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의 독일 총선은 기나긴 터널의 뒤끝이었다. 콜 수상이 이끄는 기독민주당(보수, 중도 우파)의 16년 장기집권은 독일을 침체와 정체로 이끌었다. 국민들은 희망을 잃었고 콜 수상을 비웃는 개그만 날로 넘쳐났다. 총선을 통한 정권 교체가 절실했지만 여당인 기독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다수당이어서 많은 국민들은 투표를 앞두고 마음이 불안했다.

우리 부부도 투표 전날까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다. 나는 한국 국적이라 독일에서 선거권이 없기 때문에 독일인인 남편은 꼭 나의 의견을 물어 “우리의 한표”를 행사하곤 했다. 우리는 녹색당을 늘 한 마음으로 지지했기에 그전까지는 별달리 의논할 일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예외였다. 남편이 먼저 예외를 제안했다.

“정권 교체를 꼭 이루기 위하여 이번에 나는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진보, 중도 좌파)을 찍으려고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녹색당을 찍었다가 녹색당 득표율이 5% 안 되어 의회 진출에 실패하면 거기 준 표는 버리는 거잖아. 이번 선거에서 치열한 접전이 예상되기 때문에 한 표라도 모험으로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해. “
“그래? 그럼 그렇게 해.”
“그런데 나는 사회민주당의 대표인 슈뢰더가 마음에 안 들어.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마초야. 난 그런 사람이 독일 총리 되는 거 싫어.”
“그래? 그럼 그런 사람 뽑지 마. 자기 마음에 안 맞는 사람이 독일 수상이 되면 자기 이상에 맞는 정치를 할 거라고 믿어?”
”(버럭) 그럼 정권 교체는?”
“정권이 교체되어서 슈뢰더가 수상이 돼도 당신은 만족하지 않을 거잖아. 그런 정권 교체가 무슨 의미가 있어? 우리는 여태까지 녹색당의 이상이 우리의 이상과 맞기 때문에 녹색당을 지지해왔어. 우리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을 보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아니 상황이 나쁠수록 녹색당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필요에 따라 물을 줬다 말았다 하면 나무가 크지 못하지.”

남편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녹색당을 찍고 왔다. 그날 우리는 역사적인 경험을 했다. 독일 최대 투표율을 자랑한 그 선거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이 보수적인 기독민주당을 누르고 압승했고, 녹색당도 6.7%의 득표율로 무난하게 의회에 진출하여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맺어 개각에 참여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녹색당에서는 여러 부문의 장관을 배출했고, 현실 정치와 경제 성장 속에서도 환경, 평화, 인권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때 우리는 투표 한번 잘해서 우리의 이상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신속하게 실현되는 경이를 맛보았다.

2012년 대한민국의 총선을 맞아 나는 두 주일 먼저 실시된 재외국민투표에 참가했다. 400 km 떨어진 프랑크푸르트 영사관으로 투표하러 가기 위하여 나는 하얀 브라우스를 다려 입고 아침 식탁에 앉았다.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우리집에서는 취업 면접일에나 옷을 다려 입지 평소에는 탈탈 털어 말려서 그냥 입는다. 그만큼 이번 선거는 나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었다. 커피를 따라주며 남편이 물었다.

“어느 당을 찍을 건지 결정했어?”
“응.”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가진 당이야?”
“아니. 당장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당이 아니야. 다만 내 이상을 대변하는 당이야.”
“어? 난 반댈세. 지금 한국에선 정권 교체가 얼마나 절실한데 그런 소리를 해?”
“꼭 정권을 잡을 다수당에게 표를 줘야만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건 아니야. 야권들이 연대하고 있으니까. 진정한 정권 교체란 내 이상을 실현하는 당이 의석을 하나라도 더 차지하는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당신은 이번 투표를 위해서 프랑프푸르트에 두 번이나 다녀와야 했어. 당신의 한 표가 사장되면 어떡해?”
“1998년의 독일 총선을 잊었어? 우린 긴 안목으로 녹색당을 지지했고 그 결과가 얼마나 좋았어? 그때 녹색당이 정권에 참여한 이후로 독일이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했어? 돈만 버는 졸부에서 이상과 철학을 가지고 행동하는 진정한 지도자로 세계 무대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지. 독일이 친환경 에너지의 첨단기술을 꾸준히 쌓아 탈원전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것도 그때 우리가 뿌린 씨앗이야.”
“그래, 그 말은 맞아. 그런데 지금 한국의 녹색당도 잘하면 개각에 참여할 수도 있다는 거야?”
“아니, 그렇지는 않아. 어려울 때일수록 그런 이상을 가진 정당을 국민이 믿고 밀어줘야하지 않겠어? 희망을 가지고 이상을 그리는 일도 눈 앞에 보이는 실익만큼 중요해. 아니, 방향을 잡는 일이 진정한 실익이야.”

남편은 내가 두른 초록 스카프가 예쁘다며 “투표 잘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먹고 오라”며 배웅해줬다.



(저는 녹색당원이 아닙니다. 아래 링크를 열어 읽어보세요. 딱 제 마음이더군요.)

한눈에 보는 녹색당 정책
녹색당을 권하는 50가지 이유

(선거 당일만 제외하고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의견을 메일이나 인터넷으로 표현하는 것은 새로 개정된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것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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