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나긋한 오월이었다. 독일의 뮌헨은 북반구에 위치한 도시답게 하루가 다르게 해가 길어져서, 저녁을 먹고 났는데도 이제 막해거름을 하는 중이었다. 저녁 먹은 접시들을 포개서 싱크대 위에 올려놓으며 미라는 시계를 보았다. 여덟시 십오분 전. 아직늦지는 않았구나. 지금 곧장 나가면 음악회에 늦지 않게 닿을 수 있겠다.

미라는 옷가지며 가방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집안꼴에눈길을 주며, 갈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아이들은 숙제를 하는지 책을 읽는지 각자 제 방에 틀어박혀 있었고, 남편은 둥그렇게 등을굽힌 뒷모습을 보이며 고집스럽게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굳은 목줄기를 보며 그녀는 순간적으로 음악회에 가기로결정해 버린다.

“나갔다 올게.”
남편이 화면에서 머리를 돌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음악회에. 클레츠머 음악회.”
옷과 머리에서 튀김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자전거 열쇠를 꺼내들고 서둘러 문을 닫았다.

노곤한 저녁햇살을 가르며 자전거 페달을 빠르게 밟자, 알프스에서 실려오는 바람이 제법 싸아하게 얼굴을 스쳤다. 튤립과 물망초를 색색으로 빙 둘러 심은 소공원에서 달착지근한 꽃향기가 배어나와, 도시의 배기가스와 섞이고 있었다.

그녀는 신호등을 무시하며 숨차게 달려서, 음악회가 열리는 문화센터에 금새 도착하였다. 견고하게 쌓아 올린 붉은 벽돌이 석양에반짝였다. 여러 종류의 문화행사를 유연하게 포용하기 위하여 창문 없이 둥그렇게 둘러친 외벽이 마치 신전처럼 도도하게 보였다.

미라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종종걸음을 쳤다. 표를 미리 사 두지 않았으므로, 공연시작을 삼사 분 앞두고 아직도 자리가 남아있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육중한 유리문에 도달하니, 마침 막 들어가고 있던 남자가 뒤에서 사람이 뛰어오는 것을 보고는 문을잡아 주었다. 미라는 고맙다는 인사를 던지며 그 남자를 지나쳐 매표소로 달려갔다.

빼곡하게 찬 공연장의 맨 뒷줄에 이빨 빠진 자리처럼 하나 남았던 좌석을 찾아 깊숙히 등을 기대니 스르르 밀려오는 안도감. 비로소 자신의 부실한 옷차림에 신경이 쓰였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깜깜한 관중석 뒤쪽에서, 클라리넷의 부드러운 나무질의 음율이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흐느끼기 시작하였다. 그 애절함에 압도되어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는 관중들 사이로, 묘령의 여성연주자들이 가느다란 선율을 면사포의 베일처럼 뒤로 끌며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들이 차례로 무대에 오르자마자, 연주는 애수에 취한 몽롱한 상태에서 깨어날 틈도 주지 않고, 막바로축제의 흥분으로 이어졌다. 클라리넷과 아코데온이 재깔재깔 말다툼하는 소리에 넋을 빼앗긴 팔다리가 제멋대로 덩실덩실 놀 것같아서, 미라는 일부러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클레츠머 음악은, 나라 없이 떠돌던 유태인의 축제 음악이 동유럽에서 집시 음악과 접목되어 태어났다. 뿌리가 뽑힌 사람들의,인연에 따라 변신하는 음악답게 이차대전 전후에 유태인들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후, 아프리카 출신의 노예 음악 재즈를 만나소리를 섞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떠돌이민족의 한이 조각보처럼 어우러져 잉태되었고, 아직도 새로운 한을 계속 담아가며 꾸준히변천하고 있는 클레츠머의 선율은, 미라의 귀엔 흥겨우면서도 애수에 차서 흐느끼는, 한국의 뽕짝처럼 들렸다. 뮌헨 시내에서 거리의음악사들이 연주하는 클레츠머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그녀는 마치 자신의 몸통을 울리며 나오는 음악인양 공명하는 것을 느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과 공중으로 둥둥 뜨는 느낌이 쉴 새 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공연은 막을 내렸다. 혼이 육체를 떠나 음악과어우러져 제 마음대로 울었다 웃는 모습을 구경한 후의 공허감이 밀려왔다. 갑자기 불이 환하게 켜지자 현실로 내동댕이쳐짐에머쓱해진 미라는, 우르르 일어나 자리를 비우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복도로 나왔다. 귓속에서는 멜로디가 계속해서 왕왕거리고뼛속에는 아직도 리듬이 남아 있어서, 걸음걸이가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이 불안정했다.

출구 쪽으로 서서히 전진하던 군중들이 갑자기 술렁거렸다. 순간, 복도의 유리벽이 화르르 빛나더니 곧이어 우르릉쾅쾅 천둥소리가 몸을 흔들었다. 귀가길을 걱정하여 웅성대는 소리 사이로 빗줄기 듣는 소리가 폭포수같이 들려왔다.

가슴이 뛰었다. 오늘 밤은 정말로 완벽하군. 처마 밑에 서서, 비가 그칠 때까지 이 밤을 혼자 즐기리라. 이 늦은 시간에는아이들도 남편도 이미 잠자리에 들었을 터였다. 아무도 자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날아갈 듯 홀가분했다.

바로 앞에 가던 남자가 밖으로 나가는 유리문을 밀면서, 뒤에 사람이 있는지 흘끗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미라는 유리를 통해어른거리는 장대비에 마음이 들떠서 공연히 함박웃음을 보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정중한 몸짓으로 문을 잡고서서, 미라를 먼저 나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아, 아직도 이런 신사가 있구나. 미라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상냥하게 인사하며 그를지나쳐 나왔다.

그 사이에 흠뻑 젖어버린 자전거를 처마 밑으로 들여놓고 서서, 번갯불에 선득선득 비치는 빗줄기를 감상하고 있는 그녀 앞으로 다른관람객들이 어깨를 옹송거리며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아까 그 신사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목례하였다. 저만치 멀어져가는 그의뒷모습을 보면서, 바로 이 사람이 아까 들어갈 때도 문을 잡아 주었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들떠 있던 마음이, 모르는 사람의 사소한 친절에 더욱 즐거워졌다. 이런 흥겨움을 느낀 것이 실로 얼마만이냐는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지난날을 채색했던 밝은 색조가 저 멀리서 아쉽게 어른거렸다. 그 위로, 남편의 우울한 얼굴과 빛바랜자신의 얼굴이 먹물처럼 퍼졌다. 졸지에 무기력감이 차오르며 팔다리가 뻐근해졌다.

이때, 뿌옇게 눈앞에 드리워진 빗발의 장막을 뚫고 화르르 번개가 갈라지더니 곧바로 천둥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뒤이어 하늘이연주하는 시원한 사물놀이가 한바탕 벌어졌다. 우울한 상념에 눌려 잠시 숨을 죽이고 있던 클레츠머 음악이 그 바람에 그녀의 핏줄속에서 다시 깨어났다. 클레츠머의 선율은 사물놀이의 가락을 타고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돌아가며, 무겁고 뻐근한 기운을 단숨에몰아냈다.

저쪽에서 누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까 그 남자가 되돌아오고 있었다.
“자동차를 멀리 세워 놨거든요. 비가 너무 심해서…”
변명처럼 말을 건네며 그는 그녀 옆에 나란히 서서, 비바람에 산발을 하고 울렁거리는 아카시아 나무에 눈을 주었다.
“참 아름다운 밤이죠?”
그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표시로 이같이 대답하며 미라도 뿌옇게 젖은 밤하늘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나무의 실루엣을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오늘 음악회 즐기셨습니까?”
편안한 침묵을 깨고 남자가 물었다. 미라는 그 틈에 끼어들어 북을 두드려대는 천둥소리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좋았다고 미소하며 비로소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조용히 마주 웃는 인상이 좋았고, 회색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클레츠머 연주회에는 빠지지 않고 다닌다는 그는 유명한 노연주가 기오라 화이트만의 카리스마적인 공연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그는 말수를 아끼는 대신 표현을 적절하게 했으므로, 미라는 노연주가의 클라리넷 선율을 환청으로 듣는 듯한 느낌이들었다.

미라는 문득, 클레츠머 음악과 한국인의 정서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저는 한국사람인데요, 클레츠머의 멜로디가 제게는 고향의 음악처럼 들려요.”
“아, 그렇습니까? 저는 이태리에서 왔습니다. 파올로라고 합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그는 반색을 하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에게 손을건네며 미라라고 자신을 소개한 다음, 그녀는 애초에 하려고 했던 말은 잊어버린 채 엉뚱한 반가움을 표시하였다.
“어머, 이태리! 이태리에서 오셨어요?”
남자의 얼굴에 재미있어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미라는 자신이 평소보다 고음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난 십여 년간 그녀를 감싸고 있던, 우울한 베일을 단숨에 젖혀버린 기분이었다.
“이태리 남자를 알았었는데…아주 아주 오래 전에.”
남자는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고, 무엇인가 망설이는 듯 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 사람 다시 만나보고 싶지 않으세요? 저는 삼십 년 전에 미국에서 사귀었던 사람을 최근에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았어요. 일본 여자…”

절묘한 우연이었다. 어쩌면 그는 미라를 보며, 미국에 살고 있다는 일본 여인을 떠올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미라는 파올로에게서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샤의 환영을 보고 있었다. 사실은 인간 사샤의 환영이 아니라 그녀가 사샤를 향해 품었던 감정의환영이었지만, 그것은 서서히 되살아나 파올로에게 겹쳐지고 있었다.

그들은 처마 밑에 나란히 서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캐캐묵은 옛날의 감정까지 시시콜콜 다 털어놓으면서도 개인적인 신상에관해서는 서로 언급을 피했다. 단지, 그는 문화센터 옆을 흐르는 이자 강 건너편에 위치한 유럽특허청에 근무한다고 지나가는 말처럼비추었을 뿐이고, 미라는 그녀의 전공이 건축이라는 사실만 알려 주었을 따름이었다. 그가 그녀의 나이를 터무니없이 어리게 보고있고, 그녀에게 가족이 딸렸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였지만 그녀는 굳이 그것을 수정해 줄 필요를 느끼지못했다. 오늘 밤만큼은 매인 데 없이 자유로운 모습이고 싶었다.

멀리서 이따금씩 한숨 쉬는 소리를 내며 천둥과 번개는 저만치 물러갔다. 기세가 수그러든 비가 청승스럽게 부슬부슬 듣고 있었다.가로등의 불빛을 중심으로 밤하늘에 둥그렇게 뚫린 구멍에는, 날카로운 선으로 번득이는 빗살무늬가 가득 차 있었다. 미라는 그모양을 멍하니 바라보며, 저 동그라미 때문에 비가 보이는 걸까 아니면 비 때문에 저 동그라미가 보이는 걸까하며 저 혼자 생각에잠겼다. 파올로도 그 동그라미에 시선을 박고 있었다. 미라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빗줄기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저렇게 똑똑하게 보이는 게 참 신기하지요? 아니면 빗줄기로 인해서 가로등 불빛이 비로소 보이는 걸까요?”
“세상에는 무엇이 먼저인지 확실하지 않은 일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한 가지를 선택해서 믿을 뿐이고요.”
미라가 후딱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고개를 돌려 그녀를 마주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기가 약해진 천둥이 멀리서 또르르르 장고채를 굴렸다.

비는 더 기다린다고 해서 그칠 기미가 아니었다. 파올로가 처마 밖으로 한 발짝 나가서, 손바닥으로 비가 오는 양을 가늠해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일순 안도하며 그녀는 파올로가 안녕하며 먼저 가 버릴까 봐 자신이조마조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거침없이 대화를 주도하던 당당한 자세가 슬며시 수그러들면서 머리에서 튀김냄새가 나지 않을까, 입에서는단내가 나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모처럼만에 숨통을 다시 터 주는 자유의 감성이 이 낯선 남자에 대한 원인 모를 호감에 밀려슬그머니 쭈그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다시 찾은 보물을 또 한번 빼앗길까 걱정하는 아이처럼그녀는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이 보물을 이대로 안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마음의 동요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그는 다시 한번 밤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직도 많이 오는데요.”
“그래도 가 봐야겠어요.”
깊숙하게 파묻혔던 속마음을 숨김없이 펼쳐보이며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밑도끝도없이 가겠다는 말에 그는 아무런 감정의 표시도 나타내지 않았다.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즐거운 밤이었어요. 안녕히!”
“집이 여기서 먼가요? 조심해서 가세요.”

필요 이상으로 서두르느라고 처음 몇 바퀴는 선 자세로 페달을 밟다가, 가속이 붙자 그제서야 엉덩이를 안장에 내려놓으면서 그녀는뒤를 돌아보았다. 파올로가 저만치서 뒷모습을 보이며 걸어가고 있었다. 미라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비에 젖어드는 옷이 맞바람을받자 추위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이가 아다다다 맞부딪쳤다.

미라는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 성도 모르고 연락처도 교환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들이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었다. 파올로는 아무런 감정의 표시도 내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파올로가 옛날의 사샤처럼 기적적인 재회를 화려하게연출해 내는 상상으로 몸을 떨었다. 눅눅한 밤공기에 아카시아 향기가 마약처럼 나른하게 녹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