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르 강변의 풍광

유럽에서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뮌헨은 알프스 산자락에 걸려 있다. 뮌헨에서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는 뭐니뭐니해도 도심을 관통하는 이자르 강변이 아닐까 싶다.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스며 이자르 강은 평소 부드러운 옥색을 띤다. 강가엔 강물이 끌고 내려오다가 버리고 간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하얗게 쌓여 있고, 발을 거의 물에 담근 은버드나무들이 무리지어 설렁거린다. 투명한 물속엔 물고기가 왔다갔다 바쁘고, 오리떼는 먹이를 찾느라 고개를 물속에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흔들고 있다.

강변 기슭은 완만해서 사람과 동물이 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여기저기 제멋대로 생겨난 모래톱과 물웅덩이는 어른들의 휴식터가 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차가운 물에 몸을 식힌 후 뜨거운 자갈밭에 누워서 일광욕하는 젊은 연인, 개와 함께 수영하는 노인, 모닥불 피우고 소시지 구워먹는 가족, 도랑 파서 종이배 띄우고 자갈에 물감칠하는 아이, 강가에서 하루종일 노는 숲유치원 꼬마들, 생맥주를 통째로 차가운 물에 박아놓고 둘러앉은 틴에이저들… 날씨가 좋을 때도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홍수가 나서 탁한 갈색 물이 콸콸 차 올라도 사진기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런 강변 풍광은 얼핏 보면 천혜의 자연인 듯싶지만 사실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새로 복원한 인공의 산물이다. 뮌헨은 2000년부터 11년간 진행한 재자연화 공사를 통해 125년 전 이자르 강에서 사라졌던 여울과 자갈밭을 되살렸다. “이자르 플랜”이라 불리는 이 재자연화 공사는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며 한국,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등에서 오는 답사단이 끊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뮌헨은 이자르 강의 본모습을 잃었고 또 어떤 연유로 다시 복원해야 했을까?

하천 개발

이자르 강은 오스트리아에서 발원해 850m의 표고차를 두고 295km를 흘러 다뉴브 강에 합류한 후 흑해로 흘러든다. 원래는 산악하천답게 곁가지가 방만하게 퍼져 넓고 얕게 흐르는 강이었다. 물이 불어나면 옆으로 마구 넘쳐났고 홍수가 지나면 물길이 달라져 있기 일쑤였다. 옛날에는 홍수가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철따라 불어나는 강물을 위해 강 주변을 넓게 비워두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1888년부터 이자르 강바닥을 파서 물길을 직선으로 정리했다. 강기슭을 돌벽으로 강화하고 높여 강물을 가두었다. 옛날에는 이리저리 굽이치며 강변을 변형시키느라 에너지를 소모하던 강물이 이제 단단하고 좁은 통로에 갖히니 강타할 곳은 바닥밖에 없었다. 강바닥은 계속 패였고 강변 지하수계도 함께 내려앉았다. 강변에 질척거리던 토지에서 지하수가 빠져 보송보송해진 땅에 주택지와 공장이 들어섰다.

강바닥과 지하수는 해를 거듭할 수록 계속 내려앉아 20년 후에는 강바닥이 공사 이전에 비해 8-10m나 낮아졌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도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했다. 숲은 메말랐고 농사는 망쳤으며 우물을 파도 물이 보이지 않았다. 시민의 안녕이 위협받았다.

1910-1920년 이자르 강에는 다시 한번 대대적인 하천공사가 일어났다. 지난 공사의 후유증인 지하수 하강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강바닥에 200m 간격으로 50-60cm 높이의 콘크리트 단(낙차공)을 만들어 강바닥을 강타하던 물살의 힘을 받아내도록 했다. 그리하여 강바닥이 계속 패이는 현상과 그에 따른 지하수 하강은 일단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더욱 강력한 인공구조물로 피해를 막아나가는 사이 강은 본연의 모습을 점점 더 잃어버렸다. 강의 외형만 바뀐 게 아니었다. 홍수도 잦아졌다. 예전엔 강변으로 자연스럽게 들고나며 땅으로 스며들던 강물이 이제 예기치 않게 도시로 넘쳐나 인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그러자 독일인들은 더 발전한 기술의 힘을 빌려 더 강력한 둑과 보를 쌓아 이에 맞섰다.

새로운 인식과 전환

1980년대, 마침내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홍수의 증가는 바로 선조들이 하천을 개발했기 때문임을. 어떤 기술로 어떤 둑과 보를 쌓아도 홍수의 위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이 사실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인식되었다.

2000년 유럽연합(EU)은 “홍수가 증가한 주원인은 강의 직선화, 강기슭의 강화, 강바닥의 준설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2015년까지 유럽의 모든 강을 자연상태 또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되돌리는 “EU 수자원관리 기본지침”을 발표했다. “물은 사고팔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라고 못박으며 고액의 범칙금 제도를 만들어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있다. 유럽의 큰 강들은 여러 국가를 거치면서 흐르기 때문에, 강 상류의 회원국이 잘못해서 환경이 파괴되면 그 피해는 강 하류의 회원국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자르 플랜”의 탄생과 성장통

그보다 12년이나 이른 1988년 독일 뮌헨의 시의회는 이자르 강의 재자연화를 결정했다. 기존의 제방으론 점점 늘어나는 홍수량을 감당할 수 없다 는 판단과 도심 휴식공간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맞물려 새로운 홍수대비책을 모색한 것이다. 1995년 “이자르 플랜 준비위원회”가 탄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각종 시민‧환경‧정치단체들이 정부 담당부서와 함께 재자연화 공사를 준비하는 “열린 계획”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자르 강변에 거주하거나 낚시, 카누 등 강에서 취미활동을 하는, 이자르 강과 직접 관련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돌이켜보면, 이자르 강 복원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바로 이 “열린 계획”을 통해 강과 직접 관계를 가지며 사는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한 데 있다.

당시 시민들이 가만히 있다가 “열린 계획”에 초대받은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자르 강은 수많은 수력발전소에 물을 대느라고 대부분의 물을 빼앗겨서 물줄기가 앙상했다. 환경이 열악하니 이해관계가 다른 조류보호연합과 낚시협회 사이에 아웅다웅 갈등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부분의 수력발전소와 바이에른 주정부 사이에 하천사용 계약이 만료되어 신규계약을 체결하는 시기가 되었다. 조류보호연합의 니코 되링(Nico Döring) 박사는 소탐을 위해 우리끼리 다툴 게 아니라 대의를 위해 함께 뭉치자고 제안했고, 낚시협회, 카누동호회 등 이자르 강에서 활동하는 12개 단체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1993년 “이자르 동맹(Isar-Allianz)“이 발족했다. 이 동맹은 시민과 정치권을 상대로 학술적 연구에 근거한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치면서 절대 강적인 수력발전소의 로비에 대항했고, 그 결과 이자르 강은 풍족한 강물을 되찾았다. “이자르 동맹”은 이자르 강에 대한 많은 정보와 경험을 소유했고 “열린 계획”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다.

이자르 플랜 준비위원회는 “이자르 강에 새 생명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점점 커지는 홍수 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시민의 휴식을 위한 친수공간을 확장하며 강의 생태계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복원공사의 목표로 정했다.

공사구간에 따라 5-10년에 걸친 치밀하고 치열한 준비작업이 앞섰다. 2000년부터 뮌헨 시내를 흐르는 이자르 강 8km의 복원공사가 단계적으로 진행되었다. 2011년에 이자르 강에서 대대적인 완공파티가 열렸으니 총 11년 동안 복원공사를 벌인 셈이다. 계획보다 2년 더 걸렸다. 총공사비도 애초에 계획했던 2,800만 유로를 훌쩍 넘긴 3,500만 유로가 들었고, 이 비용은 바이에른 주에서 55%, 뮌헨 시에서 45% 출자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고작 8km 길이의 중형하천 복원공사를 하는 데 최고 10년이나 준비하고 11년이나 공사했으며 공사비를 7천만 유로나 초과했을까?

마지막 공사구간인 독일박물관 인접 강변에서 2년이나 공사가 지연되는 난항을 겪었다. 이곳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이기에 시민들의 이용빈도가 높았고, 강에는 100년 전에 지은 방파제 같은 인공구조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주정부가 주최한 설계공모전의 1등과 2등 수상작품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1등 안은 인공구조물을 많이 보존한 채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두었고, 2등 안은 인공구조물을 다 없애고 강변을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데 주력했고 공사비는 더 저렴했다. 이자르 동맹은 물론 뮌헨 시민들도 주민의견수렴회에서 2등 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공모전 결과를 번복할 경우 1등 수상인에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주최측은 2등 안으로 갈 경우 교각과 독일박물관이 위험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1등 안을 시민들이 원하는 생태적 방향으로 수정하는 타협안도 내놓았다. 그래도 의견을 좁히지 못하자 하천복원을 장려하는 EU 보조금이 취소되었다. 이자르 복원공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자르 동맹은 현실적인 면을 고려하여 1등 작품의 수정안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밖에도 공사기간을 지연시키고 공사비를 초과시킨 또다른 주범은 강변 땅속에 묻힌 폐기물이었다. 2차대전 후 도심의 건축폐기물 등 갖가지 쓰레기가 이자르 강변에 모두 묻혀있었다. 복원공사를 위해 이들을 파내면 일일이 분류해서 특수폐기물 처리를 해야 했다. 더구나 2차대전 막바지에 투하된 대형 항공폭탄 등 크고 작은 불발탄이 종종 나왔기 때문에 포크레인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공사기간이 늘어난 또다른 이유는 사시사철 작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물이 불어나는 봄과 여름에는 공사를 쉬었다. 설계할 때 시민에게 결정권을 주었듯이 강에게도 결정권을 주기 위해서였다. 홍수철에는 강물이 마음대로 넘치도록 했고, 홍수가 빠진 후에는 물이 어떻게 제 갈길을 만들어 놓았는지, 어느 기슭을 침식시키고 어느 곳에 퇴적토와 자갈을 쌓아두었는지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강의 의지를 복원사업에 반영했다.

복원 내용

복원 공사의 핵심은 강물이 흘러넘칠 여유공간과 자유를 주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강변을 따라 꽤 넓게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강으로 다시 내어줄 장소가 넉넉했다. 강물을 가두었던 일직선의 돌벽 인공호안을 철거해서 강물이 마음대로 강변으로 넘나들도록 했다. 물길을 빙 둘러파서 인공섬을 만들었고 물고기와 미생물의 서식처인 얕은 여울과 못이 자연스럽게 생겨나게도 했다. 강줄기 옆에 작은 도랑을 더 만들기도 하고 강폭도 넓혔다. 강폭이 넓어지면 자연히 유속이 줄고 홍수위도 낮아진다.

강기슭도 완만하게 만들어서 사람과 동물이 물과 뭍으로 편안히 오갈 수 있게 했다. 강물은 굽이치며 사행할 수 있도록 해서 강바닥을 파헤치던 물살을 약화시켰다. 그러자 강바닥에 박아놨던 낙차공은 철거하거나 자연석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이렇게 강이 주어진 공간 안에서 마음대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대신 도시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제방을 1m 높이고 폭도 두텁게 보강했다. 기존 수목은 되도록 보존하거나 부득이 없앴다면 다른 곳에 그만큼 다시 심었다.

토목, 수리, 조경, 보건, 환경분야 전문가들 뿐 아니라 주민과 강이 함께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는 세심한 과학적 검증이 선행되었다. 뮌헨공대 오버나하 수리모형실험연구소가 공사기간 내내 1:20 축소모형을 만들어놓고 여러 가능성을 시험했다. 한국정부가 4대강사업을 3년만에 완공하겠다고 했을 때 왠지 불안했던 나는 독일은 하천공사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수리모형실험연구소를 찾았다. 세계 최고의 과학박물관인 독일박물관의 창립자 오스카 폰 밀러(Oskar von Miller)가 세운 이 유서깊은 연구소에서 나는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이 연구소는 일찌기 1930년 중국 황하강 개발 당시 모형실험을 했는데, 완벽을 기하기 위해 중국에서 황하의 모래까지 운반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세심하게 실험했지만 결과가 시원찮아 고민하던 중 중대한 실수를 발견했다. 1:20 축소모형에는 황하의 모래알이 아니라 그보다 입자가 20배 고운 모래를 써야 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이 축적된 연구소의 뒷받침으로 이자르 강 복원은 별다른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강은 시민의 것

“이자르 강은 누구의 것?“이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뮌헨 시민은 “내 것!“이라 대답한다고 한다. “열린 계획”을 통해 어도 설계를 자문했던 낚시협회 회원들은 복원사업이 끝난 후에도 매일 강변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주인의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 참여의 길을 활짝 열어둔 “열린 계획”에서 나왔다. 공학적, 환경적 차원에서 그리 바람직하지 못한 선택이라도 기존 풍경에 정든 시민들의 정서적 요구는 가능한 한 수용했다. 이자르 강의 주인은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공사구간 공모전의 갈등을 종식시킨 이자르 동맹의 통 큰 양보도 주인의식 덕분에 가능했다.

이자르 강 복원공사가 철저하게 시민을 위한 사업임을 내가 실감한 것은 복원공사를 주관한 뮌헨시 수자원관리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한국정부가 이자르 강 복원사업이 4대강사업의 모델이라고 주장했을 때 나는 이자르 강 복원사업의 실체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슈테판 키르너(Stephan Kirner) 복원공사 총감독을 만났다.

공식적인 질의문답을 끝내고 가벼운 사담 끝에 나는 그간 개인적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를 털어놨다. 몇해 전 북해에 놀러갔을 때 우리 아이들이 파도타기를 배우는 바람에 파도타기 전문잡지를 들춰본 적이 있는데, 이자르 강이 유럽에서 유일하게 내륙파도타기를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기사를 발견했다. 이자르 플랜에는 파도타기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특별히 계획되어 있어 세계의 파도타기 매니아들이 이자르 플랜의 완결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내용를 키르너씨에게 들려주며 우리 아이들도 이자르 강에서 파도타기 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거 만들지 않기로 했어요.” “어머, 왜요? 뮌헨과 이자르 강이 더욱 유명해질 텐데요.” “파도타기 시설을 만들면 보드 대여장도 생길 것이고… 이자르 강이 상업화될 우려가 있습니다. 그건 복원 취지에도 맞지 않고 뮌헨 시민들에게도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아, 그렇구나!

이자르 강 복원이 4대강사업의 모델이라고?

이후 나는 키르너 씨와 다시 한번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4대강공사가 한창일 때 한국정부는 강에 보가 있어야 수량이 풍부해져서 수질이 좋아진다고 주장하며 이자르 강 속에 뭔가 층이 진 것이 보이는 사진을 모델로 제시했다. 나는 키르너 씨에게 그 구조물의 정체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사진의 구조물은 보가 아니라 바닥이 패는 것을 막기 위한 낙차공이라고 설명했다. 복원 후의 이자르 강폭은 최대 150m로 옛날의 110 밖에 안 되어서 예전처럼 넓게 퍼져 흐르면서 힘을 분산시킬 공간이 없기 때문에, 강바닥의 침식을 막는 낙차공들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물고기가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예전의 낙차공 대신 자연석을 이용해 듬성듬성 층지게 해서 자연에 가깝게 만들었다고 했다.

나는 또 물었다. 한국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이자르 강에 정말 보가 있어서 물이 깨끗한 것이냐고. 그는 이자르 강물이 깨끗한 이유는 이 강과 지류를 통틀어 100% 정화된 깨끗한 물이 유입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덧붙이길, 보는 물의 흐름을 가로막아 수질을 악화시킨다고 했다. 강물을 자연스럽게 흐르게 두어야 강 안팎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그로 인해 물의 자정능력이 가동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이것은 이미 30년 전에 정리된 하천상식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민망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국의 4대강사업이 염려되어 이것저것 자꾸 물어보았다. 그를 인터뷰한 후 나의 의문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우리나라의 자연형 모래강은 그 자체로 이미 이자르 복원공사가 목표하는 모습인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왜 복원한다는 것인지, 두 사업의 공통점이 과연 있기나 한지…

2011년 9월 15일 독일의 지역공영방송인 바이에른 3TV에서 이자르 강의 성공적인 복원을 알리는 소식을 전했다. 프로그램은 강과 시민이 유쾌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 후 이런 말로 마무리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최근까지도 자연에 담을 쌓아 막고 아스팔트를 깔고 시멘트를 치면 자연을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오판이었죠. 겨우 8km 강 구간을 재자연화하는데 3천5백만 유로가 들었고 꼬박 11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선례는 새로워진 이자르 강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경고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런 파괴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다시 복구해야 할 숙제를 후손에게 떠넘기고 있지 않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 맺음말 직전에 이자르 강 복원사업을 진두지휘한 클라우스 아르체트(Klaus Arzet) 뮌헨 수자원관리국장이 소개되었다. 뜻밖에도 그는 한국의 4대강사업을 거론하는 게 아닌가. 심명필 4대강살리기 추진본부장을 이자르 강으로 안내한 바 있는 그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은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마 우리가 돈이 넘쳐나서 쓰고 싶어 안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논의가 지배적이거든요. 한국사람들은 우리가 옛날에 했던 식으로 자기 나라 강을 뜯어고치려고 합니다.” (방송국 녹취록 번역: 번역연대)

후일담

방영 한 달 후, 아르체트 국장은 한국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4대강사업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의 인터뷰 기사가 한국언론에 실렸다. “이자르 플랜과 4대강사업은 하천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며 “4대강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독일말로 번역해 그에게 보내주며 한국에서 이 말을 한 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는 부인했다.

한국의 4대강, 안녕들 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