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19. 목요일

(독일내 감염자 수 약 15000명. 하루에 3000명 감염.)

아침에 명상하는데 불쾌했던 기억이 떠올라 내 시야의 왼편 반쪽을 먹구름처럼 까맣게 물들였다. 감은 눈으로 까만 먹구름이 선명하게 보였다. 얼른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되돌아왔지만 시야가 다시 밝아지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그 사건이 내 무의식에 이렇게 큰 상처를 냈구나 알아차리니 좀 난감했다. 생각해보니 그 사건은 일회적으로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나와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감정에 지배받으며 살아왔다.

어느 도반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나의 생각, 감정은 내가 아니고, 무엇보다도 사실도 아니다"란 나누기가 생각났다. 난 그 말에 구원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그 도반처럼 망상이 남긴 몸의 감각을 먼 산 보듯 구경할 날이 올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괜히 나혼자 상처받다니 인간은 참 비합리적이고 나약한 존재다. 그러니까 서로 봐주고 다독이며 살아야하는 거라고!

아침에 한 이런 생각이 씨가 되었나? 오늘 나는 누군가를 봐주고 다독이며 살았다. 사연은 이렇다.

우리 집 아래층에 탁자 네 개로 꽉차는 작은 꼬마 까페가 있다. 유아교육을 전공한 젊은 여성이 2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밤낮없이 참 열심히 일한다. 우리 건물에 사는 맞벌이 부부들의 소포를 받아서 보관해주기도 하는 고마운 까페다. 우리 부부는 돈 내고 커피 마시러 어디 들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평소에는 별로 많이 못 팔아주고 있지만 가끔씩 마음 먹고 들어가서 넉넉히 지불함으로써 우리의 호의를 나타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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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식점과 까페가 문을 닫았으려니 생각했는데 오늘 우연히 그 까페가 열린 걸 발견했다. 음료수나 케익을 사갈 수 있다고 문에 적혀있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접시를 들고 내려가 케익을 사왔는데 얼마나 정성껏 담아줬는지 감동이 밀려왔다. 맘 같으면 더 많이 팔아주고 싶었지만 나이 먹은 우리 부부가 달콤이를 먹으면 얼마나 먹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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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이 났다. 오후에 다시 한번 내려갔다. 5인 식구 먹을 양의 케익을 포장해 달라고 했다. 케이스에는 손글씨로 " (코로나 사태는) 케익을 안 먹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생계의 불안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젊은 사장이 안쓰러웠다. 남편과 함께 탄뎀을 타고 멀리 사는 친구집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이런 시절에 대중교통은 피하고 싶고, 자전거로 케익을 운반하다가는 덜컹거려 다 깨지기 십상인데 이럴 때 탄뎀은 안성맞춤이다. 운전은 뒤에서 남편이 하고 나는 앞자리에 비스듬히 앉아서 케익 상자를 안고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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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내가 늘 받기만 해서 미안했던 친구의 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자 친구가 나왔다. 서로 2m의 간격을 유지하려고 허리를 꺾고 팔을 뻗어 대문 너머로 케익을 전해줬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잠시 얘기하다가 헤어졌다.

오늘은 두루두루 이익된 날이다. 카페는 돈을 벌어서 좋고, 친구는 케익을 받아서 좋고, 나는 친구를 봐서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아주 멋지고 길었다. 남편은 기회를 이용해 아예 교외로 나가 나를 끌고 멀리 멀리 돌아다녔다. 덕분에 운동 한번 쎄게 잘했다고 남편이 제일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