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던 지난 5월, 나는 집으로 배달되어온 “교포신문”을 펼쳐보다가 놀라서 신문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럴 수가 있나?

설마하는 마음으로 전날 도착한 “우리신문”을 열어서 샅샅이 훑어보았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베를린 데모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독일에서 발간되는 한인신문들은 이명박 대통령 내외분의 독일 방문을 몇 주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신문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빛나는 총천연색 대형사진들은 독일에 사는 교포들이 얼마나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고 기뻐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의 전부였을까? 아니다. 베를린에서는 교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반대하는 데모를 벌였으나 그 사실은 어느 한인신문에도 언급되지 않았다. 한인사회의 주요언론인 두 신문사가 교포들에게 보여준 것은 반쪽짜리 진실, 아니 진실의 왜곡이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교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한인신문을 구독하는 독자들을 이렇게 감쪽같이 속이다니, 한국에까지 퍼져나간 사실을 독일에 사는 독자들만 모르게 만들다니, 이런 것도 신문이라고 들고 있는 내 손이 분해서 부들부들 떨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일 대통령과 만나는 바로 그 시간에 베를린 대통령궁 밖에서는 50명의 한인들이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이유는 “녹색성장” 분야의 협력을 목적으로 독일을 방문하는 한국 대통령에게, 4대강사업과 원자력 확산정책을 반대한다는 해외교포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서였다.

오늘날 독일에선 이전에 강에 설치했던 인공구조물을 철거하고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고, 원자력발전소 7개의 가동을 하루 아침에 한꺼번에 “일단 정지”시키고 원자력 발전소 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국민과 정부가 단합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자연하천을 인공으로 개조하는 4대강사업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정식으로(offiziell) 녹색성장에 속한다. 녹색성장의 개념이 완전히 정반대인 두 나라의 정상들이 만나서 녹색성장의 협력을 의논하겠다니, 두 나라 사정을 다 아는 우리 교포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해야 하나?

교포들도 눈이 있고 귀가 있을진대 민주시민으로서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어서 베를린 교민들이 피켓을 들었단다. 그런 사실을 쉬쉬하고 감춘 재독한인 신문은 언론으로서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이번에 유일하게 제대로 제 기능을 했던 동포 언론은 인터넷 사이트인 “베를린리포트”(www.berlinreport.com{.moz-txt-link-abbreviated})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일 방문을 전후하여 “베를린리포트”는 후끈 달아있었다. 평범한 주부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한 아이디가 글을 올렸다.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나가시는 자리에 피켓 하나 들고 서서, 제발 우리나라 국토를 망가뜨리고 돈 먹는 하마인 4대강사업을 중지해 달라고 외치려고 합니다. 원자력발전소를 21개나 가지고 있으면서 조만간 7개를 또 지으려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친환경이고 “그린”이 되느냐고 외치려고 합니다. 그 “가짜” 그린정책에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수의 예산을 점심을 못 먹는 아동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되돌려주라고 외치려고 합니다”

위의 글이 올라오자마자 너도 나도 참여하겠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 다음날 시험을 치르는 나는 밤차를 타고 베를린에 갔다가 밤차를 타고 돌아와서 시험장으로 직행할까 심각하게 고민했고, 독일인인 남편까지도 내가 못 가면 자기라도 결근계를 내고 가봐야 하는 건 아닐까 하며 덩달아 애를 태웠다. 데모 전날 밤, 정체불명의 협박성 글이 베를린리포트에 올라왔다. “이 데모에 참여하는 유학생들은 앞으로 독일에서의 유학생활이 편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유학생들은 “그렇다면 더욱 참여해야겠다.“고 응수했다.

이 모든 사건들이 숨가쁘게 돌아갔으며, 베를린리포트를 열어보는 조회수는 잠깐 눈 돌릴 때마다 성큼성큼 뛰었다. 이런 상황은 데모가 끝난 후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데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서 하루종일 컴퓨터를 켜놓고 기다렸다. 드디어 데모 후기가 올라왔다. 독일 대통령궁 앞에 하얀 피켓과 현수막을 펼쳐들고 나란히 서서 이명박 대통령의 차량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위대의 사진도 올라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탄 자동차가 시위대 앞을 지나가는 순간 갑자기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이 뛰어들어 시위대 앞을 가로막아 대통령의 시선을 차단하다가 독일 경찰에 쫓겨났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알게되었다. 이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토론이 베를린리포트에서 활발하게 벌어졌다. 그리고 집회를 신고한 사람이 다니는 성당으로 대사관에서 전화를 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고국에서 대통령이 오는데 외국에서 데모를 하는 일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결정은 해외동포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한인신문이 나서서 대신 결정해 줄 일이 아니란 말이다. 신문은 단지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 교포들 사이에서 욕을 하던 칭찬을 하던 의견이 있고 소통이 있고 발전이 있을 게 아닌가?

불과 30년 전에 광주에서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간인들을 수백명이나 군인들이 총칼로 학살한 사건은 외국에선 TV를 통해 퍼져나갔지만 국내 사람들은 6년 동안이나 모르고 있었다. 독재정권 아래서는 신문도 방송도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이번 베를린 데모 사건도 그랬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도 인터넷을 통해 아는 사실을 베를린 옆 동네에 사는 다른 교포들은 인터넷을 하지 않는 한 한인신문을 통해서 알 수 없었다. 대사관의 압력을 받았는가? 아니면 신문사들이 알아서 기었는가? 독재시대가 왔는가? 오고 있는 중인가?

나는 우리신문, 교포신문, 풍경, 이렇게 세 가지 재독 한인신문을 돈 내고 구독하는 독자다. 우리 재독한인 사회에 이렇게 번듯한 신문이 세 개나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 신문들이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며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는 어느 신문사에서 요청이 오건 항상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협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베를린 데모 사건을 맞아 나는 한인신문의 구독을 끊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진실은 고사하고, 모든 교민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하는 듯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신문은 무용지물을 넘어서서 해악을 끼치는 존재이고, 그런 신문은 요즘같이 수세식 화장실을 쓰는 세상에선 도무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나같이 인터넷을 하는 세대들이야 종이신문을 외면해 버리면 된다지만, 인터넷을 하지 않는 나이든 어르신들은 어떡하나? 독일 교민사회의 어르신들이야말로 젊어서 광산과 병원에서 성실히 일해서 고국의 번영에 초석을 놓고 한국의 위상을 독일사회에 착실하게 심어주신 은인들이 아닌가? 교포사회의 기반이 되는 그 분들이야말로 올바른 소식을 접해야 하지 않겠나?

방법은 단 하나. 나는 신문의 독자로서 주인행세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신문에 내 의견을 떳떳하게 말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동포 신문이 일부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자들에게 성실한 방향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많은 독자들이 구독료를 착실히 내야한다고 생각한다. 열 가정이 신문 한 부를 공동으로 구독해도 좋으니 열 가정 합쳐서 1년에 70유로 구독료를 정기적으로 내달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그것은 우리의 동포 신문이 건강하게 작동하는 데 대한 댓가이다. 건강한 동포 신문을 결국 우리의 타향살이를 윤택하게 해준다. 언론이 건강해야 공관을 통한 정부의 독재를 견제하고 엉뚱한 유언비어가 돌지 않아 동포 사회의 분열을 방지한다.

이 글을 다 써놓고나서 나는 월간으로 발행되는 풍경을 받았다. 풍경은 문화지임에도 베를린의 데모 사건을 공정하게 실었다.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내년부터는 풍경을 두 부 구독해서 한 부는 한글학교에 선물해야겠다.

나는 이 글을 우리신문, 교포신문, 풍경 세 군데 언론사에 똑같이 보낸다. 아무 데서도 실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구독료를 낼 것이고 끈질기게 항의하고 기고할 것이다. 왜? 우리의 신문이니까. 신문과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이니까.

후기

이 글은 어느 신문에도 실리지 않았습니다. 윗글에서는 “그래도 나는 계속 두 신문의 건강한 존립을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썼지만 당장은 자신 없습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제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