동강의 함안보)는 높이 13.2m에 이르고, 가장 긴 보(낙동강의 강정보)는 무려 길이 953m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크기의 보는 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6개 중 10개는 높이가 10m 이상이고 나머지는 5m 안팎이라고 하니 전부 대형보이다. 보통 이런 대형보는 수심 4m 이상을 확보해야하는 뱃길공사에서나 쓰인다.
세계 최고의 수로교통을 자랑하는 라인강에서 뱃길을 확보하기 위해 물길을 막아놓은 갑문도 그 정도 크기인데,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라인강에서 배가 다닐 수 있는 구간이 사대강 공사 구간보다 240 km 나 더 긴 883km인데도 갑문의 숫자는 사대강 공사보다 4 개 적은 12개라는 사실이다. (보와 갑문은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물길을 막아놓는다는 의미에서 같은 성격의 구조물이다. 단 갑문에는 배가 오르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계 최고의 수로인 라인강에 왜 갑문이 12개밖에 없을까? 사실은 더 많이 계획했다가 환경 파괴가 너무 커서 부랴부랴 계획을 바꾼 것이다. 갑문으로 물길을 막은 라인강 주변의 지하수가 하강하고 지하수의 질이 저하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2차대전 직후, 아직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이 없던 독일 정부에서 프랑스의 압력 때문에 망설이는 걸 독일의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데모해서 갑문을 줄이는 수정안을 관철시켰다. (라인강 상류에 갑문을 줄줄이 지어 층층강으로 개량하여 전천후로 큰 배도 다닐 수 있게 하고 수력발전도 도모하는 이 라인강 운하공사는 라인강 건너편에 위치한 프랑스의 작품이다. 1차대전의 발발국이자 패전국인 독일은 전쟁배상으로서 라인강의 운하공사를 강요당했다.)
라인강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흐르는 강물을 막는다는 것은 자연에 가하는 커다란 수술이다. 그리고 잘못된 수술이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듯 자연도 죽일 수 있다. 물을 막아놓으면 하천의 자연적 정화기능이 훼손된다. 그러면 강물의 수질만 나빠지는 게 아니라 강변 지하수의 질도 나빠지고, 그뿐 아니라 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쓸려내려와야 할 퇴적물이 갇히는 바람에 퇴적층의 자연적 순환이 중단된다. 그래서 라인강의 마지막 갑문인 이페츠하임 아래쪽에는 강바닥이 패이는 현상이 극심하다.
강바닥이 패이면 그와 함께 강 주변의 지하수면이 내려가서 강변 토지의 사막화 현상이 일어나고 독일인의 식수원인 지하수가 고갈된다. 그래서 이페츠하임 갑문 아래쪽 강바닥에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자갈을 들이붓고 있는데, 사실은 대안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하류 쪽으로 물을 막는 보를 하나 더 세우면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이페츠하임에서 강바닥이 패이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새로 지은 보 아래로 옮아갈 뿐이고, 그런 식으로 해결하려 들다가는 바다로 나갈 때까지 하류 쪽으로 보를 계속해서 세워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해서 하류까지 보가 건설된다면, 라인강이 전 구간에 걸쳐 물의 흐름이 막혀 수질이 나빠지고 라인강변에 사는 5천만 국민의 식수원이 파괴되는 대재앙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라인강의 갑문 건설은 이페츠하임을 기점으로 마감하고, 마지막 갑문이 있는 그 곳에 끊임 없이, 영원히 자갈을 퍼부어 강바닥의 침식에 대응하게 된 것이다. 자연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 수술이라도 잘못되면 이렇게 피해가 무섭게 확산되고 증폭된다.
그런 재앙을 미리 막으려고 요즘 도나우강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보의 건설을 막는 데모를 극성스레 벌이고 있다. 라인-마인-도나우 운하의 개통 이후로 도나우 강에도 더욱 큰 배가 다니도록 한다는 핑계로 건설회사에서는 보를 건설하려는 로비활동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도나우강에 보를 건설하는 것이 2002년 이후 환경보호의 차원에서 연방법으로 금지되었는데도 로비 세력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건설회사에서 로비 한번 잘해서 보 하나만 지어놓으면 그 하류 쪽으로 계속해서 줄줄이 보를 지어야하는 후속공사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에 강변 주민들은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 감시하고 대응하고 있다. 이때 주민의 편에 서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힘을 실어주는 이들은 환경단체와 녹색당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시장, 수로청 공무원, 교육 공무원 등 양심 있는 정부 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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