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사는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다.

그가 연설하는 것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고, 그의인간적인 매력이나 단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그게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이, 그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그의노선과 공과에 의해서만 판단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선과 공과로 치자면 그는 내게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희망을 준 대통령이다. 외국 생활 35년 동안 우리나라가 가장자랑스러웠던 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시기였고, 그는 우리나라를 조무래기 졸부국가에서 정신적인 선진국으로 승격시킨사람이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내가 살고 있는 서유럽의 기준으로 볼 때 언론의 자유, 인권의 향상, 기회의 평등을 지향하는나라는 단연코 선진국이다. 그렇지 않은 나라는 암만 돈이 많아도 후진국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손꼽히게 가난한 나라였을 때도 난 내가 한국 사람임을 부끄러워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한국병으로 통칭되는권위주의와 파벌주의는 정말 절망스럽게 여겼다. 이놈의 권위주의와 파벌주의는 도대체 우리나라 역사의 어느 시대부터 뿌리를박았는지, 인간의 힘으론 도무지 극복하지 못할 후진국형 망국병으로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손을 잡고 이를 극복하기 시작했을 때, 난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그것을기대하고 밀어주는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진정으로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나라를 진정한 선진국의반열에 들게 하여 해외 동포로 하여금 현지 외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조국 얘기를 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치가 자칫한심하더라도 일시적인 실책일 뿐이지 우리나라의 총체적 수준이 낮아서 그런 건 아니라고 남에게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게된 것은 그덕분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기대치가 다르니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도 다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권위주의와 지역주의를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인권을 중시하고, 과거사를 바로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줄것이다.

그가 갔다. 그의 삶에 대해 얘기했으니 이젠 삶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말할 차례다.

그가 검찰의 조사를 받기 시작했을 때, 역대 대통령에 비해선 약소한 금액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핑계 대기 시작하면 끝이없다고, 사실대로 다 파헤치는 것이 검찰과 언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부터 그렇게 다 밝혀야만 나중에 29만원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BBK 건으로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말 바꾼 사람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밝혀지는 날이 올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가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간 내가 무심코 그를 29만원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나 BBK 건으로 말 바꾼 사람과 같은 반열에 두었음을 깨닫고 심히 무안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무안을 넘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가 부끄러워서 자살한 단순한 사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면서였다. 검찰의 표적 수사, 망신을 주기 위한 언론 플레이, 심지어는 그와 가까운 사람들을 탄압하는 방법으로 그를압박했다는 의견을 접하고, 그런 상황에선 나라도 자살했을 것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을 보며 난 정말로 미안했다.

인간 노무현의 됨됨이를 알지 못하는 내가 그를 무조건 믿어주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치더라도, 난 왜 그동안 언론이 흘리는소리를 곧이 곧대로 믿었을까? 그가 몇억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말했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나는 그냥 다 믿었다. 장자연사건,삼성 떡값, 용산 사태에 대해서는 검찰과 언론을 철저히 불신했으면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에 대해서는 그냥 다 믿었다. 참이상하다.

아니,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 마음속엔 “그놈이 다 그놈일지도 모른다”라는 의심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우리의 정치경제계가 부정부패 일색이었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나는 아직도 이 사건의 진실을모른다. 검찰과 언론을 믿을 수 없는 나라에서 나같은 사람이 진실을 안다면 모순일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상관없다. 인간 노무현을 사랑했거나 미워했던 사람들과는 달리, 멀리서 그의 공과만을 따져 판단하는 나에게 유일하게 중요한진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룬 역사적 공적이고, 그것은 나중에 일어나는 어떤 일로도 폄훼되지 않는다.

그의 삶은 내게 우리나라에 대한 희망을 선사했다. 그의 죽음은 내게 그 희망으로 가는 구체적인 길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수많은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 싹을 틔운 그 희망은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희생 없이는 꽃피울 수 없다는 것을 나는그의 죽음을 통해 배웠다.

그의 삶과 죽음이 둘 다 헛되지 않도록 난 앞으로 좀 더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로 스스로 약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