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나는 호강했다. 목욕을 한 것이다.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요즘 세상에 목욕하는 걸 가지고 뭐 그렇게 생색을 내느냐고할지도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 목욕은 특별한 사치이다.

아들이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고 다녔을 때나 샤워하다가 미끄러질까봐 욕조에 앉아서 목욕했을 정도이다.

보통 가정집의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놓고 목욕을 하면 일반적으로 200리터의 더운물이 소비된다. 그에 비해서 샤워를 하면 훨씬적은 양의 물이 소비된다. 샤워하는 습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샤워할 때 꼭 필요할 때만 물을 틀었다가 잠깐이라도 꼭 잠그며 아껴 쓰는데도20리터를 소비하는데, 남편은 몸을 씻다 마는지 한번 샤워하는 데 9리터 미만의 물을 소비한다. 아마도 우리 아들은 나와 남편의중간쯤 소비할 것이고, 욕실에서 샤워만 하는게 아니라 무슨 뷰티 프로그램이라도 수료하시는지 꽤나 오래 욕실을 점령하는 우리 딸은 어쩌면 나머지 식구 셋 합친 것만큼이나소비할지도 모른다.

목욕할 때 소비하는 물 200리터를 섭씨 10도에서 40도로 데우는데 드는 열량은 7 kWh이고, 이는 독일의 에너지 가격으로치면 가스보일러일 경우에 0.38유로(약 500원), 전기보일러일 경우에 1.50유로(약 1900원) 어치이다. 돈으로 치면독일에서 뭐 하나 사먹을 수 없는 우스운 금액이지만, 아프가니스탄이나인도의 천막교실을 100촉짜리 백열전구 하나로 70시간 동안, 에너지절약형 전구로는 200시간 이상 밝힐 수 있는 에너지이다.또한 건설공사장의 크레인이 7톤짜리 자재를 367 미터 높이로 올리거나 운반할 수 있는 양의 막대한 에너지이다.

게다가 문명의 혜택에서 가장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지구온난화로 물에 잠기거나 사막으로 변하는 현상을 생각하면, 또한근간의 오일전쟁으로 뿌린 피를 생각하면, 감히 감히 웃을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이다.

러시아에서 인권유린과 언론탄압으로 독재체제를굳히는 푸틴 대통령에게잘났다는 유럽의 국가 수반들이 똑똑하게 항의를 못하는 이유도 러시아가 천연가스 보유국이라는 데 있다. 이렇게 에너지는 우리를노예로 만들어 할 말도 못하게 만들고 있다.

문명인인 우리가 에너지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을 나는 딱 하나밖에 모른다. 에너지가 그다지아쉽지 않은 생활태도를 실천하는 것이다.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고, 난방을 줄여 겨울에 집에서 내복을 입고 사는 일은, 마음 먹기가 어려워서그렇지 실천하기는 쉬운 일이다. 마음 먹기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환경이라는 공동의 물건을 지키는 일은 내 물건을 남에게주는 봉사활동보다도 훨씬 더 공평하고 당연한 일이라는, 간단한 이치만 깨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공동의 물건을 지키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예를 들면, 우리 옆집에 사는 독신여성이 혼자 쓰는 물의 소비량은 우리 식구 네 사람 분의 두 배나 된다. 그래서 환경보호라는 테마는 우리 가족에게동지의식을 높혀주고 인생의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남편은 내가 샤워할 때 물을 너무 많이 쓴다고 투덜거린다. 나는 당신보다 머리가 길지 않느냐고 변명해도 막무가내다.

“머리는 무슨? 그건 당신 샤워하는 테크닉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세상에, 부인 샤워하는 테크닉까지 참견하다니, 남자치고 여간 괴팍하고 쪼잔한 남자가 아닐 수 없다. 평생 벼라별 괴팍쪼잔함을견디고 푼수처럼 잘 맞춰온 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사실 이해가 안가는것도 아니다. 이 남자는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다.

언젠가 남편이 샤워꼭지에 뭘 달아서 수압을 낮추면 물이 절약된다는 소리를 하길래 나와 딸은 기겁을 했다.
“아 안돼, 아빠. 그러면 머리 감을 때 샴푸가 안 빠져.”
“안 되긴? 졸졸 흐르는 물에 오래 씻으면 안 깨끗해지는 게 어딨어? 다 테크닉의 문제라고.”
“아 안 된다니까? 우린 여자들이야. 당신은 머리가 없어서 몰라요.”
“내가 왜 머리가 없어?”
(모녀 합창으로)
“대머리 일보직전!”

시원한 물살을 사랑하는 나와 딸은 남편이 우리의 조그만 행복을 짓밟을까 봐 이렇게 진실을 왜곡해가며 필사의 저항을하였다. 남편에겐 그때 나하고 딸이 와아악 초반에 기선을 제압해서 두말도 못하게 입을 막아버린 사건에 대한 억하심정이 남아있다. 그래서 두고두고 테크닉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것이다

남편은 며칠 전에도 또 샤워꼭지에 무슨 장치를 달아 물살을 줄이자는 소리를 했다. 나는 물살이 세면 그 만큼 빨리 씻으니까 물의소비가 더 많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약한 물에 오래 씻는 게 정말로 물을 절약하는 거라는 걸 과학적으로 증명해보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수학공식으로 증명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자세히 꼬치꼬치 캐물으니까 버럭 화를 냈다. 응,화내는 거 보니까 자기도 확실히는 모르는 모양이군.

이 끈질긴 남자가 이튿날 또 입을 열었다. 에너지절약형으로 나오는 신형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바로 그런 원칙에 의해서 작동된다고길게 설명했다. 몰래 공부한 모양이다. 그리고 화학공장에서도 적은 양의 화학물질을 반복해서 투척하는 원칙에 의거해서 뭘 분해하고용해한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그 말을 들으니 남편의 말에 신임이 좀 갔다. 화학공장에서는 분명히 효율성과 경제성을가장 높이 칠 테니까.

고백하자면, 다른 부분에는 협조적인 내가 유독 이 문제에 있어서 남편에게 어깃장을 놓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게도 남편에 대한 억하심정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절약이라도남편은 더운물에 대한 애착, 즉 연료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 한편 나는 물 자체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아마도 옛날60년대의 한국에서 기우제라는 단어를 요즘의 바겐세일이라는 단어처럼 흔하게 들으며 살아온 성장배경에 기인하는 현상일 것이다.여름이면 논바닥이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지고, 논에 물을 대다가 물꼬싸움이라도 나면 자칫 살상으로까지번지기 일쑤인 농업국가에서 자란 나의 마음속엔 물에 대한 경외심이 상처처럼 깊이 새겨져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사시사철 골고루 비가 와서 대지가 늘 촉촉한 나라에 살면서도, 아직도 물이 귀하고 고마워서 감자나 샐러드 씻은 물을모았다가 발코니의 화분이나 화단에 꽃물로 주거나, 그릇을 세척기에 넣기 전에 애벌설거지용으로 사용한다. 이를 두고 남편은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놀렸다. 우리가 지금 살고있는 고장은 물이 남아나는 곳이고, 여기서 물을 아끼는 것이 지구 저쪽의 가뭄을 막지 못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당시 나는 내 마음속에 아픔처럼 남아 있는, 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나 스스로도 여실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감정과논리가 뒤섞여 횡설수설 하였고, 남편은 의기양양해서 내가 하는 말마다 조목조목 조리 있게 반박하며, 나의 사고패턴이비과학적이라고 갖은 오만을 떨었다. 논리가 딸려 싸움에 지면서 나는 대단히 분했다. 모든 게 다 과학적이어야 하니? 너, 두고보자.

욕조에선 힘차게 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뽀얗게 피어올랐다. 실로 오래간만에 욕조에 누운 나는 행복해서 입이 벙긋벌어졌다. 계획에 없었던 감기 덕분에 스케줄에 차질이 생긴 지난 며칠간 나는 샤워도 못할 만큼 바빴다. 가뜩이나 찝찝한데다급기야는 전날에 밤샘한 탓으로 수족냉증까지 겹쳐서 컨디션이 여간 저조한 것이 아니었는데,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뼈까지 짜르르녹는 느낌,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이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 몰래 목욕을 하는 일에 나는 짜릿한 스릴과 통쾌함을 느꼈다. 내가 목욕하는 걸 보면 남편이 배신감을 느낄 거라고 나는 믿고있다. 정말 그런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믿으면 내게는 기정사실인 것이다. 나는 물을 첨벙이며 돌아눕는 것으로써 옛날 고리짝에 시어머니가 내게 섭섭하게 한 일까지 되새기며고소해했다.

욕조가 1/3정도 찼을 때 나는 물을 잠그고 거품을 풀었다. 수면 위로 나온 부분이 좀 춥다 싶으면 요리 누웠다,저리 엎어졌다 뒤치락거리며 골고루 불려서 이태리타올로 박박 문질렀다. 나의 살갗에는 이태리타올이 남긴 분홍빛 열기가 행복감처럼번졌다.

남편에 대한 복수심 뿐만 아니라, 목욕을 한다는 사실에 나는 죄의식을 동반하는 스릴을 느꼈다.몰래 사탕 훔쳐먹는 아이의 심정이 이럴까? 이브가 몰래 따먹은 사과의 맛이 이럴까? 물 위로 나온 내 몸을 부드럽게 덮어주는,사치스럽게 반짝이는 거품을 바라보자니 내가 참 퇴폐적일 만큼 부유한 생활을 하는, 지구상의 몇 퍼센트 안에 드는 행운의 부류에들어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뒤이어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시기가 우리 대에서 끝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자식 대에서는 목욕이란풍습이 존재했던 호시절을 환상처럼 그리며, 선조들이 참 파렴치하게 지구를 말아먹었다고 원망할지도 모른다. 아, 나는 파렴치한사치를 누리고 있구나.

누가 이런 나를 본다면 참 궁상스럽게도 산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다가 목욕 한번 하면서, 그것도 절약하느라고 물을반도 안 채운 욕조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도 행복에 겨워, 사치니 행운이니 어쩌구저쩌구 말도 많구나. 그것도 중늙은이가. 나이값을 해라.

나는 품위 없이 사는 사람일까?

아니다.

몰락해가는 로마에서 우유에 목욕하는 귀족 여인네들이 품위 없는 사람이지, 에너지의 불평등한 분배에 항거하고 물질의 속박에서자유롭기 위해서 목욕을 자제하는 것은 대단히 품위 있는 행동일 것이다.

생각이 로마의 여인네에게 미치자 나의 호기로운 기운이 슬금슬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지구 저 편에서 식수마저 부족한 사람들이 나를본다면 뭐라고 할까? 사람이 마시는 물에 비누거품을 풀어놓고 들어가 앉은 나를 본다면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유에 목욕하는 로마의여인네들을 떠올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날 저녁에 나는 몸과 마음이 가뿐했다. 감기끝에 오래간만의 목욕으로 몸도 호강했겠다, 남편에게 복수했으니 마음도 고소했으므로난 참으로 나긋한 부인으로 변해 있었다. 저녁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대화 끝에 내 입에선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툭튀어나왔다.

“우리 샤워꼭지에 물살을 줄이는장치를 달지.”



에필로그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남편에게 에너지 계산을 부탁했다. 계산하는 일이 취미인 남편은 목욕할 때 드는 물값까지 산정해냈다.

물 200리터의 수도세는 송수 배수 합해서 60센트(780원) 상당으로서 그 물을 데우는 데 드는 가스값 38센트보다 훨씬 더 많이 나가는 것이아닌가? 지하수가 풍부하여 대부분의 수도물이 땅에서 절로 솟아나는 나라에서 이건 또 웬 일이람?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물이 흔한 나라에서 목욕하는 데 드는 물값이 수입하는 가스값보다 더 많이나가는 건 이상하지 않아?”
“그래, 그렇군.”
“송수, 하수, 정수시설에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가?”
“글쎄, 그것 밖에는 이유가 없을 것 같은데?”

잠시 후에 나는 부엌 바닥에 엎드려 세탁기를 수리하고 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물을 절약하는 게 에너지를 절약하는 거네?”
“아, 물론이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었다.
“근데 전에 자기가 그러지 않았어? 독일에서 물을 절약하는 게 지구환경 보호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고?”

나의 남편은 편리에 따라 참으로 건강한 망각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나는 그가 “난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딱 잡아뗄것을 기대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선 다른 말이 나왔다.
“그때 당신 말이 맞는 말이었어.”

예상치 않았던 반응이라 나는 그가 무릎을 꿇고 세탁기를 뜯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부엌물을 모았다가 꽃에 물 준다구. 당신 따라서.”

남편이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서 방글방글 웃는 모습에 푼수 마누라는 복수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호호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