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마초라서 속상해요. 딸은 한국 남자 말고 서양 남자랑 결혼했으면 좋겠어요.“
처음 만난 독자의 푸념에 나는 펄쩍 뛰었다.
“어이구, 그런 말씀 마세요. 독일 남편은 뭐 살가운 줄 아세요? 게다가 쪼잔하기가 한국 남편 저리가라예요! “

결혼 25주년의 은혼을 코 앞에 두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설 법한 나이가 되었는데도 나는 아직도 남편 얘기라면 눈이 반짝이고 말이 빨라진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사랑스럽다고 자다 말고 배시시 웃다가도, 남편이 세 번만 연달아서 내게 상처 되는 소리를 하면 밴댕이 소갈딱지에 활활 불을 붙여 이혼이란 극한상황까지 쉽사리 떠올린다.

애초에 남편과 함께 늙을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혼이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언젠가 사랑이 식으면 떠나야 한다고 믿었다. 인간의 가장 파격적이고 창조적인 위력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믿는 사랑예찬론자인 내게는 단순히 제도와 타성에 의해 유지되는 결혼생활이란 사랑에 대한 모독이었다. 아무리 오래 함께 산 부부라도 사랑의 불씨를 잘 가꾸어야 하고, 그러기 싫으면 가차없이 떠나는 것이 사랑에 대한 예의라는 나의 지론은 자식들이 태어난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그에 반해 남편은 사랑이고 나발이고 다 종족보존을 위한 감정의 장난일 뿐이고, 세상 남녀가 다 거기서 거기일 뿐이니, 한번 결혼했으면 대충 맞춰가며 사는 것이 개인에게 속 편하고 인류를 위해 이익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모든 면에서 나와는 상극 중에 상극으로서 꼭 내 인생관에 모욕 주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우리에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그가 악착같이 가정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도 그간 내게 투자한 감정과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 것 같다. 손해 보기 싫어서. 이혼하면 아무래도 신경도 더 쓰이고 돈도 더 많이 드니까.

우리는 남들에 비해서 아주 늦게 집장만을 했다. 그것도 우리가 당장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은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10년 후에나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를 싸게 사서 다달이 은행빚을 갚고 있다. 매매계약서에 싸인하러 가는 날, 남편이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겁을 줬다.
“이봐, 지금 우리는 인생의 기로에 서 있어. 이 시점부터 당신은 인생관을 바꿔야 해.“
“어머, 집 사는데 왜 인생관을 바꿔?“
“이제부터 우린 은행에 큰 빚을 지게 돼. 이 상태에서 이혼하면 생활비를 나눠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빚을 갚지 못해서 집을 날리게 돼. 그게 얼마나 큰 돈인지 알아? 우리의 인생은 끝장나는 거라구.“
“아유, 기분 나쁘네. 이혼한다고 끝장나는 인생이 어딨어?“
“앞으로는 돈 때문에 절대로 이혼하지 못한다는 거 당신에게 미리 말해 두는 거야. 이혼할 생각이 있으면 지금 당장 하라구. 싸인하기 전에.“
그날 우리는 정말로 이혼할 뻔했다.

서로 상극인 우리 부부는 살면서 하도 많이 부딪쳐서 두 사람의 이마에 난 뿔이 둥그렇게 닳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끝까지 가시처럼 남아서 상대방을 긁은 것은 돈 문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부부는 다른 건 몰라도 돈에 대해서는 자유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자식들을 잘 키우고 우리의 인생을 여유롭게 가꾸기 위하여 돈 대신 시간을 선택하는 인생을 살았다. 돈이 되는 일보다 엄마 아빠로서의 시간이 넉넉한 일을 선택하려니 남편도 나도 출세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돈을 더 버는 대신 돈을 안 쓰는 습관이 우리 가정에 자리잡았다. 물 한 방울 양파 한 알도 아껴서 쓰고, 케익 한 조각도 꼭 나눠 먹는다. 웬만한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이런 경제관을 그 누구 앞에서든 떳떳하게 드러내며 살아온 우리 부부가 안으로는 돈 문제에 민감하다니?

아무래도 내겐 컴플렉스가 남아 있는 것 같다. 남보다 오랜 시간을 공부에 투자한 전문직 여성으로서 자기 가정 하나 먹여살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내심 부끄러워하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나보다 돈을 더 잘 번다는 사실에 배가 아파서 “번듯한 직장에서 다달이 월급을 받아오는 남편 너는 그래도 나보다 희생을 덜 한 편이 아니냐”고 유세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여성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일 게다.

그런 나의 속도 모르고 이 사람은 무슨 억하심정으로 내게 대고 돈, 돈 하는 걸까? 나는 돈이 부족하다고 불평한 적도 없고, 남편에게 지금 버는 돈도 다 못 쓴다며 일 더 하지 말라고 말리는 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인생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도 남편은 돈 걱정을 사서 한다. 그는 우리 세대의 노후가 대단히 열악할 것이라고 점치고 있고, 경제대란이 닥쳐서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가 갈릴 적에 우리가 패자에 속하게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아니, 돈이 그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으면 당장 나가서 땅이라도 파야지, 왜 집안에 앉아서 마누라 속이나 긁고 있냐?

나는 남편이 돈 걱정을 사서 하는 이유를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두 번씩 동네 댄스학원에 춤을 배우러 다니는데, 그날도 우리는 손 잡고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우리는 언제까지 춤출 수 있을까?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왜? 나 죽으면 당신은 금방 좋은 여자 만나서 계속 춤추며 살텐데.“
“당신 빼고 어느 여자가 날 좋다 그러냐?”
“어머, 나 죽으면 당신 앞에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당신이야 최고 남편감이지.“
무심코 한 소리인데 남편이 반색을 하며 이유를 묻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종알종알 주워섬겼다.
“잘생겼겠다, 돈 잘 벌겠다.“
나는 좋은 남자의 덕목이 잘생기거나 돈을 잘 버는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입에 올리는 것이 낯간지러웠지만 심각하게 인생관을 논하는 자리도 아니라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경박한 인생관을 가진 여자라고 핀잔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 가슴이 앞으로 쑥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날 남편은 얼마나 춤도 잘 추고 내게 서비스가 좋았는지 모른다. 긴가민가 해서 나는 그 이후에 같은 말을 또 해 봤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어깨를 쭉 펴고 벙글벙글 웃었다.

이게 무슨 조화람? 남편은 남편대로 자기만의 컴플렉스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현대의 산물인 “수퍼우먼 컴플렉스”를 앓고 있다면, 남편은 구석기 시대에 처자식을 먹여살렸던 “사냥꾼 컴플렉스”를 앓고 있었다. 현대 여성인 나는 남편에게서 구석기 시대 사냥꾼의 역할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유전자의 지배를 받아 본능적인 불안감에 시달렸다. 이 본능적인 불안을 잠재운 것은 그간 내가 입이 닳도록 말해온 “당신은 돈 잘 벌 필요 없어 - 당신은 사냥꾼이 아니야”가 아니라 “당신은 돈을 잘 벌어 - 당신은 힘세고 사냥 잘하는 수컷이야”라는 말 한마디였다. 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훌륭한 수컷”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그는 비로소 안심했던 것이다.

유전자의 지배를 받기로는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나를 먹여살릴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유전자를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나의 “수퍼우먼 컴플렉스”는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향한 것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오로지 남편 한 사람이 나를 능력 없는 여자라고 생각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사냥꾼에게 버림 받아서 자식들을 굶겨죽일까봐 전전긍긍하는 구석기 시대의 동굴녀처럼. 그래서 남편의 본능적인 생존의 불안이 내 귀에는 “너도 다른 여자들처럼 돈 좀 벌어 와라”는 돈타령으로 들렸다. 내 인생을 살기 좋게 바꾸어주신 법륜 스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사람은 자기 업장에 따라 그렇게 행동한 것일 뿐이고, 나는 나의 업장에 따라 그렇게 반응한 것일 뿐 서로 시비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시비하며 상처를 주고 받는다.

한때 내가 남편의 돈 소리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하던 때가 있었다. 한반도 대운하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알량하던 나의 수입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 이후로 대폭 줄었다. 한국 정부에서는 사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느라고 독일의 하천정책에 대한 정보를 많이 왜곡했으므로 나는 잘못 알려진 정보를 바로잡는 글을 써서 한국의 언론에 자주 발표했다. 이때 나는 지식과 정보를 저작권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퍼뜨리기 위하여 언론사에 원고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또한 다른 글을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몇몇 출판사와 의논되었던 출간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고, 기타 돈 되는 원고를 통한 개인적인 수입원도 전부 끊었다. 남을 설득하려면 이 정도의 개인적인 희생은 당연한 일이라 여겼다.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난 쪼잔한 남편이 속으로 불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편이 돈 얘기를 하면 내쪽에서 지레 가시를 세웠다.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정부에서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한다고 선언했을 때 남편은 한국에서 하마터면 운하 건설로 허무하게 날렸을 뻔한 큰 돈이 굳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기며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한국은 큰 돈 벌었네. 당신은 그간 돈 한 푼도 안 받고 글을 써서 알렸는데, 이거 불공평한 거 아닌가?”
이때 남편을 빼닮은 아들이 빙긋이 웃으며 참견했다.
”아니지, 아빠. 그게 옳은 거야. 엄마는 이 일로 인해서 한 푼도 이익을 보면 안 되는 사람이거든. 앞에 나서서 반대한 사람이 그 일로 돈을 벌면 앞으로 누가 그 사람 말을 믿겠어?“
남편은 괜히 농담했다가 아들에게 무안만 당했다. 농담하면서도 돈, 돈 하더니 쌤통이다. 우리집에서는 한번 정리된 사안은 계속해서 통한다. 아들 덕분에 나는 그날 이후로 원고료에 대한 부담감을 깨끗하게 덜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정부에서는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한다고 하더니 넉 달 후에 똑같은 설계를 내놓으며 이제는 4대강사업이라고 했다. 독일 하천에 대한 정보는 한국 정부에 의해 더욱 대담하게 왜곡되었다. 나는 다시금 매달렸다. 글 하나를 제대로 쓰기 위하여 공신력 있는 독일 자료를 수없이 찾아 읽고 독일의 하천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때마침 개인적으로 바쁜 때여서 내가 밤잠을 줄여가며 4대강사업에 매달리는 것을 보고 남편은 나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남편이 화를 내며 정식으로 나를 말렸다.

“한국 사람들이 자기 돈으로 자기 나라 땅에서 공사한다는데 당신이 왜 참견이야? 이런 식으로 거품 성장을 유도하고 정권을 유지하는 정경유착의 오랜 풍토를 당신이 어떻게 바꿀 수 있어? 되는 일을 해라, 이 돈키호테야.“
“환경과 미래를 팔아 정권을 유지하는 토건국가로 남아있다가는 언젠가는 재앙이 크게 터진다는 거 당신은 몰라?“
“알지. 그렇지만 그 고리를 끊는 일은 커다란 희생을 요구해. 한국 사람들이 그걸 차마 자신의 세대에서 이룰 자신이 없어서 자식 세대로 넘기겠다고 결정하면 당신이 그걸 어쩔 수는 없는 거야. 그 희생의 대가는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그건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결정할 몫이야. 당신은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그 땅에 살면서 희생을 함께해야만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
남편의 말에는 틀린 것이 없었다. 남편에게 말로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사고를 정리하고 판단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후에 입을 열었다.
“내 목적은 4대강사업의 반대에 있는 게 아니라 진실을 알리는 데 있어. 독일 하천공사의 실패사례가 한국에서 본받아야 할 성공사례로 둔갑하여 국민을 속이는 상황을 바로잡는 일, 딱 거기까지가 해외동포로서 내가 할 일이야. 한국 국민들이 4대강사업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제대로 안 후에도 4대강공사를 계속하겠다면 그때는 나도 상관하지 않겠어.”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에 수긍했는지 눈빛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남편은 한마디 궂은 소리 없이 나를 도와줬다. 일하고 와선 집안 살림까지 도맡아서 내가 돈도 안 되고 성과도 없는 글을 꾸준히 쓸 수 있도록 독려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그 대학에서 한국의 4대강공사를 예로 들어 역행침식(두부침식)현상을 연구하는 세미나가 열렸을 때 남편은 회사에 결근계를 내고 새벽 기차를 타고 가서 동영상을 찍어왔다.

이제 나는 4대강사업 덕에 남편에게서 나의 인간성을 인정받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동굴녀의 본능이 충족되니 “수퍼우먼 컴플렉스”가 치유되는 느낌이 든다. 오래 전에 물리학 강연회에 갔을 때 남편이 쟁쟁한 대학교수들에 홀로 맞서서 원전 반대를 주장하는 모습에서 난 이미 힘차고 야성적인 사냥꾼을 보았다.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가끔씩 엉뚱하게 돈타령이나 하는 남편은 바보다.) 동굴녀인 나는 남편과 의견을 맞춘 일이면 세상이 다 반대해도 확신을 가지고 추진할 수 있다.

상대방이 양심을 지킬 수 있도록 격려하는 행위도 어쩌면 사랑인지 모른다. 파격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이끌어내니까. 동굴녀와 사냥꾼의 본능을 충족시켜주니까. 그런 사랑이라면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함께 늙을 가능성은 우리에게 시련이었던 4대강사업 덕분에 더욱 커졌다.

하지만 깨달음과 실천은 별개의 문제인지 우리 부부는 중생답게, 별로 우아하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다. 어느날 밤, 욕실에서 와장창하고 뭐가 엎어지는 소리가 났다. 평소 같으면 쫓아가서 떨어진 물건을 같이 치우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우리는 마침 냉전 중이라 나는 “쌤통이다, 너 혼자 치워라” 하고 모른 척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돈, 돈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 그놈의 집 확 팔아치울까부다. 요즘 내가 돈 못 번다고 유세하는 거지, 너?“하며 씩씩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깜빡 잠이 들려고 하는데 “혜지야, 나 좀 돌봐 줘.“하는 절박한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눈을 떠보니 남편이 이마에 피를 흘리며 허청허청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가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더라고 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그 요란한 소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였단 말인가? 아이고, 가엾어라. 그러다가 남편이 죽어도,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고소하다면서 쿨쿨 자고 있었을 거 아닌가? 사냥꾼과 함께 지켜온 나의 동굴, 나의 세계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나는 내 안에 난 상처만 들여다 보며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이다.

이튿날 남편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 열심히 계산하더니 무표정하게 말했다.
“우리 은행빚 거의 다 갚았더군. 당신 돈도 없이 혼자 살려면 집이라도 있어야지.“
나는 눈물을 참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난 남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집부터 팔아서, 남은 시간을 남편과 함께 근사하게 보낼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샨티 출판사에서 곧 출간될 “결혼을 앞둔 후배에게 주는 글” 단행본에 들어가는 글입니다. 제 책이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저자들이 사랑 얘기 한 편씩 써서 묶어서 내는 거래요. 제목도 최종적으로 어떻게 정해질지 저도 잘 몰라요. 아무리 사랑 얘기라 해도 4대강사업과 관련된 글이라 제가 개인적으로 널리 알리고 싶어서 출판사의 허락을 받아 올립니다.

좋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뮌헨은 하늘이 파랗고 화창한 봄날이네요. 한국 생각을 하면 방사능 때문에 날씨가 좋아도 걱정, 나빠도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