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에서 폭발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신랑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할린은 소련이 되었기 때문에 그가 나올 수도, 내가들어갈 수도 없다고 한다. 나는 무서운 시댁으로 되돌아가 신랑을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그이는 살아만 있다면 내게로 돌아올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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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뺨에 흙이 묻지 않고, 손바닥이 보드라운 남자와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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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아이가 섰다는 걸 안다. 신랑의 아이를 잃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나는 이제는 시댁으로 돌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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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에 흙이 묻지 않고, 손바닥이 보드라운 남자는 나를 찾기 위해서 시골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내가 물동이를버리자,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는 내가 부른 배를 안고 그에게 다시 돌아갔어도, 내 손을 꼭 잡아주었을 사람이다. 그러나나는 언제라도 사할린에서 소식이 오면, 또 그를 떠날 사람이다. 그리고 손바닥처럼 마음도 보드라운 그는 어느 여자하고도 잘 살수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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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이 망했다. 일제시대에 징용으로 끌려갔던 사할린 동포들이 귀국한다고 한다. 팔순 노인이 되었을 신랑은 살아 있을까? 살아만 있다면, 그는 내게로 꼭 돌아올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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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난 신랑의 얼굴을 나는 대번에 알아본다. 나는 거울을 본다. 일부종사하지 못한 노파의 검버섯이 부끄럽다. 호롱불이 유난히흔들리던 밤에 동산만한 내 배를 쓰다듬던, 그의 딱딱한 손바닥을 내가 한번만 만져 보고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가 지난 육십년의 세월을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묻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었던 육십 년을 끊어내고, 그와 백년해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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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이 나를 찾는다고 한다. 그가 평생 다른 여자를 두지 않았다는 소문에 나는 절망한다. 그의 자식을 잃고, 다른 남자의 자식을 가진 나는 세월에 굴복하지 않은 그에게로 돌아갈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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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생을 살아서 견뎌야 할 마지막 이유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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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기는 내가 사고로 죽은 줄 알 것이며, 신랑은 내가 재혼해서 행복하게 잘 사느라고 연락이 없는 거라고 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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