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하여 독일 대통령을 만나는 그 시간에 대통령궁 밖에서는 한국 교포들이 사대강공사/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집회신고를 하고 시위를 준비한 사람은 평소에 정치나 시사에 관심 없이 살던 평범한 여성분입니다. 재독한인 사이트인 베를린리포트에 그 분의 시위후기가 올라왔기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소개해드립니다.

베를린 4대강/원전 반대시위 후기 (베를린리포트에 목로주점님이 올린 글)

**
**

2011년 5월 9일 아침은 청명하고 상쾌한 날씨였다.

전날인 5월 8일 몇 안되는 인원이 피켓과 플래카드를 준비하느라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였지만 그래도 맑은 날씨 덕에 그리 피곤하지는 않았다.

작업량을 줄이기 위해 나는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본 한국식의 디자인된 작은 피켓을 인쇄하여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그림1) 사진으로 찍히니 예쁘더라 하고 주장하며..



<그림 1>내가 제안한 디자인형 시위피켓, 11년 3월 대구의 “낙동강 생명평화미사”에서

그런데 안된단다. 이유는 멀리서 MB가 봐야하는데 저렇게 작으면 뭐가 쓰여 있는지 안보인다고… 그러나 손으로 쓰면 미적효과가 떨어지므로 컴으로 글자를 크게 출력하여 오려 붙이기로 하였다. 아, 정말 손발이 고달픈 작업이었다. (그림2)



<그림2> 베를린 5월 9일 시위 (촬영: Tsukasa Yasima)

그리고 전단을 만들었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되도록 표현하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국어와 독일어와 그리고 관광지인 시위장소의 특징을 감안하여 영어까지 3개국어로 작성하여 수정하고 오자를 찾아내고 다시 검토하고… 장난이 아니게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 작업이었다. 외국어에 능숙한 최고 학력자들이 달려들어서 시간에 쫒기며 종일 작업하였다.

남한지도에 원자력발전소를 표시하는데 그 갯수가 너무 많아 끼어 넣는 고민이 필요하였다. 나도 어느 틈에 원전이 21개씩이나 되었나 하였는데 이번에 알고보니 7개가 건설중이고 계획된 것까지 합하면 앞으로 무려 34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어제 보니 일본은 원전증설을 백지화하였다는데 우리나라는 정말 새계 최대 원전강대국으로 가려는가? (그림 3)

 


<그림 3> 남한의 원전위치 노랑표시-가동중/ 빨간표시-계획 (촬영 : Benjamin Hiller)

평소 MB의 개발정책에 찬성하시는 한 아저씨 입에서는 이 지도를 보자마자 “아니, 이게 다 경북, 경남이네!” 하는 첫마디가 새어나왔다. 그 분 고향이 경북이였던 것이다. 고향땅에 다닥다닥 세워진 원자력발전소를 보자 갑자기 걱정이 되시는 듯했다.

준비한 사람들은 9시 집합이었으나 출근시간대라 길이 막혀 좀 늦게 도착하였다. 체구가 듬직하신 독일 경찰 아저씨가 기다리다 내게 서류를 내밀며 서명을 하라고 시킨다. 내가 도착하지 전에는 시위가 시작될 수 없는 거라는 설명과 함께 시위 시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가두행진의 행로를 구체적으로 상의하고 본격적으로 시위 진영을 갖추었다.

대통령궁의 대문이 창살이어서 그 안쪽이 훤히 다 들여다 보였다. 저쪽에서도 우리가 훤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왠지 즐거웠다.

그런데 갑자기 웬 사람들이 와서 갑자기 대통령궁이 잘 안보이게 되었다. 아저씨, 저리 좀 비켜주셔요. 우리가 잘 안보여요! (그림4, 그림5)



<그림 4> 아저씨들, 그렇게 자전거 도로 위에 서계시면 안되요!(촬영: Hiller)



<그림 5 > 아줌마, 햇살이 부드러운 봄날 아침에 왠 양산은? 햇볕이 부족한 독일땅에서 양산 쓴 사람 본 것은 아줌마가 첨이네요.(촬영: Hiller)

잠깐의 일이었지만 우리는 대통령차량을 잘 볼 수 없었다. 저 양반들 덕에 우리나라 각하께서 궁으로 들어가시며 우리의 피켓을 못 보셨으면 어떻하지? 그렇다고해도 각하, 부디 독일대통령 안에서 원전이 깨끗한 친환경에너지니 운운하는 무식한 소리는 자제해 주셔요. 국격이 떨어집니다.

밖에서 간단한 환영 예식을 마치고 모두 건물 내부로 들어가 안보이게 되었을 때 우리는 가두행진을 시작하였다. 길가던 독일 학생들이 공감하여 동참해주어 우리 일행은 50여명으로 늘어났다. 와- 난 잘하면 열명이나 모일까 걱정하였는데..

옛날 프로이센국왕의 사냥터였다는 티어가르텐 공원 한가운데로 난 대로를 따라 브란덴브르크 문으로 향했다. 한국 대통령이 독일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브르크문을 절대로 놓지고 갈 리가 없기 때문에 그 곳에서 또 한번의 조우를 기대했던 것이다. 더우기 대통령궁은 인적이 한적한 편이지만 브란덴부르크문은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장소여서 홍보에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티어가르텐 공원의 울창한 나무가 우리에게 그늘을 드리어주었다. (그림 6)



<그림 6> 여기는 숲이 아니라 베를린 도시 한복판 찻길이에요. 우리나라 세종로쯤 되는 곳이죠.(촬영: Tsukasa Yasima)

11시에 브란덴 브르크에 도착하여 다시 홍보를 시작하였는데 의외로 길가는 행인과 관광객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특히 독일 녹색당 창당멤버이며 유럽의회 의원까지 지낸 크비스토르프여사가 직접 집회에 참가하여 우리와 연대해 주신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었다. (그림 7)



<그림7>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에서 (촬영: Tsukasa Yasima)

11시 50분쯤 드디어 MB의 행열이 우리앞을 지나갔다. 나란히 열을 이룬 몇대의 검은 승용차 중 하나에 앉은 그는 우리를 보고 지나갔다. 그의 면전에서 4대강 반대를 외치다니.. 갑자기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림 8)



<그림8> 시위대를 바라보는 이명박 대통령 (촬영:Tsukasa Yajima)

그러나 아쉽게도 각하는 경호대에 둘러쌓여 멀리 떨어진 브란덴브르크문 반대편에서 그를 기다리는 베를린시장과 간단한 기념식을 가졌고 우리는 지정된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풍채좋은 독일 경찰 아저씨는 시위대가 절대로 자리를 이탈하지 못하게 하라는 지시를 받고 온 듯했다. 뭐 상관없다. 어차피 첨부터 평화시위를 계획하였고 MB가 우리를 본 이상 목적은 달성되었으니까.

브란덴부르크문 반대쪽에서 철통경비에 겹겹히 둘러쌓인 MB는 베를린시장을 만나는 둥 만는 둥 급히 자리를 떴다. (그림 9)



<그림9> 각하, 계란같은 거 안던질테니 여기까지 왔는데 좀 여유있게 구경하셔요. 그렇게 저희를 두려워하시지 마시고요. (촬영: Tsukasa Yasima)

MB 가 떠나자 독일경찰 아저씨는 우리가 길을 건너가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여도 된다고 선심을 쓰듯 허락한다. 집회에 함가한 사람들은 모두 마치 소풍나온 사람들 마냥 기뻐하며 브란덴부르크 앞으로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그림10) MB앞에서 시위를 하고나니 모두 후련한 듯. 옥외집회가 제공해주는 선물-카타르시스 효과.



<그림10> 끝까지 자리를 같이한 우리는 모두 기분좋게 시위를 마감하였다.(촬영: Tsukasa Yasima)

그러나 우리의 외침이 정책에 반영되기까지의 길이 아직 멀고 소원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허나 아무도 나서서 외치지 않는다면 정권이 궤도를 이탈해도 그것을 스스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자유롭게 나서고 모이고 주장하고 평화로이 해산할 수 있는 독일땅에서 집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 내나라 내땅이 아닌 곳에서 했다는 점이 또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지난 4월, 종교계지도자들이 서울 시청앞에서 모여 기도회를 갖자 경찰에 의해 종교인들의 가두행진이 저지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스님과 목사님과 신부님들이 뭐 그리 위험하다고 경찰을 동원하여 가로막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그림11>



<그림11> 2011년 4월 8일 시청앞 “4대강 찾기 범종단 성직자 선언 및 생명·평화 기도회”에서 경찰에 의해 저지당한 평화행진.

우리나라에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는 그 날은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