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연대 회원이 쓴 글입니다. 4대강사업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독일 문서를 번역하는 인터넷 소모임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엿보실 수 있을 거에요. 재미있어서 소개해요.


4대강 준설의 부작용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역행침식”이라는 용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역행침식이란 강 본류의 수위가 준설이나 기타의 이유로 낮아지는 경우, 본류로 흘러드는 지천 수위와의 낙차가 커져서 물이 더 빠르고 세차게 떨어지면서 강바닥과 강기슭 끊임없이 저절로 무너져 내리고, 이렇게 시작된 침식이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계속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는 번역연대가 작년 11월 헨리히프라이제 박사가 추적60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지적한 Rückschreitende Erosion 현상, 영어로는 retrogressive erosion 이라 부르는 현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회원들이 상당한 논의를 거쳐 정한 용어다. 논의가 필요했던 이유는 “두부침식”이라는 업계(?) 전문용어 때문이었다. 그리고 번역연대는 감히 “역행침식”을 고수했다. 그리고 “두부침식”을 괄호 안에 넣어주는 것도 사실 잊지 않았다.

최근에 우효섭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 겸 수자원학회 회장이 “역행침식”이라는 용어는 틀렸다, “두부침식”이 맞다, 라고 무지몽매한 대중을 계몽하시느라 바쁘고, 정부 웹사이트도 이에 신이 나서 맞장구치며 마치 역행침식의 번역오류를 지적하면 엄연히 진행중인 역행침식 현상 자체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양 지적질에 열심인데, 김빼서 미안하지만 몰라서 오역을 한 게 아니었다.

우효섭 연구원은 두부침식이 맞는 용어고 그 근거로 두부침식이 영어로 headcut 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가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가 headcut 외에도 영어로 headward erosion(직역하면 “물머리(상류)방향 침식”), retrogressive erosion(“역행침식”), backward erosion(“역방향/후퇴침식”) 등이 엄연히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뒤의 단어들을 구글에서 검색해 보시라. head cut이라는 용어에 비해서도 얼마나 많은 정보가 뜨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굳이 “head”라는 말을 번역에 반영하고 싶다 하더라도, 엄밀히 말해 두부침식이 아니라 두부”방향” 침식, 상류방향 침식, 물머리방향 침식이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 head라는 말 자체가 물이 발원하는 곳을 머리로 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향을 가리키는-ward라는 말이 head 뒤에 붙어 headward erosion이 되는 것이다. 중국에 계신 번역연대 회원은 중국어로는 “향원向源침식”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시기도 했다. 이 역시 한자에 담긴 의미 그대로 물 발원지를 향해 진행되는 침식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조금 더 꼼꼼함과 탐구심을 발휘해본다면, headcut라는 용어를 구글로 검색했을 때 “upvalley migration of headcuts”란 표현을 상당 수 발견하게 되는데, 내 판단으로는 바로 이게 retrogressive erosion 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headcut 자체는 강 바닥에 높이 차이가 생기면서 물이 폭포처럼 수직으로 떨어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것이 upvally migration 즉 “계곡 상류쪽으로 이동”하는 현상까지 포함한 것이 역행침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부침식이냐 역행침식이냐 하는 것은 의미없는 논쟁이 된다. 준설 등으로 수위차이가 생기면서 물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두부침식이고, 그런 현상이 상류쪽으로 지속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역행침식일 테니 말이다. 즉 두부침식은 역행침식에 포함되는 개념, 다시 말해 역행침식은 두부침식을 아우르는 더 광범위한 개념이 된다.

내 추측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전문용어는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성역이냐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널리 정착된 용어를 가벼이 바꾸는 일은 해서는 안 될 일일 것이다. 그러나 “두부침식”이라는 용어는 국민 모두가 아는 용어라 할 수 없고, 들어도 쉽게 이해가 가는 용어도 아니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두부침식이 뭐겠냐고 물어보라. 몇 명이나 대답할런지? 나 역시 학창시절 지리 과목을 좋아해서 열심히 공부했었지만 두부침식이라는 말은 기억에 없고, 번역연대 회원들이 토론을 위해 그 용어를 꺼냈을 때도 먹는 두부만 생각날 뿐(-_-;) 무슨 소린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어사전을 뒤지니 頭部侵食 tōbushinshoku, 즉 두부침식이 떡 하니 나온다. 즉 일어 지리용어를 그대로 베낀 용어였던 것이다.(“범람원”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로 일어에서 온 용어다. 사실 “홍수터”가 훨씬 알아듣기 좋지 않은가.) **

물어보자. 어려운 말 조금 쉽게 바꿔 쓰면 큰일나는가? 영어로도 2-3 종류의 표현으로 유연하게 쓰이고 있는 용어를, 한국어로는 꼭 일본식 용어인 “두부침식” 하나만을 고집해야겠다니, 앞뒤가 꽉 막힌 것이거나, 전문용어는 전문가 아니면 건드리지 말라는, 마치 용어에 대한 소유권을 보유하고 있는 듯한 엘리트의식에 사로잡혀 있거나, 아니면 사람들을 무지 속에 가둬놓고 아는 사람끼리 편하게 뚝딱뚝딱(삽질)하려는 저의가 있거나, 그중 하나다. 어느 것이든 한심하고 불쾌하다. 전문가 말고는 아무도 모를 용어를 고집하면 정부는 좋긴 좋을 거다. 시민들이 모를 수록 정책을 밀어부치는 데 딴지가 적을 것이니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에게 지리를 필수로 수년간 가르치는 의의는, 그냥 교양 차원에서 알아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물론 지식습득 그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이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보다 더 큰 의의는 바로 요즘 같은 때, 즉 정부의 황당무계한 정책이 멀쩡한 강에 역행침식 같은 파괴적인 현상을 일으킬 때, 그런 게 왜 발생하는지 이해하고 그런 결과를 일으키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시민의 책임을 다 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지리용어를 조금이라도 더 알기 쉽게 하는 작업은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일일 것이다.

“족보”에도 없는 “역행침식”이라는 용어가 정부와 수자원학회장과 기타 친정부 관변학자들의 열띤 계몽에도 불구하고 (용어로 트집잡는 자들이 전부 4대강사업 찬성자인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마른 장작에 불붙듯 언론과 일반시민 사이에 확산, 수용, 정착되어 간 것은, 필시 두부침식보다 다소 이해하기 쉬운, 문제의 본질을 좀 더 잘 포착한, 그리고 그런 문제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이들의 절박한 심정이 담긴 용어였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리고 4대강 공사를 궁극적으로 저지하고 심판할 용어 또한 두부침식이 아니라 역행침식이 될 것이다. 번역은 때때로 이렇게 비실비실하던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게 하기도 한다.

원문출처: 협로탐험
올해 장마끝의 역행침식 현장: 김진애 의원 조사(뷰스앤뉴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