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는 매년 국제도서전시회가 열린다. 해마다 한 나라를 선정하여 주빈국이라 칭하고 그 나라 문학과 문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홍보를 한다.

주빈국은 큰 면적의 전시장소를 따로 받아서 자국의 문학작품을 대량으로 소개하고, 문인들의 토론회 및여러가지 문화행사를 통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로 삼고 있다.

한국은 2년 전인 2005년도의 주빈국이었다. 도서전을 끝낸 후 주빈국의 성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하다. 역대 주빈국 중에 가장돈을 많이 들인나라답게 많은 양의 도서와 다양한 행사를 통해 우리나라를 알차게 홍보했다는 평도 있고, 아쉬운 점이 있었다는 인사이더들의 지적도있다. 한국에서 독일어로 번역될 작품을 선정할 적에 독일의 주최측에서 알려준, 독일인들이 한국 문학에 대해 특별히 궁금해하는 점들이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후문도 들렸다.

나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그 해 처음 방문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성과를 역대 주빈국들과 비교할 만한 능력이없다. 단지 장님 코끼리 더듬기식으로 얻은 개인적인 느낌을 지인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나는 뮌헨에서 새벽기차를 타고 갔는데 내가 아는 간호사 언니네 부부와 동행이었다. 그 언니는 출판계에서 일하는 독일인 남편과함께 삼십 년 전에 처음으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방문했다가 쇼크를 먹고 발길을 끊은 후 처음이란다. 그때 한국전시대에는 얇은 종이에 조잡하게 인쇄된 국민학교 교과서 몇 권만이 초라하게 널려 있었을 뿐이었다며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는빈곤국이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나는 삼사십 년 전에 내가 우리나라에서 읽었던 얄개전이나 우야꼬의 이야기, 황순원의 소나기를 떠올렸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에서문학적인 분위기에 흠뻑 젖어서 자랐다. 국외로 소개가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당시 우리나라에 문학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자위와,세계적으로 경쟁해도 지지 않을 수준의 한국문학이 우리나라 안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서로 교차하였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으로서의 한국 전시물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세련되고 참신해서 어디 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했다.한국이 IT강국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자랑스러웠다. 영상물이 따로 열리는 미술, 무용, 음악 행사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역시 성공적이었으리라 믿는다. 한국의 문화행사는 늘 독일인들에게호평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한국음식을 깔끔하게 선보여 널리 선전할 기회를 놓친 점이다. 메뉴도 가격도 홍보 차원에서가 아니라, 한국인 관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 위함이란 느낌이 들었다. 앉을 자리도없는 곳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만 부어서 5유로씩 받고 팔았는데, 빵처럼 서서 한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지 않는가? 컵라면은 거의 한국사람들만사먹었는데 이들은 복도 바닥에 주루룩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그리고 그 많은 라면컵을 버리기엔 쓰레기통도 턱없이 부족해서 여기저기 국물 묻은 플라스틱 컵이 나동구는 것이 참 난장판이었다. 전시는하이테크로 해놓고, 한국사람들은 쓰레기 사이에 주저앉아서 음식 먹는 거 보여준 셈이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한 곳은 문학행사였다. 도서전을 계기로 100권의 한국문학이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서 도서전이열리기 몇 달 전부터는 독일의 주요도시에서 우리나라 유명작가들의 순회낭독회가 열렸다. 덕분에 나는 책으로만 대하던 몇몇 작가들을직접 대면할 기회를 가졌다.

낭독회는 한국어와 독일어로 열렸다.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는 독일어 팜플렛은 내용도 좋고 질도 좋아서 자랑스러웠다. 청중들은대부분 한국사람들이었다. 참여한 소수의 독일인들은 주최측 사람들이거나 한국사람들의 배우자, 지인들이었다. 독일사람들이 한국문학에관심이 없는 것은 한국문학이 열등해서도 아니요, 독일인들이 오만하거나 무식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한국문학에 관해서 독일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테마로는 분단과 민주화 운동 등 우리나라 특유의 사회상과 그에 따르는 개인적인 운명을꼽을 수 있겠고, 이들에게 익숙한 현대문명이 이들에게 낯선 옛풍습과 함께 나란히 공존하는 우리 현사회의 모습도 독일인들에게는대단히 이색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낭독이 끝난 후 공개토론을 통해 작가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참석한 청중은 거의가 다 한국인이었고 독일인의 머릿수는 몇 안 되었지만 명색이 독일사회를겨냥하여 열리는 낭독회였으므로 당연히 독일어와 한국어, 이렇게 두 나라 언어로 진행이 되었다.

이때 화자들은 자신의 말이 통역을 통해서 전달된다는,새로운 상황에 접하게 된다. 모국어로 듣기에는 근사한데 막상 다른 나라 말로 옮기려면 내용이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다.통역을 중간에 끼운 소통에서는 미사여구를 써서 멋진 웅변을 하는 사람보다도 핵심을 확실하고 간략하게 정리하는 사람이 유리하다.오로지 한국말로서, 한국인만을 상대로 평생 글을 써온 작가들에게는 이러한 소통의 방식이 낯설었으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모두에게새로운경험이었겠지만 이런 간접소통의 방식에 별 지장을 받지 않고 무난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작가도 있었고, 이런 식으로는 소통이 거의불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이때 통역의 실력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자리에서의 통역은 삼십 년 이상 독일에 살았다는 세월의 힘으로 독일어로 전공책 한 권써 내고, 요즘 인터넷 덕분에 모국어로 잡문이나 좀 끄적인다는, 나 같은 사람이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나라 언어가 동시에 뇌의 표피에 떠올라서 대기하고 있어야하는데 그건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 두나라의 언어와 정서에 다리를 놓아 진정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일은 그런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연마한 사람이할 수 있는 일이다. 같은 나라 언어로 하는 대화에도 동문서답을 하는 게 다반사인데, 말을 빙빙 돌리는 화자의 핵심을 순간적으로잡아내어 다른 나라 말로 전달함으로써 상호간에 대화 자체가 가능하게 하는 일은 특수한 기술에 속한다.

나는 이번에 아주 유능한 통역사를 한 사람 보았다. 한국사람인지 독일사람인지 내가 눈으로 보아도, 귀로 들어도 전혀 감이 잡히지않는 젊은 여성이었다. 아마도 국제결혼 가정의 2세가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을 하면서 저런 유능한 인재의 모국어가 우연스럽게도한국어라는 사실을 무척 다행스럽게 여겼다. 저런 실력의 통역사라면 어느 나라 언어로 일을 하더라도 국제 사회에서 다투어 모셔갈것이다.

한국사람들은 해외동포가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면 현지에서 별볼일이 없어서 한국에 다시 빌붙는가 의심하고, 같은 일을하더라도 외국인보다 박하게 쳐주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의심이야말로 외국에 있는 진정한 한국인 인재를 다른 곳으로 빼앗기고,정말로 별볼일 없는 사람만이 한국의 주위를 서성거리게 만드는 원인이 될 것이다.

한국문학을 세계무대에 올리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한 첫 걸음은 2세, 3세 해외동포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애정을 터무니없이 의심하지 않고 한국어 연마의 기회를 주어 한국의 일꾼으로 키워 주는 것이겠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이를 널리 퍼뜨리는 일이 우리나라의 위상과 경제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고이에 대한 투자가 꾸준히 지속되어야만 이런 인재들에게도 한국문화가 수지맞는 일터로 소문이 날 것이다. 장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실력있는 사람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여담을 한다면, 나는 이번에 내가 말로만 듣던 작가들을 직접 접하면서 커다란 경험을 하였다.

내 인생에서 그 어느 스승보다 크게 영향을 끼친 작가가 온다기에 나는 열일을 젖혀두고 쫓아갔다. 그가 나같은 무명의 독자에게입힌 은덕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가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숭고한 작업인지를 그에게 말해 주는 것이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들어서였다. 그러나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섰다. 그 자리에 참석한 몇 안 되는 독일인들을 국제무대라고 착각하는 그에게는 나 같은 한국인 독자의 의견이 별로 중요해 보이지않았기 때문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 사람의 책을 두어 권 읽고 집어 던진 후 그 이름만 들어도 내가 머리부터 흔들었던 작가가공개토론회에서 진지하고 겸손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았다. 잘 들어 보니 나와 이념은 다를지언정 그가 말하는 내용이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여태까지 그를 이념이 다르다고 무조건 적대시하고 무시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어떤 작가가 독일에 짧은 기간 거주한 후에 독일사람에 대해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나는 그의 글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를 괜시리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가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타고난 행운을 잘 이용하는 사람일 거라고 나는 무작정 단정했다.그러나 그가 세련되고 성실하게 공개토론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의 성공의 비결은 실력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없었다. 내가 그간 느꼈던 감정은 터무니 없는 텃세와 질투였다.

한국의 유명작가들이 외국어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모습을 보며, 이제 한국 문학이 세계인들을 상대로 경쟁을 하는 데있어서 유리한 덕목이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한국에서 쌓은 명성과 유창한 말주변의 들러리 없이, 내용 하나만으로승부를 보아야 하는 토론광경을 보고 있으려니, 어떤 생각이든 끝까지 사고하여 정확하게 표현하는 치열함과 정직함만이 만국공통어가아닐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부터 확실하게 이해한 것만을, 자기 자신의 언어로써 정확하게 전달해야만문화배경이 다른 세계인들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