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토요일 저녁, 두 양주가 집에 앉아 뭘 해먹을까 궁리를 했다. 막 뒤졌더니 2인용으로 포장된 수제비가루가 나왔다. 작년인가 언제 누가 보내준 것… 고마워라.

유통기간이 지났지만 진공포장된 가루가 상할 것 같지는 않아서 과감하게 먹기로 했다. 솔솔 추워지는 가을 저녁에 최고의 음식이 아니겠는가. 남편에게는 유통기간 지난 것 비밀.

멸치 국물을 만들고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모든 야채를 썰어 넣어 보글보글 끓였다. 드디어 반죽을 뜯어넣을 차례. 아,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은 급하고 손은 더딜까. 국물은 미친 듯이 끓지, 먼저 뜯어넣은 수제비는 익어서 곧 불어터질 것만 같은데 내 손의 반죽은 줄어들 기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수제비가 얼마나 얇아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마음이 급해서 반죽 일부를 밀대로 밀어 칼로 그어 국에 넣기 시작했다. 남편이 소리지른다.

“어, 그럼 쑤제비가 아니잖아. 그건 누델수페잖아.”
”(아이 시끄러. 급한데 넌 가만 좀 있어라 잉?) 한국에선 이렇게 먹기도 해. 한국식 슈페쯜레다, 이건.”
“아니지, 쑤제비는 그게 아니지. 봉지에도 쑤제비라고 써 있는데.”

할 수 없이 다시 손으로 뜯어 넣으며 나는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반죽 뜯는 속도가 너무 늦어서 그래.”
“당신 엄지 손가락에 힘이 없어서 그런 거야?”
”(씩씩.) 내 엄지에 왜 힘이 없어? 안 해 먹던 음식이라 연습 부족이라 그런 거지.”
“응, 그렇구나. 당신 엄지 손가락이 날렵하지 못해서 그런 거구나.”
”(으이구, 깐죽아. 너 잘 났다.)…”

드디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얇게 잘 펴졌다.

“아, 잘 된다, 이제. 알았다. 반죽에 국물의 김이 쏘이니까 얇게 잘 펴지네.”
“그럼 손가락 가죽이 두꺼워야 되겠네. 수증기를 직접 쏘여도 화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그게 사람 손이야?”
“살림하는 여자 손은 다 그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 거라구.”
“난 그런 말 안 믿어.”
(이넘아, 그럴 때 한국 남자들은 그대의 젖은 손이 애처로와 어쩌고 하는 노래 불러준댄다. 너도 그거 반만 배워라.)

맛있는 상이 차려졌다. 상이래야 뚝배기 하나씩 놓고 상 가운데 수제비 냄비 덜렁.

“아이, 김치가 있었으면 금상첨화일 텐데. 깻잎 얼린 거라도 녹여서 먹을까?”
“꽥, 밥도 없는데 깻잎은 어디다 감아 먹으라고?”
“수제비에 감아 먹지.”
“꽥, 그거 너무 안 맞는다.”
“안 맞기는? 한국에서도 김치 없을 때 깻잎으로 대신 먹어.”
“아니야, 쑤제비는 그렇게 먹는 거 아니야.”

남편이 너무 자신 있게 우겨서 난 내가 한국 사람인지 남편이 한국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가 항복.

“알았어, 그냥 먹자. 냄새 너무 좋지?”
“그래, 정말 맛있다.”

후루룩 냠냠 짭짭. 어우, 행복해라. 수제비가루 보내주신 분 복 많이 받으실지어다.

“쑤제비가루 팩에 뭐뭐가 들었는데?”
“내가 읽어볼게. 밀가루랑 녹말가루.”
“그럼 이거 사지 않아도 쑤제비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겠지. 담에 또 만들어 먹자. 내가 밀가루랑 녹말가루 사서 만들어 줄게.”
“안 될 걸? 한국 밀가루랑 독일 밀가루랑 종류가 다르거든. 독일 밀가루로 쑤제비 만들면 쑤제비가 퍼져서 죽처럼 될 거야.”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 난 독일 밀가루로 수제비 만드는 사람 봤는데?”
“이태리 밀가루 같은 강력분이라야 달걀 넣지 않아도 쑤제비나 누델이 꼬들꼬들하게 되는 거야. 독일 밀가루는 달라. 한국 밀가루도 분명히 강력분일 거야.”
난 독일 밀가루로 수제비 만드는 사람 본 것 같은데… 하기사 그들이 수제비에 달걀을 넣었는지는 유심히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또 졌다.

누가 어제 저녁에 우리 부엌을 몰래 들여다 봤다면? 우리 부부 머리가 약간 어떻게 된 사람들 같지 않은가? 우리는 치매 초기? 사이좋게 한꺼번에?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