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독일 화가 칼 슈피츠벡은 소시민의 고단한 일상을 따스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표현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1838년에 그린 “가난한 시인”은

침대에 누워서 책을 펼쳐 든 노인의 머리 위에 펼쳐진 우산 덕분에 유명해졌다. 춥고 비 새는다락방에서 침대에서 모자까지 쓰고 시를 쓰는 가난한 시인의 모습은 비참하기보다는 낭만적으로 묘사되어 보는 이의 마음에 온기를지핀다.

1830년대에 유럽를 지배한 소시민적 문화에 대해서, 또 뮌헨 근교의 부잣집에서 태어나 좋은 성적으로 약사의 길을 걷던슈피츠벡이 하루 아침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독학으로 이룩한 그의 예술세계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오늘은 그가 그린가난한 시인이 침대에서 쓰고 있는 모자에 주목하기로 한다. 독일어에는 잘 때 쓰는 모자라는 뜻의 “슐라프 뮈쩨”라는 단어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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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던 옛날에 독일의 보통 가정집에선 겨울에 부엌과 거실만 유일하게 난방을 하였다. 모든 식구들이거실에서 오글오글 낮시간을 보내다가 밤이 되면 뜨거운 물통을 안고 싸늘한 침실로 들어가 털양말을 신고, 털모자까지 쓰고 잤다.

그런 전통 탓인지 오늘날에도 독일에선 보편적으로 침실에 난방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밤에 잘 때 난방을 하면 공기가건조해져서 감기에 걸리기 쉽다고 믿는다. 윗집 할머니는 겨울에 푹신한 오리털 이불 위에 담요를 덧덮고 모자까지 쓰고는 코만빨갛게 내놓고 누워서 창문을 좀 열어 놓고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는 않지만 나도 오랜 독일생활에 습관이 되어 침실은 난방을 하지 않는다. 침실이 따뜻하면 숙면을 하지 못하고 자주깨어 이불을 덮을까 젖힐까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추운 겨울 밤에 침대에 들 때의 섬뜩한 느낌은 싫어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 책이라도 한 줄읽을라치면 이불 밖으로 나온 손이 시려워서 책을 한 손으로 번갈아 잡는 일이 수고스럽다.

한동안 나는 전기요를 무척 애용했다. 냉냉한 침실의 공기를 호흡하며 절절 끓는 온돌방같이 따스한 침대속으로 쏙 들어갈 때마다 “아으 아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물론 잘 때는 끄고 자야 잘 잔다.

그러다가 내 사랑 전기요가 고장이 났다. 남편은 고장난 것은 뭐든지 다 제 손으로 고쳐야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일이던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사람이라서 우리집 전기요는 고장난 채로 몇 년 동안이나방치되었다.

내가 대단히 아쉬우면 난리를 쳐서라도 금방 해결을 보았겠지만 난 그 당시 전기요가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그 무렵우리집이 사춘기 딸의 반항으로 인해 그리 춥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고갈의 시기를 맞아 겨울의 실내온도를 섭씨 18도 이하로유지하고 싶어하는 남편에 대항해서 사춘기에 돌입한 딸아이는 평범하게 살 권리를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왜 자기는 하필이면이런 집에 태어나서 남들이 다 즐기는 휴가도 꼭 자전거로 다니면서 고생을 사서 하고, 겨울에는 아침에침대에서 나오기도 싫도록 춥게 살아야 하는지, 아빠는 무슨 권리로 자식들에게 자신의 인생관을 강요하는지 조목조목 따지며반항했다.

부모 자식 사이에서 권위보다는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 부부는 아이를 설득하고자 했지만, 번번히 딸아이의 말빨에밀려 결국 실내 온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딸아이가 심경변화를 일으켜 자발적으로 환경운동에 앞장 서게되었다. (에너지절약에 관하여 우리집에서 애비와 딸 사이에 벌어진 막상막하의 논쟁은 내가 봐도 참 재미있는데, 한달 후에 출간될책에 시시콜콜 적었으므로 자꾸 우려먹기 민망하여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리하여 우리 딸은 사춘기의 청소년답게설익은 풋사과의 단호함으로 우리집 실내 온도를 하루아침에 섭씨 20도에서 18도로 뚝 떨어뜨렸다.

재미있는 것은, 예전에는 집이 춥다고 9월부터 털모자에 목도리를 두르고 식탁에 나타나 데모를 하던 애가 이제는 한겨울에도춥다는 소리는 커녕 반팔 티셔쓰를 입고도 호기롭게 집안을 활보하는 것이다. 예전에 부당하게 강요 받는다는 느낌이 있었을 때는마음이 추웠던 모양이고, 이제 스스로의 결정이라 생각하니 젊은 피가 펄펄 끓어 하나도 춥지 않은 모양이다.

그에 반해 중년기도 무르익어 노약기에 접어들려고 하는 우리 부부는 손을 호호 불면서 견딘다. 섭씨 18도에선 내복을 두텁게입어도 책상 앞에 가만히 오래 앉아 있으면 좀 추운 건 사실이다. 특히 밤 10시면 그나마 난방을 중단하므로, 내가 뭘 쓰느라고밤늦게까지 시간 가는 걸 잊다 보면 발이 어느새 얼음장처럼 싸늘해져 있다.

그 발을 해가지고 차가운 침대에 들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멀리 달아난다. 나를 구원해 줄 전기요도 아직 고장난 채로 쳐박혀있겠다, 궁여지책으로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쓰던 물주머니를 기억해냈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밤이면 아이들 침대에 물주머니를 넣어주었다.

우리는 큰 아이가 대여살이 될 때까지 온 가족이 한 침대에서 같이 잤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그것을 즐겼으므로, 그게교육적으로 나쁘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우리를 콧등으로도 안 들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어느날 자기네들도 다른 집 아이들처럼어린이방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길래 그날로 우리 부부는 그 방에서 이사 나와 어린이방을 만들어 주었다. 부모의 온기가 빠져버린침대에서 혼자 자면서 행여 마음이 허전할까 봐 (그래서 다시 우리 부부침대로 쳐들어올까 봐) 나는 아이들의 침대에 따스한물주머니를 넣어주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시간과의 전쟁이라, 처음에는 물을 끓여 고무주머니에 넣는 시간을 절약해 보려고 별꾀를 다 썼다. 전날에 사용한 물이 들어 있는 물주머니를 전자렌지에 넣고 왱 돌리다가 물주머니를 몇 개나 녹여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전자렌지만 멀리하면 “메이드 인 저머니” 물주머니는 얼마나 튼튼한지. 우리 아이들이 쓰던, 분홍과 하늘색 천으로씌워진 고무주머니는 10년도 넘게 건재하다. 한번도 물이 샌 적이 없다. 끓는 물을 반 쯤만 넣고 지긋이 눌러서 공기를 뺀 후에 뚜껑을 돌려서 막아주면,베고 자고 깔고 앉아도 끄덕 없는 것이 얼마나기특한지 모른다. 고무도 수명이 있을 텐데 우리 물주머니가 대체 몇년이나 더 버텨줄지 나는 신기하고 궁금하다.

한 겨울에도 난방기라고는 전혀 없는 냉랭한 침실에서 잠옷으로 갈아입고 차가운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따끈한 물주머니를 끌어안을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나는 제일 먼저 가장 차가운 발 밑에 두고 이리저리 굴린다. 조금 있으면 종아리가 샘을낸다. 나는 물주머니를 조금 위로 올린다. 종아리가 더워지면 허벅지로, 급기야는 엉덩이 밑에다 깐다. (남편의 이론에 의하면지방분은 단열성이 높아서 엉덩이 피부가 차가운 거란다.) 물주머니는내 몸의 이곳 저곳을 달래주면서 점점 위로 올라와서 마지막으로 목덜미와어깨 사이에 괴어진다. 나는 물주머니를 베고 잠이 들기도 하고 다시 발 밑으로 내려보내기도 한다. 물주머니의 위치가 조금씩 바뀔때마다 내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나온다. 너무 황홀해서.

내가 물주머니랑 이렇게 친한 줄 모르는 남편이 지난 번에 내가 감기 걸렸을 때 전기요를 사왔다. 남편은 자기는 전혀 사용하지않으면서도 전기요를 좋아한다. 몸에 딱 붙이고 난방을 하니 효율성이 더없이 높다는 것이다. 밧데리 문제만 해결되어 전기요로옷을 해입고 다니면 건물을 난방하는 것에 비해서 파격적인 절약효과가 있을 거라고 계산이분분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 어쩌다가 물주머니 두 개를 안고 자면 그야말로 천당에 온 것 같아서 침대 전체가 물주머니라면 얼마나 근사할까 상상했는데, 막상 전기요로 침대 전체가 따뜻해지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물주머니의 위치에 따라 종아리가 발을 부러워하고, 발이 빨리 따뜻해져서 자기에게도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맛이있었는데, 이제 전기요로 온몸이 한꺼번에 뜨거우니 아쉬운 부위도 부러운 부위도 없이 서로 무심해져버렸다. 발은 아직 시려운데등에는 땀이 나는 파렴치한 현상이 오기도 하고, 풍족할 수록 차별이 심화되어 온기에 감사한 마음을 못 느끼는 도덕불감증의 사회로 변한 것이다.

나는 다시 물주머니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전기요를 사온 남편은 섭섭한지 가끔 놀린다.

“당신은 밤 사이에 식어빠진 물주머니를 아직도 안고 있어.”
“식어빠지긴? 만져 봐. 아직도 얼마나 따뜻한가.”
“따뜻하긴? 섭씨 36도겠지. 당신은 체온으로 물주머니까지 데우고 있어.”
“내 물주머니 미워하지마. 전기를 절약하니 기특하잖아?”
“물 끓이는 데 필요한 전력이랑 전기요에 드는 전력을 계산해볼까?”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 싫어. 계산하지마. 당신 그거 계산하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런데 이 글을 쓰노라니 궁금증이 나서 남편에게 계산을 부탁했다.

물주머니에 들어가는 반 리터의 물을 끓이는 데 100Wh의 전력이 든다. 전기요를 가장 높은 온도로 1시간 동안 켜놨다가 잘 때끄고 자면 그것의 반인 50 Wh의 전력이 소비된다. 물주머니 대신 전기요를 사용하면 전기세 0.8센트(10원), 100촉짜리백열전구를 30분 동안 밝히는 전력이 절약되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내 이불 속의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들어주는 물주머니가 그정도 값어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은 기분에 따라 전기요와 물주머니를 번갈아 쓴다. 자기 전에 오늘은 어느 놈의 서비스를 받으실까 간택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특별히 호강하고 싶은 밤에는 물주머니를 대령시킨다. 따끈따끈 말랑말랑한 놈을 안고 누우면 세상에 아쉬운 게 없다. 나중에 애인생기면 물주머니를 선물해야지. 메이드 인 저머니 물주머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