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송이를 까라면 까'‘라는 한국말을 나는 독일에 살면서 알았다. 꼭 해야하는 일이라면 맨손으로라도 밤송이를 까라니 이 얼마나 투철한 프로의식인가 싶어서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했고, 한국사람들과 일할 때 칭찬이나 격려의 뜻으로 자주 써먹었다.

어느날 점잖은 남성이 내게 그 진의를 가르쳐줬다. 오, 나인! 손으로 까라는 게 아니래. 아무리 군대 용어라지만 그렇게 잔인할 수가?

그런 명령을 내리는 상관은 야심찬 성과를 향해 돌진하자고 독려하는 통 큰 지도자가 절대로 아니다. 인권과 양심을 저버린 파렴치한이고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무능한일 뿐이다.

우리 국민은 새로이 대통령이 될 사람을 뽑았다. 민주적인 방법으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간택된 당선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각양각색이다. 희망과 기대에 찬 시각도 있을 것이고 조마조마한 시각도 있을 것이다.

“선거란 완벽한 인물이 나타날 때까지 실행을 미루며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때 출마한 인물들 중에 가장 나은 인물을 하나 선택하는 것이다. 변변치 못한 인물이라도 타후보가 더욱 변변치 않으면 뽑히는 것이다. 변변히 못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대안이 없어서 뽑아줬으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다 같이 사는 길이다. 일을 습득할 시간도 주지 않고 변변치 못하다고 사사건건 방해만 하는 풍토에서는 변변한 사람이 나올 수 없고 변변한 사람도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만큼 우리의 대통령도 실력발휘를 할 수 있다. 대통령에게 월급 주면서 실력발휘를 못하게 만들면 손해는 국민이 본다.” [(밖에서 보는 탄핵과 선거, 2004.4.2)]{style=“text-decoration: underline;"}

윗글은 4년 전에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맞아 내가 쓴 글이다. 누구 편을 들기 위해서 쓴 글이 아니므로 위의 내용은 개인의 호불호를 떠나 이명박 차기 대통령에게도 엄연히 해당되어야 하는 사항이다.

차기 대통령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실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나는 그가 계획하는 정책에 미리부터 발목을 잡을 의도는 없다. 한반도 대운하에 관해서도 내가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운하를 계획하는 장소에 답사 한번 가보지 않은 내가 독일에 앉아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명박 차기 대통령이 돌아보며 운하 건설의 의지를 굳혔다고 알려진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에 관해서 믿을 만한 자료를 찾아 제공하는 일일 것이다. 한국의 건설, 경제, 환경 전문가들이 찬반의 의견을 제시할 때 국민들이 건전한 판단력에 의거해서 그 의견을 검토하려면 왜곡되지 않은, 담담한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공사기간에 대해서만 언급하기로 한다. 내게는 4년이라는 공사기간이 운하사업 전체를 폭발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뇌관이기 때문이다. 경부운하의 모델이 된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면 왜 그런지 이해가 될 것이다.

켈하임과 밤베르그를 잇는 171킬로미터의 마인-도나우 운하는 1992년에 완공되었다. 1960년에 공사의 첫 삽을 떴으니 32년 만의 일이다. (도중에 환경에 대한 우려가 높아 공사가 중단된 적이 있는데, 공사 중단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중단 기간이 12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9달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사를 진행한 라인-마인-운하-주식회사는 공사가 중단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계획하고 준비하는 데는 얼마나 걸렸는가? 공사를 시작하기 39년 전인 1921년에 라인-마인-도나우 주식회사(주주는 국가와 바바리아 주)가 뮌헨에 설립되어 구체적인 계획을 진행했다.

운하의 당위성이 이때 처음으로 거론된 것은 아니었다. 이미 793년에 라인강, 마인강, 도나우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여 유럽 대륙을 관통하는 수로를 확보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기술 부족으로 실패했다. 17, 18세기에 들어와서 오랜 운하의 꿈이 차차 구체적인 사업으로 계획되었고 적합한 수로의 위치가 연구되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1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준비를 서둘러 1836년에서 1845년에 걸쳐 운하를 건설했다. 빚더미를 떠안고 개통된 이 루드비히 운하는 기술적인 문제로 운송효과가 기대치에 못 미쳐서 그다지 활발하게 이용되지 못했다.

이를 개선하고자 1892년에 바바리아 수로교통 촉진조합(Verein zur Hebung der Fluß- und Kanalschiffahrt in Bayern, 오늘날 Deutscher Wasserstraßen- und Schiffahrtsverein Rhein-Main-Donau e.V.의 전신)이 발촉한 후 수로의 위치를 변경하고 기술을 개발하여 1992년에 마인-도나우 운하를 완공했으니 실로 100년만에 결실을 본 셈이다. 물론 중간에 두 개의 세계대전이라는 중단의 시기가 있었지만 운하 건설의 계획은 전쟁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제법 꾸준히 추진되었다.

나는 독일에서 일하는 패턴이 정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독일에 살면서 독일인들의 지나친 신중함에 질린 경험이 종종 있으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원한 일처리가 그리울 때가 많다. 하지만 독일에서 운하 건설에 그렇게 긴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일한 결과를 살펴보면, 만약에 덜 신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면밀하게 조사하고, 반대 의견을 수렴해서 총공사비의 5분의 1을 환경분야에 썼어도 운하가 건설된 후 그 지역의 동식물의 종이 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운하를 통과하는 화물운송의 양을 연간 1800만 톤으로 예상했는데, 2006년의 교통건설부 통계를 보면 624만 톤으로 예상치의 3분의 1밖에 안됐다. 그해 물이 얼어서 30일간, 홍수로 인해서 7일간 운하의 교통이 마비되었다. (하지만 독일의 마인-도나우 운하가 실패작이니 성공작이니 판단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 개통된지 15년밖에 안 되었고, 앞으로의 교통량은 유가변동 등 국제적인 에너지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오래 준비하고 정성을 들여 건설한 사업이 금방 대단한 효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은 독일인들이 특별히 모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산을 파서 물길을 만들어 강을 서로 연결하는 공사는 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고 방대한 사업인 것이다. 건축인인 나도 운하 건설에 대해서 특별히 찾아보고 공부하지 않은 한 섣불리 입을 열어 할 말이 없다. 정치가들이나 사업가들이 되니 안 되니 기분으로 왈가왈부할 일은 더더욱 아닌 것이다.

나는 한반도 대운하에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자손손 골고루 잘 사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기쁜 마음으로 찬성하고 응원할 것이다. 그러나 첫 삽을 뜨기 전에 충분한 조사와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이 행운으로 가는 길인지 재앙으로 가는 길인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에서 우선 반대부터 하고 볼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가 정말로 국민에게 자자손손 수지 맞는 사업인지 아닌지 충분히 조사하고 검토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재량에 맡겨야 한다. 특히 에너지원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어지러워 일련의 변동이 예측되는 오늘날엔 이에 대비하여 더욱 방대한 자료와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충분한 조사와 검토에 필요한 시간과 대통령의 임기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약에 조사와 검토의 시간이 대통령의 임기에 맟춰져야 한다면, 혹은 더 나아가서 공사기간까지 임기에 맞춰서 정해진다면, 그때는 그야말로 온천에서 밤송이를 까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벌거벗은 몸으로 밤송이를 깔 형편이 못 되면 밤송이를 포기하던지, 밤이 정 먹고 싶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장갑과 집게를 가져와서 안전하게 밤송이를 까야지, 급하게 까려고 들다간 까놓은 밤도 못 먹고 병원비만 날릴 뿐 아니라 자칫하면 후손까지 박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며칠 전에 이명박 당선자는 대운하 건설의 시기에 신중을 기할 것을 약속했다. 건설공사에 이해관계가 없는 분야별 전문가들에게 차분하게 조사할 수 있는 여건과 시간을 준 후에 그 결과를 수렴한다면, 행여 공약을 못 지키더라도 정도를 걸었으니 대통령으로선 떳떳한 행보가 될 것이다. 한번 말을 꺼냈다고 무조건 밀고나가는 불도저 정신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를 상대로 미세한 칩을 만들어 파는 IT강국에선 이미 덕목이 아니다.

실용의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당선자답게 군대식 뚝심이 아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국민들의 협조를 이끌어내기를 기대한다. 피곤하고 불안한 국민의 마음에 안정감을 주는 것은 너무 많은 약속을 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서두르지 않는 침착한 지도자이다.



참고자료 링크:

[Überblick über die Geschichte des Main-Donau Kanals
Main-Donau_Kanal
Rhein Main Donau Kanal
Rhein Main Donau Kanal
Main-Donau-Kanal - Wikipedia
Ludwigskanal - Wikipedia
새미래를 향하여]{style=“text-decoration: underline;"}



이 글은 2008. 1. 23일자 인터넷한겨레에 실렸습니다.
링크: [한겨레 2008.1.23]{style=“text-decoration: under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