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정의 화목’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여자치고 참 살림을 못한다. 특히, 청소를 무척 싫어해서 20년 묵은 육중한지멘스 진공청소기를 마구 끌고 다니고,

그러다가 호스가 찢어지면 누런 포장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쓰며 구박한다. 그러나 같은살림이라도 부엌용품은 대우가 다르다. 역시 20년간 사용한 묵은 일제 내쇼날 전기 밥솥의 플라스틱 다리 하나가 불에 타서 녹았을때는, 남편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나무로 의족까지 달아주었다. 길이가 맞지 않아 기우뚱하지만 “우리 삐딱이는 자세는 삐닥해도 밥을얼마나 잘 하는데.“하며 대견해한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금방 망가진 중국제 “순둥이”를 거쳐 국산 “꽃분이”에 이르기까지 나의전기밥솥은 늘 각별한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집안 청소에 비해 밥 짓는 일은 참말로 창조적이다. 집 짓는 건축활동과 비슷하게 스릴이 있다. 완성된 음식 접시를 미리 머리속에 그려놓고, 설계와 자재 구입과 노동의 수순을 밟아, 여러 분야의 공정이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게 함으로써정해진 시점에 정확하게 완성품을 내놓는다는 점이 닮았다. 그렇다고 나의 요리솜씨가 대단하다는 착각은 금물이다. 독일사람들은 내가한국음식을 잘 한다고 생각하고 한국사람들은 내가 독일음식을 잘 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장님의 세계를 드나들며 찬사를 받는 외눈의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나의 이런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종종 있으니, 그것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터지는 식품 사고다. 소, 돼지, 닭의 사육과유통에 관한 부정은 독일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우리 가족의 화기애애한 식사시간의 대화가 이런 테마로 흘러가면 그야말로 밥맛이떨어지는 노릇이다. 식구들 맛있게 먹으라고 정성껏 요리하는 내 입장에선 이중으로 손해다.
“썩은 고기로 반조리 음식을 만들어 파는 업체가 적발됐대.”
“우엑, 밥맛 떨어진다. 어디 제품이야?”
“글쎄, 언론에서 그걸 공개하지 못 한다는 거야. 법적으로 걸린대나? 옛날에 상한 달걀로 파스타 제조한 업체 이름이 언론에공개된 적이 있잖아? 그때 그 업체의 고발로 언론이 벌금까지 냈다는군.”
“아니, 불량업체를 소비자에게 감춘다는 게 말이나 돼? 정부에서 국민이 주는 월급 받으면서 일을 그렇게 데데하게 해도 되는건가?”
“농부연합의 로비가 막강해서 그래.”
“그럼 이젠 고기와 소세지를 아예 먹지 말아야겠군. 어느 업체에서 내 밥상에 썩은 고기를 올리는지 공개하지 않는다면 불안해서고기 전체를 보이콧하는 수 밖에.”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대화를 들으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딸이 빽하고 소리질렀다.
“아유, 토할 것 같애. 밥 먹으면서 징그러운 얘기 좀 안 할 수 없어?”
잠깐의 무안한 침묵이 흐른 후에 아들이 반격을 했다.
“네가 채식주의자라고 남에게 고기 얘기도 못 하게 하냐? 너 때문에 나는 피해가 많아. 네가 채식하면서부터 우리집 식단이심심해졌어.”
“오빠는 고기를 너무 좋아해. 야만스러워.”
“남의 식성을 야만이래. 채식주의자의 횡포! “
“야만이지 그럼? 채식동물에게 동물성 사료 먹이자는데 야만이 아니야? 오빠같은 사람이 많으니까 광우병이 생긴 거라구.”

딸은 자기와 같은 채식동물인 소에게 동병상련이라도 느끼는지 마구 신경질을 냈다. 근래에 사료값이 오르자 농부연합에서 골육분사료를 금지하는 법을 풀어달라고 요청한 것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나도 혹시나 그 요청이 받아들여질까 염려스러웠다.
“참 양심도 없고 머리도 나쁜 사람들이네. 광우병이 다시 도지면 자기네들이 제일 큰 피해를 입을 텐데 그래? 난 그간 안심하고쇠고기를 먹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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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재래시장 빅투알리엔 마르크트의 정육점


독일에서 광우병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광우병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은 사라졌다. 소에게 골육분 사료를 전면적으로 금하고,위험부위를 완벽히 폐기하며, 도축검사를 철저하게 실시한 덕분이다. 독일에서 광우병은 매년 꾸준히 줄어 작년인 2007년에는 총4건이, 올해엔 아직 1건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나는 이 수치를 신뢰한다. 유럽에선 월령 30개월 이상의 소에 대하여 100%도축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선 유럽연합 기준보다 강화된 검역을 고집하고 있다. 당장 돈이 좀 들더라도 철저하고 투명하게 대처하는길만이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길이고, 소비자의 신뢰가 곧 경제성이란 이치를 배운 까닭이다. 1997년에 광우병이 처음발견되었을 때 정부와 농부연합에선 쉬쉬하며 감추려고 들었고, 이에 소비자들은 아예 쇠고기를 안 먹는 것으로 대응했다. 독일에서 쇠고기시장이 완전히 무너진 후, 완벽하게 투명한 정책을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되돌리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내가 채식 하면서 우리집 식단이 양심적으로 변했다는 거 인정해주기 바래. 우리집의 고기 수요가 팍 줄었잖아?”
딸이 계속해서 시끄럽게 빽빽거리자 남편이 역성을 들었다.
“그래, 그래. 세계적으로 식량파동이 오고 있는데 잘 사는 나라에선 고기라도 덜 먹어야지. 한 사람 먹을 분량의 고기를 생산하기위해서 일곱 명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을 가축에게 먹이는 거거든. 그리고 가축은 지구온난화 현상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공장이나마찬가지야.”
아들은 동생 역성을 드는 제 아빠가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 말에는 공감이 가는지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자기 접시의 라자니에를 헤적여 간고기 대신 들어간 메주콩 조각을 포크로 콕 찍어 들어보이며익살을 떨었다.
“오예, 식량파동 시대의 라자니에! 오리지날 이태리 마마표 라자니에가 아닌, 한국 옴마표 메주콩 라자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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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콩으로 만든 간고기 대용식품. 오른 쪽은 봉지. 간장과 마늘, 후추로 양념해서 물 약간 부어 보르르 끓여 10분 놔두면간고기 볶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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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채식주의자가 되기 전에 우리는 간혹 이자 강변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밖에 나가면 남자들이 요리를 하는건 만국공통인가 보다.

(지난 글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글입니다.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작년 2008년 7월 레몬트리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